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끈02: 희망의 전령(막 1:2-8)
본문
희망의 끈02: 희망의 전령(막 1:2-8)
복음서의 장르
‘예수’란
이름은 히브리어 ‘예호슈아’ 혹은 ‘예슈아’의 헬라어 이름으로써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또 ‘그리스도’란 직책은 히브리어
‘모쉬아크’(Moshiach, 메시아)의 헬라어 단어로써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모쉬아크’(메시아) 곧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오랜 희망인 고토회복과 민족해방을 실현시켜줄 제2모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는 온 인류에게
영생과 영원한 나라를 가져다줄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인류의 구세주이시며,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시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순수전기가 아니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로 선포한 복음전기이다. 1장 1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선언적 구절이 이 사실을 입증한다. 또 이 구절은 “예수는 그리스도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적 선포(kerygma)가 복음의 알맹이이요, 설교의 핵심내용이며, 기쁜 소식 그 자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마가복음 전반부의 결론은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8:29)이고, 후반부의 결론은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15:39)이다. 이 두 가지 신앙고백의 특징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예수님의 주변 인물들의 입에서 나왔다는데 있다. 예수님 본인의 주장이나 누군가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주변 인물들의 입에서 절로 터져 나온 탄성이란 것이다. 이런 고백적 탄성이 오늘날 우리들의 입에서도 터져 나와야한다.
복음서는 귀납적인 방식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연역적 방식으로 기록된 글이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밝히기 위한 글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선포한 글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1장 1절은 예수님이 왜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신가를 증명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서 어떤 삶을 사셨는가, 무슨 목적으로 이 땅에 오셨는가, 그것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왜 그분을 믿어야 하는가, 왜 그분의 제자가 되어야하는가, 제자의 도리는 무엇인가 등을 선포한 글이다. 복음서는 구구절절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글이 아니라, 믿음과 결단을 촉구하는 글이다. 복음서는 예수님이 왜 그리스도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신가에 대한 글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왜 인류의 희망이신가에 대한 글이다.
복음서는 환란에 직면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기록되었다. 복음서가 기록된 시기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큰 시련을 겪던 때였다. 복음서는 베드로의 통역관이었던 마가에 의해서 네로 황제가 로마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무자비하게 박해하던 시기(주후 64-68년)와 예루살렘을 처참하게 뭉개버린 유대-로마전쟁(주후 66-70년) 시기에 기록되었다.
희망의 전령 침례 요한
침례 요한은 복음서 저자들에게 있어서 요단강가에 내려놓고 가야할
하나의 짐이었다. 이 짐을 내려놔야 강 건너에 있는 ‘예수’라는 짐을 짊어 질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정도 먼저 나고
먼저 죽었다. 요한은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나 35살 무렵에 참수를 당했고,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35살 무렵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 두
분 모두 그리스도였을 가능성 때문에 체포되었고 처형당했다. 만일 그분들이 유대인들이 기다렸던 그런 영웅적 그리스도였다면, 체포되거나 처형당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란 그분들을 죽인 자들을 처단해야할 심판주이기 때문이다.
요한도 예수님도 모두 살아생전에 오실 자 그리스도인가라는 신분에 대한 심문을 받았다. 요한은 자신은 오실 자가 아니라, 그분이 오실 길을 닦고 있는 자라고 밝혔고, 예수님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가 요한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오실 자 그리스도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밝힌 것과 동시에 이뤄졌다. 오실 자 그리스도인데 죽음이 임박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인들에게는 좀처럼 이해되기 어려운 수수께끼였다. 그런데 그 수수께끼를 푼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풀지 못한 사람들은 유대교인으로 남았다. 그리스도인들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푼 오이디푸스처럼 생명을 얻었고, 유대교인들은 스핑크스의 끼니꺼리가 된 사람들처럼 가련한 처지가 되었다.
바울이 주후 55-57년 사이에 소아시아 에베소에서 침례 요한을 따르는 무리를 만난 것과 요한을 추종하는 종교집단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을 보면, 요한이 당시 민중들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는가는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집단은 영지주의 만다야교(Mandaeism)로써 이미 3-4세기경부터 이단종파로 분류된바가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아마도 복음서 저자들은 침례 요한이 누구이며, 예수님과는 어떤 관계이고,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를 명확히 하고자 했을 것이다.
첫째, 침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선포한 희망의 전령이었지, 희망을 주는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둘째, 그의 메시지는 오실 자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었지, 그의 나라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셋째, 그가 베푼 침례는 오실 자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 회개의 침례였지, 희망의 시작인 그리스도인의 침례가 아니었다.
넷째, 그는 왕국을 건설한 모세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 추락한 왕국을 회복시킨 엘리야와 같은 존재였다.
요한의 신분, 메시지 및 침례
첫째, 요한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선포한 희망의 전령이었지, 희망을 주는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요한은 아론에 비교될 수 있다. 아론이 모세의 형이었던 것처럼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출생한 친척이었다. 아론이 제사장의 역할을 맡았던 것처럼 요한은 제사장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론이 모세를 히브리인들의 그리스도로 안내한 것처럼 요한은 예수님을 인류의 그리스도로 안내하였다. 요한의 역할은 집회에서 주인공의 등단을 소개하는 사회자와도 같았다. 주인공의 등장을 알리고, 그의 길을 예비하는 매니저와도 같았다. 따라서 그의 등장은 예수님사역의 출범을 알리는 신호였고, 그의 퇴장(죽음)은 예수님의 그리스도신분을 노출시키는 신호탄이었다.
둘째, 요한의 메시지는 오실 자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었지, 그리스도의 나라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마가는 말라기 3장 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와 이사야 40장 3절,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를 인용하였다. 마가는 요한의 메시지가 오실 자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시키는 것이었다면서 7-8절에서 요한이 그리스도의 신분을 감히 넘보지 않았다고 전하였다. 침례 요한은 자기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오시는데, 자기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줄 하인 급에도 들기 어렵다면서 자기는 물로 침례를 베풀지만, 그분은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실 자라고 하였다.
셋째, 요한이 베푼 침례는 오실 자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 회개의 침례였지, 희망의 시작인 그리스도인의 침례가 아니었다. 요한은 주후 26-29년경 요단강 주변들을 오가며 회개를 외치고 침례를 베풀었다. 그가 베푼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는 오실 자 그리스도를 영접시키기 위한 준비였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받는 그리스도인의 침례가 아니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교회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그리스도인의 침례와는 그 목적부터 달랐고, 교회시대는 그 이듬해에 도래하였다.
넷째, 그는 왕국을 건설한 모세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 추락한 왕국을 회복시킨 엘리야와 같은 존재였다. 6절,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가 그 같은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요한은 아합과 이세벨의 종교탄압에 맞서 싸웠던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갖고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였다.
엘리야는 털이 많았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왕하 1:8) 야훼신앙복원을 위해서 고군분투한 인물이었다. 그의 후임 엘리사는 아합 정국을 쿠데타로 전복시키고 새 이스라엘을 열었다. 마찬가지로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 거주하면서 회개를 촉구했던 요한은 옛 시대를 닫고 새 시대를 열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시킨 인물이었다. 예수님도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라”(마 11:14)고 말씀하심으로써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낼 것이다”(말 4:5)고 한 말씀이 요한한테서 성취되었다고 하셨다. 침례 요한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교훈은 희망의 성취가 회개로부터 시작된다는 외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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