감사와 기쁨14: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교회(5)(빌 4:1-3)/2
본문
감사와 기쁨14: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교회(5)(빌 4:1-3)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빌립보서
4장 1절,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에서 “그러므로”는 앞서 언급된 3장 18-21절을 말한 것이다.
거기서 바울은
하늘가나안땅의 시민권자이고 복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땅에 속하여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처럼 “모든 것이 가하다”(고전 6:12)며 “배”(물욕)를 신(神)으로 삼고,
“부끄러움”(정욕)을 영광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의 최후는 “멸망”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최후는
궁극적인 승리를 얻고 하늘의 월계관을 받아쓸 “정복자 그 이상인 자들”(hypernikomen,
롬
8:37)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스도인들의 최후가
이처럼 밝고 희망찬 이유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장사되셨으나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시어 하늘 지성소의 우편보좌에 앉아계시다가
“그곳으로부터 오실 구원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분께서 다시
강림하시면,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실 수 있는 능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그분의 영광스런 몸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시키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고 권면하였다.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에서 “이와 같이”는 헬라어 ‘후토스’(hutos)를 번역한 것으로써 “그리하여,”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이런 식으로,” “그렇게”란 뜻이다.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3장에서 설명한 내용대로 “주 안에 서라”고 말한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할례파”를 삼가라. 율법의 행위나 육체의 것들을 신뢰하지 말고 “배설물”로 여기라.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므로” 성숙함을 향해서 달려가라. “푯대를 향하여,” 하늘 가나안땅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나라의 성취를 향하여, 월계관을 받아쓰기 위하여 전력 질주하라. “나를 본받으라.” 배(물욕)를 신(神)으로 삼고, 부끄러움(정욕)을 영광으로 삼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를 멀리하라. 이 같은 방식으로 “주 안에 서라.”
“서라”는 헬라어 ‘스테케테’(stekete)를 번역한 말로써 ‘굳게 서다’(stand firm)라는 뜻이다. 이는 아무리 위급한 상황, 곧 적의 공격, 화산폭발, 지진발생과 같은 상황에서도 동요하거나 초소를 떠나지 않고 굳건히 서있는 훈련된 군인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바울에게는 여성
협력자들이 많았다.
이들 가운데는
빌립보교회의 창립멤버인 자주옷감장사 루디아,
바울을 위해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천막제조자 브리스길라(롬 16:3-4),
바울과 함께 복음에
힘쓴 유오디아와 순두게,
바울의 보호자가 되었던
겐그레아교회의 일군 뵈뵈(롬 16:1-2)
등이
있었다.
외경
<바울과 테클라 행전>에 따르면,
아름답고 눈물겨운
전설과 미모를 지닌 테클라(Thecla)도 있었다.
2절,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에서 “유오디아”(Euodia)는 헬라어 ‘Eu’(좋은)와 ‘hodos’(길, 여행)가 합성된 여성이름으로써 ‘순조로운 여행’을 뜻한다. 요한삼서 2절에서 “잘됨 같이... 잘되고”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는 ‘유오도오’(euodow)로써 ‘순조롭고 신속한 여행을 이루게 하다,’ ‘방향과 쉬운 길로 인도하다,’ ‘성공적인 결과를 주다,’ ‘번창시키다,’ ‘번성하다,’ ‘성공하다’라는 다양한 뜻을 갖고 있다. “순두게”(Syntyche)는 헬라어 ‘Syn’(함께)과 ‘Tyche’(행운, 운명, 행운과 운명의 여신)가 합성된 여성이름으로써 ‘행운이 함께하다’는 뜻을 갖는다.
이 두 여성들 가운데 한 명은 ‘루디아’의 본명(full name)의 일부분일 가능성이 있다. ‘루디아’(Lydia)란 그녀의 고향 ‘두아디라’(Thyatira)가 속한 지방명칭이기 때문이다. 이 두 여성 지도자들 사이에 의견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리 이름이 좋고 뜻이 좋아도,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지 않는다면, “푯대를 향하여,” 하늘 가나안땅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나라의 성취를 향하여, 월계관을 쓰기 위하여 전력 질주하는 그 길이 즐거울 수 없고 행운이 함께할 리 없다. 그 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하였다. 만일 그들이 바울의 권면을 받아드렸다면, 그들의 길이 “유오디아” 곧 즐거웠을 것이고, 그들의 길에 “쉰튀케” 곧 행운이 따랐을 것이다.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3절,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에서 “멍에를 같이한”
자는
‘함께’(syn)와 ‘멍에’(zygos)가 합성된 헬라어 ‘쉬쥐게’(syzyge)를 번역한 말이다.
그리고
‘글레멘드’는 헬라어 ‘클레멘토스’(Clementos)를 번역한 말이다.
빌립보교회에 “푯대를 향하여” 바울과 “멍에를 같이”했거나 “함께 힘쓰던” 자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함께 힘쓰던”은 헬라어 ‘쉬네들레산’(synethlesan)을 번역한 말로써 ‘함께’(syn)와 ‘겨루다’(ethlesan)가 합성된 말로써 같은 팀의 운동선수들이 “푯대를 향하여” 함께 투쟁하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바울과 함께 하늘가나안땅에로 달려가는 반천련(伴天連)이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며, 달음질 후 월계관을 받아쓸 팀 승리자들(nikomen)이었다. 따라서 바울은 이들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응원하고 후원하라고 당부한 것이었다.
“도우라”는 말은 헬라어 ‘쉴람바누’(syllambanou)를 번역한 것으로써 ‘함께’(syn)와 ‘붙잡다’ 혹은 ‘붙잡았거나 이해한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결합하다’가 합성된 말로써 “푯대를 향하여” 함께 달려가는 동무들과 결합하고 연합하라는 뜻이다. 앞에서 이미 언급된 “멍에를 같이하다”와 “함께 힘쓰다”와 동일한 뜻이다.
‘반천련’이란 16세기에 일본인들이 기독교인들,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신부들을 호칭한 말로써 ‘천국까지 동행하는 동무’란 뜻이다. 바울이 말한 ‘멍에를 같이한 자’란 뜻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푯대를 향하여,” 하늘 가나안땅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나라의 성취를 향하여, 월계관을 받아쓰기 위하여 전력 질주해야하는 ‘멍에를 같이한 자’요, ‘반천련’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동무들이다. 바울에게는 이런 동무들이 많았다. 그들 중에는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으며, 친척도 있었고, 공무원도 있었다. 유대인도 있었고 헬라인도 있었다. 귀족도 있었고 노예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그리스도의 형제자매들로서 서로 섬기고 협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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