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끈07: 희망의 무대(3)(막 1: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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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07: 희망의 무대(3)(막 1:29-45) 기적의 복음
서민들의 터전인 주변부에서 인기를 모운 예언자들과 개혁가들이 상류층과 고위층이 많은 중심부에서 핍박을 당하거나 모반 등의 혐의로 처형되는 일은 다반사였다. 오랜 외로움, 오랜 출렁임, 오랜 헛수고, 오랜 배고픔, 오랜 병듦에서 방황하고 신음하고 좌절한 서민들에게 새 시대 혹은 새 천년시대에 관한 메시지가 새 희망에 부풀어 궐기하게 만들지만, 재물과 명예와 권세를 움켜쥔 자들에게는 이것이 공포의 메시지가 될 뿐 아니라, 서민의 궐기가 반란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새 천년시대를 가져다 줄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은 삶에 지치고 한에 서린 서민들이지,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때가 이르기 전에 또는 천국복음이 충분히 전파되기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마가복음의 전반부는 1-8장까지로써, 마가복음서에 실린 18개의 기적들 가운데 15개가 실려 있다. 그래서 마가복음서의 전반부는 기적의 복음으로 불린다. 이들 18개의 기적들은 신약성서에 가장 먼저 소개되었고, 마가복음서 전체 분량의 24퍼센트에 해당된다. 마가는 이들 기적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초인적인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였다. 예수님은 ‘능력이 많은 분’이기 때문에 각종 질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귀신을 몰아내시고 바람과 바다를 향해서 명령하시며, 적대자들을 침묵하게 만드신다. 그러므로 ‘능력이 많은 분’이신 예수님은 시련과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능히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이 같은 정황에서 전반부 1-8장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인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로 절정에 다다른다. 예수님의 병 고치심
사람들이 하필 “저물어 해질 때에” 병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예수님께 데려온 것은 그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이다. 병자들은 한시가 급했지만, 안식일 법 때문에 안식일이 끝나는 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해가 지고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병자들을 예수님께 데려 온 것이다. 많은 수의 구경꾼들도 몰려왔다. 자비하신 예수님은 이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시고 육체의 질병은 물론이고 영혼의 질병까지 모두 고쳐주셨다.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34절). 예수님께서 귀신이 자기에 대해서 말하지 못하게 하신 것이나 나병환자를 고치신 후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할 때가 아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소문이 너무 빨리 퍼져 천국복음이 충분히 전파되기도 전에 잡히시는 것을 경계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였다. 병 고침을 받은 사람들은 어찌된 영문인지를 묻는 이들에게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 그토록 자신을 괴롭혔던 병마로부터 놓임을 받은 사실과 그 기쁨이 너무 커서 가만히 입을 다물고 지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그런 이유로 예수님은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왔다”(45절). 이처럼 예수님의 인기는 인간들의 세속적인 욕망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면서 예수님의 죽음을 재촉시켰다.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당부는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또는 주변의 환경이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어떤 큰 힘에 의해서 움직여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경우에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며 기도하고 마음을 비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제 욕심을 채우려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은 당장엔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일는지 몰아도 결과적으로는 큰 손해를 입게 된다. 예수님의 기도
예수님의 인기는 당연한 결과였다. 율법(토라)과 규례(울타리 법들)는 유대인들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삶 전체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이었다. 율법과 규례가 한편에서는 유대인들에게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갖게 하였고 민족의 정체성과 응집력을 갖게 하였지만, 다른 면에서는 형식과 외식에 치우게 만들었다. 또 율법과 규례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에서 유대인을 유대인답게 만들어왔다. 또 율법과 규례는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 이방인들을 죄인 취급받도록 만들었고, 그들을 돕고 격려하고 치유하고 위로하기보다는 격리하고 파문시키며, 심지어는 그들에게 39대의 곤장이나 돌로 치는 투석형을 내리기도 하였다. 반면에 예수님은 랍비들의 안식일 법을 무시한 채, 심지어 예수님이 안식일 법을 어기고 있다고 비난하는 자들 앞에서조차 병자들을 고치셨고, 안식일일지라도 생명을 살릴 수 있으며,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는 말씀까지 하셨다(막 2:27). 예수님은 기도와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치고 죽음이 임박한 시간까지, 많지 않은 시간동안, 마치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암환자가 혼신의 힘으로 남은 삶을 불사르듯이, 부지런히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회당에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셨다. 예수님은 주어진 짧은 인생을 사람을 살리는 일을 위해서 뜨겁게 불사르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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