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복음15: 율법과 약속(갈 3:15-22)
본문
하나뿐인 복음15: 율법과 약속(갈 3:15-22)
“사람의 언약이라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한다.”
갈라디아서 3장 15절,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한다.”는 바울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불변성을 강조한 말씀이다. 창세기 15장을 통해서 볼 때, 언약체결 자들은 함께 쪼갠
짐승 사이로 지나가면서, 언약을 파기하면 이 짐승처럼 쪼개지고 만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히브리서 저자가 6장 13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셨다.”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
혼자서 쪼갠 짐승사이로 지나가셨다. 하나님의 약속은 번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16절,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이시다.”는 창세기 15장 4절에 근거하여 바울이 이삭을 그리스도의 예표로 믿고 한 말씀이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을 아브라함의 40대 후손으로 소개하였다. 마태가 이렇게 소개한 이유는 바울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오실 자 그리스도로, 그리스도를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된 ‘그 희망’의 성취자로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 희망’은 저 하늘 가나안땅을 말하는 것이고,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한 것임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그 희망’을 최초로 품었던 조상이며, 여기서 유대인들의 ‘그 희망’은 문자적으로 가나안땅에 야훼를 섬기는 이스라엘나라를 세우는 것을 말한다. 그 나라의 크기는, 창세기 15장 18절에 의하면,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곧 이스라엘 사람들이 노예 또는 유배 때 발로 밟았던 모든 땅이다. 반면에 마태는 아브라함이후 14대만인 다윗 때에 절정에 달했던 나라가 또 다른 14대만에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고, 유대인들이 다시 14대를 떠돌이와 노예로 지낸 후에 ‘그 희망’을 성취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자로서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나타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그 희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의 ‘그 희망’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 마태뿐 아니라, 신약성서를 기록한 모든 저자들의 일치된 주장이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율법이 폐기하지 못한다.”
우리는 신약성경 저자들이 구약성경을 해석할 때 자주 구약성경의 문맥과 다른 의미로 해석하였고, 자주 문자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바울도 마찬가지여서 유대인들이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사실들의 예표와
모형으로써 설명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17절,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 모세와 여호수아시대에
이뤄졌고, 율법은 출애굽 후 50일째 되는 첫 오순절 날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계명들이며, 그 계명들을 문자적으로 철저히 실천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땅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유업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에 바울은 19절에서 율법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후손인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까지만 유효하다고 선언하였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것이 하늘
가나안땅이고,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고 선언하였다.
18절에서 바울은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다.”고 하였는데, “유업”은 자손들이 대를 물려 살아갈 이스라엘 나라의 영토를 말한다. 유대인들은 이 유업이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라고 말씀하신 지상 가나안땅으로 믿어왔으나 바울과 신약성서 저자들은 이 유업을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상속할 저 하늘 가나안땅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지상 가나안땅은 “율법에서 난 것”일지 몰라도 하늘 가나안땅은 “약속에서 난 것”이며,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다.”고 하였다. 그리고 17절에서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가나안땅에 들어온 후부터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떠날 때까지를 430년으로 본 것 같다. 바울 이전부터 있었던 설로써 이집트에서의 노예기간을 215년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를 취하고 있는 히브리력은 2019년 1월을 5779년으로 본다.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다.”
바울은 이미 19절에서 율법이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까지만 유효하다고 선언하였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것이 하늘
가나안땅이고,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모든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율법은 유대인들을 위해서 약속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주신 것이라고 하였다(22절). 따라서 바울은 21절에서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 일생을
신약성서기독교 회복운동에 바쳤던 알렉산더 캠벨(Alexander Campbell)은 27세 때인 1816년 9월 1일 레드스톤 침례교
협의회(Redstone Baptist Association)에서 행한 ‘율법에 관한 설교’에서 율법은 전 인류에게 의와 생명을 줄 수가 없고,
죄가 되는 행위들을 밝힐 뿐 죄의 악성과 결점을 들춰낼 수가 없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율법은 전 인류를 위한 전 인류에게 적용되는 법이 될
수가 없고, 오직 이스라엘만을 위해 설계되고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졌다고 피력하였다.
22절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다.”에서 성경은 구약성서 ‘타나크’(Tanakh/Tenach)를 말하지만, 문맥상 ‘토라’를 염두에 둔 말씀이다. 예수님이 누가복음 24장 44절에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이란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은 유대인들이 회당기도회 때 읽었던 성구와 찬양했던 시편을 언급하신 것이다. 여기서 “율법과 선지자”는 54개로 쪼개서 읽었던 ‘토라’(Torah)와 ‘하프타라’(Haftarah)를 말하는데, ‘토라’는 모세오경을, ‘하프타라’에는 역대기서가 제외된 역사서들과 예언서들이 포함된다. 매주 3회, 안식일, 월요일, 목요일 아침기도회 때 읽히는 ‘토라’는 54개로 쪼개져 일 년에 한 차례씩 완독되지만, ‘하프타라’는 해당 주 요일에 읽히는 토라와 관련이 있는 선별된 몇 구절만 읽힌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성경은 우선적으로 토라를 뜻한다.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다.”는 말씀은 “율법의 행위로는 그분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육체가 없으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이다.”고 한 로마서 3장 20절에 연결된다. 이스라엘의 4천년 역사 가운데 3천년 정도를 유대인들은 떠돌이로 살았는데, 그 이유가 율법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이 구약 예언서와 역사서의 진단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율법은 그들에게 그들이 그토록 바라는 안식을 주지 못했다. 이에 바울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참 안식이 민족차별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진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 이전글 하나뿐인 복음16: 율법과 믿음(갈 3:23-29) 19.01.16
- 다음글 하나뿐인 복음14: 믿음으로 의롭게 되다(5)(갈 3:6-14) 19.01.1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