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것09: 장차 오실 존귀하신 자(2)(히 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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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것09: 장차 오실 존귀하신 자(2)(히 2:10-18)
“독생하신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유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인정할 수 없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이런 배경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했는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왜 그리스도이신지, 예수님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첫째, 10절,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시고 소유하신 만물로부터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사람이 으뜸인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이다. 그들은 육신을 입고 자연환경 속에서 자연법칙에 따라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겪는다. 하나님은 그들을 “영광으로” 곧 영광의 나라 하늘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 곧 “많은 아들들”의 참 구주가 되시고, “많은 아들들”의 맏아들이 되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냈고, 사람처럼 육신을 입게 하셨으며, 사람이 겪는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사람사이를 화목하게 할 완전한 희생제물이 되게 하셨다. 이것이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서는 합당하고 옳은 방법이었다.
둘째, 11절, 완전한 하나님의 희생제물이 되어 “많은 아들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자들” 곧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신 예수님과 그분의 피로써 속죄함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한 분” 하나님한테서 “나왔으므로 그분” 곧 예수님은 “그들” 곧 그리스도인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을 “근본 하나님의 본체”(in very nature of God/ in form of God, 빌 2:6) 속에 성부, 성자, 성령이 계신다는 삼위일체신앙으로 발전시켰고, 성자께서는 “하나님과 동등 되심을 취하려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여 사람들과 같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빌 2:6-8)라는 “독생하신 하나님” 수난설을 발전시켰다(요 1:18). 이뿐 아니라, 그리스도교는 이 삼위일체신앙을 기반으로 존귀하시고 존엄하신 유일신 하나님을 ‘아버지’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예수님의 ‘두 아들의 아버지의 비유’에서 성실하고 착한 첫째 아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혹은 유일신 사상과 선민사상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을 말한 것이고, 가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둘째 아들은 예수님과 교제했던 죄인과 세리들 혹은 이방인들을 말한 것이다. 죄인과 세리들이 아버지께로 돌아온 것은 아버지에게는 죽었다가 다시 산 자식이요, 잃었다가 다시 얻는 자식과 같다. 그래서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에게 입을 맞추고,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배설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대로 착하게 살아온 먼저 믿는 자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본받지 못하고 불평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은 먼저 믿는 자들에게 이제 겨우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온 믿음의 동생들로 인해서 아버지와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없겠는가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독생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의 형제가 되는 이유
이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정신을 우리가 본받아 살자는 것이 누가복음 15장의 ‘두 아들의 아버지의 비유’였다면,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라고 선언하신 요한복음 20장 15-18절의 예수님의 말씀은 그토록 사랑이 많고 좋으신 하나님, 죄인과 세리들의 회개를 가장 기뻐하시는 하나님, 외아들 예수님의 아버지가 바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롬 8:15) 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 6:9)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외아들’로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로마서 8장 29절과 히브리서 1장 6절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맏아들’로, 요한일서에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언급하고 있다. ‘외아들’과 ‘맏아들’의 차이는 크다. ‘외아들’은 아들이 한 명뿐이란 뜻이고, ‘맏아들’은 아들이 ‘여럿’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개 같은 인생’이란 표현을 썼는데, ‘개 같은 인생’인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것은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큰 은혜를 아무나 입는 것은 아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다.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외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 하나님이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 하나님이 죽을 우리도 다시 살리실 것을 믿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실 수 있는 것은 우리와 같은 탕아들을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관용과 사랑 때문인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유일신사상과 선민사상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이 이 같은 사실을 알기를 바랐던 것이다.
셋째, 12절,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오히려 “내가 주님(하나님)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교회 가운데서 주님을 찬송하겠다”(시 22:22)고 하셨고, 13절, “내가 그분(하나님)을 의지하겠다”(사 8:17)고 하셨으며, “보아라,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다”(사 8:18) 라고 하셨다.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는 시편 22편 22절과 이사야 8장 17-18절을 인용하면서 이 글의 주어를 구속사적으로 예수님으로 취하였다. 이는 초기 그리스도교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오실 자로 예언된 그리스도로 이해함에 있어서 구약성서를 유대인처럼 문자적으로 취하지 않고 영적으로 취하였다는 증거이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입증하기 위해 사복음서에 소개된 구약성서의 구절들도 이 점에 있어서 마찬가지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들 세 개의 구약성서구절들을 그리스도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형제로 불러 자신과 동일시하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써 제시하였다.
“독생하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신 이유
넷째, 14절, 하나님의 피조물이자 하나님의 “자녀들”인 사람은 “혈과 육” 곧 피와 살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혈과 육 또는 피와 살은 자연법칙에 따라 쇠락한 후에 사망한다.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는 왜 하나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고 사람의 몸을 입게 하셨는가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죽을 운명을 타고난 사람을 대신할 그리스도가 죽음을 경험할 혈과 육 곧 피와 살에 속해야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죽을 운명을 타고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망시켜야했기 때문이다. 마귀는 비록 어둠의 권세, 사망의 권세, 음부의 권세를 가졌지만,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적수가 결코 되지 못한다. 그가 가진 권세는 하나님이 정한 스케줄 안에서 일시적으로 허용된 것에 불과하다. 그 시한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이다.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조차도 마귀의 권세 아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은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6장 33절,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계시록 5장 5절,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12장 11절,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로마서 8장 37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고린도전서 15장 55절,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린도전서 15장 57-58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요한일서 5장 4절,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다섯째, 15-16절,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그리스도인을 말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문자적으로 유대인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하지 않고, 영적으로 그리스도인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칭하였다. 문자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은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그리스도인의 그림자와 예표로 보았다. 따라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님으로 믿고 신뢰하는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의미적으로 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결론으로 17-18절에서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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