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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05: 희망의 무대(1)(막 1: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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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689 2016.01.28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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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05: 희망의 무대(1)(막 1:16-20)

갈릴리 호수

galileeshorelabeled.jpg 성서에서 큰물 즉 바다, 호수, 강은 사단이 지배하는 죄악 세상이거나 죽음의 세계를 상징한다. 그렇기 때문에 물에서 건짐을 받았다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이었다. 노아의 여덟 식구가 물에서 건짐을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에서 건짐을 받았으며, 죽음의 강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고, 요나도 물에서 건짐을 받았다. 같은 맥락에서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호수에서 건짐을 받고 있고, 계시록에서 성도들은 하늘 보좌 앞 불이 섞인 유리바다에서 건짐을 받고 그 바닷가에 서서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구원’이란 말이 물에서 건짐을 받았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에서 보듯이 그리스도인의 침례도 동일한 뜻을 갖고 있다. 물은 죽음을 상징하지만, 또한 더러움을 씻고, 죄를 씻고, 생명을 살리는 구원을 상징한다. 인류의 오랜 희망이신 예수님의 공적 활동의 전반부가 죽음의 상징이자 생명을 살리는 이 갈릴리 호수를 배경으로 이뤄진 것은 뜻하는 바가 매우 크다. 예수님의 활동은 사람들의 오랜 상처를 씻고 고치고 살리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또 이 같은 맥락에서 복음서에서 갈릴리 호수는 세상을, 배는 교회를, 고기는 그리스도인을, 어부는 교회의 일군을 상징한다.

갈릴리 호수 북동서지역은 복음서 전반부를 차지하는 예수님의 주요 활동무대였다. 갈릴리 호수는 해수면보다 무려 210미터 이상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5천만평이 넘는 큰 담수호이다. 물은 백두산보다 70미터나 더 높은 헐몬산(2,814m)에서 유입된다.

갈릴리 호수는 북쪽 산악지역에서 유입되는 깨끗한 물을 받아 요단강을 통해서 야르무크와 사해로 흘려보낸다. 갈릴리 호수는 받아드린 물을 나눠줌으로써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호수이다. 반면에 해수면보다 무려 420미터 이상 낮은 사해는 받기만하고 나눠주지 않는 거대한 고인 물 호수이다. 갈릴리 호수에는 37종의 물고기들이 살아 숨 쉬지만, 갈릴리 호수의 5배인 2억5천만평 크기의 사해는 물고기가 살수 없는 죽음의 바다이다.

이스라엘과 그 주변의 국가들은 물 부족이 심각한 나라들이다. 게다가 갈릴리 호수의 수면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요르단과 시리아까지 이 호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요단강 협곡들에 댐을 만들어 물을 가둬 농업과 생활용수로 쓰다보니까 사해로 흘러드는 물이 현격히 줄어들어 사해 또한 매년 1미터씩 낮아지고 있다.

고깃배

boat1986_galilee.jpg 솔바람에 물결치고 돌풍에 폭풍이 이는 갈릴리 호수가 세상을 상징한다면, 호수의 잔잔한 물결에도 흔들리는 고깃배는 교회를 상징한다.

갈릴리호수 서안 게네사렛의 주민 모세와 유발 로판(Moshe and Yuval Lofan) 형제가 가뭄이 심했던 1986년 게네사렛과 막달라 사이의 뻘 속에 묻혀있는 배를 발견하였다. 신고를 받고 전문가들이 투입되어 발굴되었고, 예수님시대의 배로 확인이 되었다. 이 배는 높이 1.25미터, 길이 8.20미터, 폭 2.30미터로써 4~5명이 탈 수 있는 크기였다. 구입 가능한 10여 종류의 나무들을 깎아 붙이고 못질을 한 돛단배였다. 이 배는 보존처리 되어 노프 기노사르(게네사렛) 기부츠 안에 있는 이갈 알론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예수님이 최초로 부른 4명의 제자들은 어부들이었고 두 쌍의 형제들이었다. 그들이 부름을 받았을 때 그들은 배에서 어부의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는 배에서 투망질을 하고 있었고, 야고보와 요한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마가복음의 가장 큰 특징인 현장감과 긴박감이 이들 구절들에 잘 나타나 있다. 마가복음의 현장감과 생동감은 “보시니”라는 말에 나타나 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가 투망질을 하고 있는 현장에 계셨고,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셨으며, 야고보와 요한이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현장에 계셨고,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셨다. 이들 어부들은 예수님의 부름을 입을 당시에 생업에 충실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라”고 했을 때, 주저 없이 “즉시로”(euthus) 따랐다. 출동준비를 마친 구조대원들처럼 긴박감과 긴급성 그리고 종말론적인 시급성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여기서 “따르다”는 의미는 제자가 된다는 의미이고, 예수님이 가시는 그 길을 함께 간다는 뜻이다. 세상과의 관계를 일체 끊는다는 뜻이다. 이들 두 쌍의 형제들이 “그물을 버려두고 따랐다”라든지,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다”는 말씀은 침례 요한과 예수님이 외친 “회개”가 무엇인지를 암시하고 있다. 회개란 과거를 즉시로 청산하는 것이다. 회개란 필요하다면 생업의 도구와 가업까지도 포기하는 것이다. 회개란 과감하게 결단하는 것이다. 회개란 즉시로 예수님께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다. 회개란 예수님의 부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회개란 전적으로 헌신하는 것이다. 회개란 이전의 일에서 완전히 떠나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름에 담긴 긴급성과 어부들의 즉각적인 순종과 헌신에 새 시대가 열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물고기

fishermen_galilee.jpg 복음서에서 물고기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물고기는 그리스도인을 상징한다. 솔바람에 물결치고 돌풍에 폭풍이 이는 갈릴리 호수가 세상을 상징하고, 호수의 잔잔한 물결에도 흔들리는 고깃배가 교회를 상징한다면, 물고기는 그리스도인을 상징한다. 물고기는 헬라어로 ‘이크투스’(ichthus)이다. 공교롭게도 이크투스의 다섯 글자는 각각 예수(Iesus), 그리스도(Christos), 하나님의(Theos), 아들(Huios), 구세주(Sojomete)의 머리글자에 해당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물고기 즉 ‘이크투스’가 상징하는 바인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이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제자로 부르실 때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전도자로 삼겠다는 뜻이었다.

둘째, 물고기는 부활을 상징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요나의 표적을 믿는다. 요나는 사흘 낮밤을 죽음을 상징하는 바다에서 큰 물고기 배속에 있다가 살아난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물고기는 부활을 상징한다. 예수님도 굴 무덤에 장사되어 사흘 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물고기 배 속에서 살아나온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과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의 모형과 그림자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믿을 뿐 아니라, 자신들도 부활할 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셋째, 물고기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나온 것처럼, 예수님도 무덤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제2모세로 등장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가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굴 무덤에 장사되어야했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이 수수께끼를 푼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굴 무덤에 장사되셨던 이유가 그리스도인들이 영생에로 부활할 수 있도록 그 첫 열매가 되시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을 오실 자 그리스도로 믿었다.

이처럼 물고기는 그리스도인들의 상징이고, 부활의 상징이며,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물고기(Ichthus)란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들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부름에 즉시로 따라나서는 헌신자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일과 육신의 일에 존재가치를 두고 않고, 하나님의 일, 복음의 일, 빛의 일, 생명의 일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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