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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것07: 장차 올 세상(히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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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557 2018.03.0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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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것07: 장차 올 세상(2:5)

하티크바’(Ha-Tikvah)

ha-tikvah1.jpg 히브리서 25,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다에서 장차 올 세상은 히브리어로 올람 하바’(Olam Ha-Ba)이고, ‘올람 하바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희망해온 장차 올 세상이다. 비록 올람 하바가 히브리어성경에 쓰인 성서 용어는 아니지만, 바벨론 유배이후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이 마음 속 깊이 희망해온 메시아시대를 말한다. 이 한 가지만 보더라도 히브리서 저자가 유대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그 희망하티크바’(Ha-Tikvah)라 부른다. 그리고 하티크바는 이스라엘의 애국가로 자리를 잡았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유대인의 정신이 마음 속 깊이 갈망하고 있는 한, 눈을 동쪽으로 향하여 시온을 바라보는 한, 우리의 희망은 아직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천년을 간직한 우리의 희망은 우리 자신의 땅에서 자유민이 되는 것, 시온과 예루살렘의 땅에서!”

유대인들의 그 희망은 아브라함에게서 처음 시작되었다. 떠돌이와 노예였던 유대인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가나안땅과 나라에 대한 그 희망을 아브라함이 처음 품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처음 품었던 가나안땅과 나라에 대한 그 희망을 마음 속 깊이 갈망하는 자라야 유대인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유대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대인들이 왜 아브라함을 민족의 조상으로 떠받드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맥락에서 하늘 가나안땅과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그 희망을 마음 속 깊이 갈망하는 자라야 그리스도인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셈이다. 계시록 175절에서 큰 바벨론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로 묘사된 곳에서 한동안 떠돌이와 노예로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하늘 가나안땅과 그리스도의 나라는 지상 가나안땅과 이스라엘에서 그 모형과 예표를 찾는다. 바꿔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지상 가나안땅과 이스라엘은 하늘 가나안땅과 그리스도의 나라의 모형과 예표에 불과하다.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을 민족의 조상으로 삼듯이, 그리스도인들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브라함이 처음 그 희망을 품었던 가나안땅과 나라가 하늘 가나안땅과 그리스도의 나라의 모형과 예표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올람 하바’(Olam Ha-Ba)

judaism_moshiach2a.jpg 히브리서 25,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다에서 장차 올 세상은 그리스도의 나라이다. 그러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이 장차 올 세상에 대해서 크게 다른 이해를 갖고 있다.

먼저,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초림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은 빼앗긴 가나안땅과 문자적 이스라엘 나라의 주권과 명예를 오롯이 되찾아 주기 위한, 곧 유대인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셔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앉아 계신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은 이 땅에 영원하고 완전한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곧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유대교인들이 생각하고 믿는 올람 하바’(Olam Ha-Ba)는 장차 예루살렘 시온성에 세워질 신정국가를 말한다. 유대교인들은 이 때 흩여졌던 모든 유대인들이 본향에 돌아오게 되고, 토라(Torah)와 성전중심의 유대교예배가 재건되며, 유대인들이 그토록 바라던 안식을 얻게 된다고 믿는다. 반면에 히브리서는 유대교인들의 그 희망을 기독교의 독특한 희망에로 재해석한다. 히브리서 이해의 핵심은 하늘의 것땅의 것,’ ‘무한한 것유한한 것,’ ‘영원한 것일시적인 것,’ ‘실체와 그림자,’ 혹은 원형과 모형으로 명확하게 구분 짓는 것이다. 유대교인들이 바라는 그 희망의 내용들은 땅의 것이고, 유한한 것이며, 일시적인 것이고, 장차올 좋은 것들의 그림자와 모형에 불과한 것이며, 기독교인들의 희망은 하늘의 것이고, 무한한 것이며, 영원한 것이고, 장차올 좋은 것들의 실체와 원형임을 밝힌다. 이 땅에는 우리가 찾는 진정한 안식이 없다는 것을 밝힌다. 이 땅에는 우리가 목숨을 걸고 쟁취해야할 가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밝힌다. 따라서 히브리서는 우리가 땅의 것을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하늘의 것을 바라볼 것인가, 유한한 것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무한한 것을 추구할 것인가, 일시적인 것에 착념할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것에 착념할 것인가, 그림자와 모형을 쫓을 것인가, 아니면 실체와 원형을 쫓을 것인가를 바르게 생각하고 선택할 것을 힘줘서 권면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대교인들은 자신들의 그 희망을 이룰 그리스도를 메시아라 부르지 않고 모쉬아크’(Moshiach)라 부른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유대교인들의 메시아관을 왜곡시켰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쉬아크’(Moshiach)

judaism_moshiach1a.jpg 일반적으로 모쉬아크는 세상이 죄로 넘쳐서 그를 가장 필요로 하는 때나 세상이 심히 좋아져서 가장 합당한 때로 여겨지는 시기에 오시게 될 것이라고 믿어진다. 모쉬아크는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고 예루살렘을 회복시킴으로써 정치적 구원을 가져다 줄 것이며, 이스라엘에 한 정부를 세울 것이고, 그것을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위한 전 세계 정부의 중심에 세울 것이며, 성전을 재건할 것이고, 성전예배를 다시 세울 것이며, 이스라엘의 종교법정 체계를 회복시킬 것이고, 나라 법으로써 유대교법을 세울 것이라고 믿는다.

이때의 세계를 유대문학에서 올람 하바’(Olam Ha-Ba), 곧 다가올 세계라 부른다. 올람 하바는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계이며(2:4), 흩어진 모든 유대인들이 유배되었던 나라들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되며(11:11-12, 23:8, 30:3, 3:4-5), 희년법이 다시 효력을 갖게 되고, 전 세계가 유대인의 하나님을 유일하시고 참되신 하나님으로, 유대교를 유일하고 참된 종교로 인정하게 될 세계라는 것이다(2:3; 11:10; 미가 4:2-3; 14:9). 이 세계에서는 살인, 약탈, 경쟁과 질투는 사라질 것이고, 죄도 없어질 것이다(3:13). 희생제물은 성전에서 계속 드려질 것이나 제물들은 감사예물에 국한될 것이라고 믿는다. 더 이상 속죄를 위한 제물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유대민족에게는 출애굽사건에서 시작해서 모쉬아크 사건에서 완성되는 이스라엘 국가의 설립과 완성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다르다.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맺은 새 언약 공동체인 교회(성도들이)가 성령의 능력가운데서 영적으로 시작되는 구원으로 출발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에서 육적으로 완성되는 구원을 말하고 있다. 성령의 능력가운데서 영적으로 시작되는 구원은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이뤄지는 중생의 씻음과 새롭게 하심으로써 약속과 인침과 보증과 선취의 의미를 갖는다. 이것을 또한 칭의라 부른다. 약속과 인침과 보증과 선취란 그리스도의 재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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