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것01: 머리말(1)(히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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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것01: 머리말(1)(히 3:1)
새로운 살 길이신 예수님
히브리서 저자가 누군지를 명확하게 밝히기는 어렵지만, 구약성서, 특히 모세오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히브리서 저자는 토라와 유대교의 성전제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헬라철학의 이원론에 익숙하였으며, 사도들의 가르침과 실천, 곧 사도전통에 대해서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이 같은 인물에는 바울(동방교회 주장), 바나바(테르툴리아누스 주장), 누가(클레멘트 주장), 아굴라와 브리스길라(하르낙 주장), 아볼로(루터 주장) 등이 있다. 히브리서의 책명이 일반서신들과 달리 바울서신들처럼 수신자명으로 되어 있는 것은 바울이 저자일 것이라는 주장이 우세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히브리서에는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암시나 언급이 없어서 주후 70년 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히브리서 저자는 당대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로운 살 길(new and living way)이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새로운 살 길이란 유대교가 제시하는 길도 아니고, 헬라인들이 제시하는 길도 아닌 제3의 길을 의미한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장에서 지적한대로 표적을 구하던 유대인들이 꺼려하고, 지혜를 찾던 헬라인들이 어리석게 생각했던 것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남녀노소빈부귀천 색깔이나 민족의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하나님의 지혜가 되는 새로운 길이고, 생명을 주는 길을 선포하고 있다. 민족마다, 종교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이상과 목표가 있고, 또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길을 마련하여 선포하고 가르치기를 힘쓴다. 문제는 그 힘쓰고 노력하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고, 사람들에게 유익한가라는 것이다.
2천 년 전 유대인들은 제2모세 곧 새로운 메시아가 나타나 자신들을 가나안땅에로 인도하여 주기를 바랐다. 오랜 떠돌이와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기를 바랐다. 빼앗긴 영토와 주권을 되찾고 추락된 명예가 회복된 예루살렘과 시온에서 안식하기를 바랐다. 그런 그들에게 히브리서 저자는 그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라고 밝히고 있고, 왜 그분이 메시아이신지, 왜 그분을 믿고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또 헬라인들은 그들이 유출되어 신에게서 점점 멀어지게 된 이유를 밝혀서 다시 그들을 신에게로 데려다 줄 참 지식을 얻고자 하였다. 그 지식이 그들을 그림자의 세계가 아닌, 모형의 세계가 아닌, 참 세계, 참 이데아의 세계에로 그들을 인도하여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그들에게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참 진리요,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유일한 지식이라고 선포한다. 이 땅에는 많은 종교와 철학이 있지만, 이러한 것들이 결코 사람들을 참 진리에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인류가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살 길”(10:20)을 열어 놓으셨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나 천사나 모세나 또는 아론의 제사장들보다 월등히 더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참 빛이신 예수님
히브리서가 기록된 일세기 후반기를 살던 유대인들 가운데에는 그리스도인이 되고나서도 유대교와 유대공동체와의 고리를 끊지 못한 자들이 많았고, 가족, 친족, 종족의 박해를 견디지 못해서 유대교에로 복귀하려는 자들이 있었다. 따라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런 우왕좌왕하는 자들에게 왜 그리스도께서 ‘제3의 길’인지, 바울의 표현처럼, 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원할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인지, 왜 그리스도가 다른 어떤 것보다 우월한 존재인지, 그리고 왜 기독교가 유대교보다 우월한지를 명확하게 밝혀주려고 하였다. 그러면서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자'(7:25)고 외쳤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10:22)고 외쳤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12:2)고 외쳤다.
히브리서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인 만큼, 유대인들에게 익히 알려진 구약성서를 모형론으로 설명함으로써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신 것을 변증한다. 모형론이란 새것을 옛것에 비교하거나 천상의 것을 지상의 것에 비교하는 방법인데, 옛것이나 지상의 것은 새것과 천상의 것의 그림자이거나 모형일 뿐이고, 새것과 천상의 것이 참인 실체라는 설명이다. 이 설명대로라면, 구약이나 모세나 율법이나 성막예배와 같은 옛것들은 신약이나 예수님이나 복음이나 기독교예배의 그림자나 모형에 불과한 것이고, 참인 실체가 나타났을 때에는 그림자나 모형의 사명은 끝나므로 말 그대로 옛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참이요 실체인 새것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흠 있고 문제 많은 옛것을 버리지 못하고 새것을 거절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을 것이다.
플라톤이 소개한 동굴의 비유에서도 나타나듯이, 횃불을 본 사람이 횃불에 의해서 만들어진 그림자를 더 이상 참으로 알지 않고, 동굴 밖에 펼쳐진 광활하고 태양빛 찬란한 세계를 본 사람이 동굴 속 세계를 더 이상 동경하지 않듯이, 참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 그분의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빛의 세계에 거하는 사람이므로 더 이상 떠나온 세계인 유대교를 동경하여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신학자 최병헌(崔炳憲, 1858-1927) 목사님이 ??셩산유람긔??(聖山遊覽記)에서 지적한 “여름 벌레는 겨울의 얼음을 말할 수 없고, 우물 안의 개구리는 하늘이 적다고 하듯이.... 거친 음식이나 풀죽과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이 다 음식이지만, 귀하고 천하며 아름답고 추한 차이가 있듯이,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이 없을 때에는 거친 음식과 풀죽을 먹지만,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보고도 의심하여 먹지 않는다면 이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신학월보? 230쪽 이하)고 한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한번 빛을 받아서, 하늘의 선물을 맛보고, 성령을 나누어 받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장차 올 세상의 권능을 경험한 사람들은, 타락하면, 그들을 다시 새롭게 해서 회개하게 할 수 없다.”(히 6:4-6)는 것이다.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
“그런 사람들은 자기들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금 십자가에 못 박고 욕되게 하는 것”(히 6:6)이어서, 마치 “땅이 자주 내리는 비를 빨아 들여서, 농사짓는 사람에게 유익한 농작물을 내주면, 그 땅은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지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면 그 땅은 쓸모가 없어지고, 저주를 받아서, 마침내는 불에 타고 말 것”(히 6:7-8)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초보적 단계를 뛰어넘어 성숙한 경지로 나아가자라고 말한다(히 6:1).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을 1장에서 천사들보다도 뛰어난 분이라 하였고, 2장에서는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시고, 마귀를 없이하시며, 백성을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하시며,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시며, 시험받는 자들을 도우시는 구세주라고 했다. 3-4장에서는 안식을 주시는 분, 5장에서는 아론보다 뛰어난 대제사장으로 소개하면서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도리를 굳게 잡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고 외쳤다.
6장에서는 초보적 단계를 뛰어넘어 성숙한 경지로 나아가자라고 말하면서 “한번 빛을 받아서, 하늘의 선물을 맛보고, 성령을 나누어 받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장차 올 세상의 권능을 경험한 사람들은, 타락하면, 그들을 다시 새롭게 해서 회개케 할 수 없다.”(4-6절)고 하였다. 그렇지만, 오래 참고 믿음을 지키면 반드시 약속을 받아 이루게 된다고 강조했다.
7장에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우리에게 있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고 하였다.
8-10장에서는 예수님을 옛 언약보다 뛰어난 새 언약의 중보자로, 옛 언약시대의 성막보다 더 뛰어난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성막”과 더 나은 제사의 큰 제사장으로 소개하면서, 예수님을 하나님을 만나는 “새로운 살 길”이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외쳤다.
히브리서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내용은 한마디로 말해서, 끝까지 견디자, 믿음으로 하자, 사랑으로 하자, 소망 중에 인내로 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11장에서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축복의 반열에 든 신앙선배들을 일일이 열거하여 증거로 제시하였다.
히브리서에서 저자가 강조한 또 다른 내용은 “깊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3장 1절에서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였고, 12장 2절에서는 “예수를 바라보자”고 하였다. 10장 29절에서는 배교자의 받을 형벌이 얼마나 중하겠는지를 생각하라고 하였고, 10장 32절에서는 이전에 큰 고난을 당하고도 잘 참고이긴 것을 생각하라고 하였으며, 13장 3절에서는 고난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을 생각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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