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기쁨17: 카이레테 니코멘(CHAIRETE NIKOMEN)
본문
감사와 기쁨17: 카이레테 니코멘(CHAIRETE NIKOMEN)
IS XS NIKA
‘카이레테 니코멘’은 ‘기뻐하십시오.
우리는
정복자들입니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아테네
병사였던 필리피데스(Philippides)가 아테네 시민들에게 전한
승전소식이었다.
주전
490년 지중해의 패권을 쥔 페르시아의 대군이
아테네를 치기 위해 마라톤평원에 도착하자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연합군이 페르시아군대를 퇴각시킨 제2차 페르시아전쟁이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필리피데스는 승전소식을 아테네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30여 킬로그램의 무장을 갖춘 채
40여 킬로미터를 달렸고,
승전소식을 전한 직후에
사망했다고 한다.
‘복음’으로 번역된 헬라어 ‘유앙게리온’(euangelion)은 본래 “기뻐하십시오.
우리는
정복자들입니다!”를 외친 메신저의 승전소식 또는 승전소식에
대한 보상을 의미했다고 한다.
‘IS XS NIKA’(이에수스 크리스토스 니카)는 ‘예수 그리스도 정복자’란 뜻이자, 비잔틴시대의 대표적인 크리스토그램(christogram)이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 꽃피웠던 비잔틴문화의 큰 특징은 프레스코(fresco)화법과 모자이크(mosaic)로 그린, 심지어 돈(동전)에 새긴 복음서를 껴안으신 예수님과 아이콘에 ‘예수 그리스도 정복자’ 또는 ‘예수 그리스도 만왕의 왕’이라고 쓴 크리스토그램(christogram)에 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친히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말씀하셨다. 바울도 골로새서 2장 15절에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다”고 적었다. 계시록 5장 5절에도 “울지 말라.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다”는 말씀이 있다. 따라서 기독교 복음은 음부의 권세, 사망의 권세, 사탄의 권세, 세상의 권세를 이기시고 예수님이 정복자가 되셨다는 승전소식인 것을 알 수 있다. “기뻐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님이 정복자이십니다.”
예수님과 필리피데스의 공통점은 이 기쁜 소식, 곧 우리가 정복자란 사실을 전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쳤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구원의 지혜를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다 이루었다”(요 19:30)고 외치신 후에 숨을 거두셨다. 또 필리피데스는 혼신을 다해 40여 킬로미터를 달려와 “카이레테 니코멘”을 외친 후에 숨졌다.
HYPERNIKOMEN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님의 이 승리를 근거로
고린도전서 15장 57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다”고 하였고,
고린도후서
2장 14절에서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신다”고 썼으며,
로마서
8장 37절에서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선언하였다.
바울은 자신이 쓴 서신서들에서 110여 차례나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 안에서”를 강조한 것과 빌립보서에서 ‘카이레테’(기뻐하십시오, 2:18, 3:1, 4:4)라고 말하는 등 기쁨에 대해서 16회나 강조한 근거를 로마서 8장 37절에서 찾을 수 있다.
‘HYPERNIKOMEN’(휘페르니코멘)는 “넉넉히 이긴다”는 뜻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로써 로마서 8장 37절에 쓰였다. 바울은 승전소식이자 복음인 ‘카이레테 니코멘’에서 ‘니코멘’ 앞에 접두사 ‘휘페르’(hyper)를 덧붙여 ‘휘페르니코멘’(hypernikomen) 곧 “우리는 정복자들 그 이상입니다.”라고 선언하였다.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권면한 ‘카이레테’와 로마서에서 선언한 ‘휘페르니코멘’을 조합하면, ‘카이레테 휘페르니코멘’(chairete hypernikomen)이 되고, 이것을 번역하면, “기뻐하십시오. 우리는 정복자들 그 이상입니다.”가 된다. 바울은 로마서 8장 37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우리는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고 선언함으로써 “기뻐하십시오. 우리는 정복자들 그 이상입니다.”라고 외쳤던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최후승리자 곧 “정복자들 그 이상의 정복자들”이 되는 근거를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혹은 “주 안에서” 찾았다. 예수 그리스도님은 정복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싸워 이길 자가 없고, 그리스도께서 이기셨기 때문이며, 하나님만이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피조물로서는 그 누구도 인간의 구세주가 될 수 없다.
CHAIRETE
바울이
“주 안에서”를 강조한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의
시민권(politeuma),
월계관(stephanos),
기쁨(chara)의 근거가 “주 안에서”
이미 성취한 승리에
있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야”(빌 3:14)할 이유가 장차 “주 안에서”
거둘 최후승리에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8절에서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주실
것이다.”고 하였다.
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정복자이신 사실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정복자들 그 이상인 사실을 선포하였고,
이 사실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고 권면했다.
여기서
“기뻐하라”가 ‘CHAIRETE’(카이레테)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취하는 모든 행동의 배경에 ‘주 예수 그리스도님’이 계신다. 그분으로 인하여,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엡 2:8), 하늘 가나안땅의 시민권과 땅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가족의 식구가 되며, 최후승리자(nikomen)가 되고, 월계관을 받아쓰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지 않을 수 없고, 범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으며, 감사함으로 드리는 기도와 간구를 멈출 수 없다. 믿음의 끈, 사랑의 끈, 소망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믿음위에 굳세서며’(stekete),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멍에를 함께 메며(syzyge), 함께 힘쓰며(synethlesan), 푯대를 향하여, 하늘 가나안땅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나라의 성취를 향하여, 월계관을 받아쓰기 위하여 전력 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상속자”이기 때문에 또 장차 받을 영광이 매우 크기 때문에, 보이는 유한한 세계보다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에, 현재의 수고와 고난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롬 8:15-18, 고후 4:17-18).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관용을 베풀지 않을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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