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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18: 희망의 일군(4)(막 5: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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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798 2016.03.0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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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18: 희망의 일군(4)(막 5:21-43)

병 고침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1)

onlytouch.jpg 군단 귀신이 들렸던 광인, 12년간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 병으로 죽어가던 딸을 둔 회당장 야이로, 이들은 모두 건강한 믿음을 소유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희망이란 불을 밝혀서 등경위에 두는 자들이었고, 희망의 성취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자들이었으며, 겨자씨처럼 작은 희망의 씨앗을 새들이 깃들 생명의 나무로 키워내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이란 바다에서 광풍을 만나 위험에 빠진 자들이었고,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는 자들이었으며, 유대교의 정결법 때문에 부정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절망이란 바다에 빠져 살려고 몸부림쳤던 자들이었다. 그랬던 그들이 불치병이란 광풍, 부정한 자란 광풍, 손가락질의 광풍에서 건짐을 받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된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희망이란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던 여인과 회당장의 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소녀야 일어나라”(34, 41절).

복음서에서 건강한 상태와 병든 상태는 역설적이다. 불치병이란 절망의 바다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자라도 희망이란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 자는 건강한 상태이고, 반대로 희망이란 믿음의 끈을 놓아버린 자는 병든 상태이다. 군단 귀신이 들렸던 광인, 12년간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 병으로 죽어가던 딸을 둔 회당장 야이로, 이들은 모두 건강한 믿음을 소유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배를 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절박한 심정으로 영접한 자들이었다. 배는 교회를 상징한다. 큰 무리가 배가 정박한 호숫가로 몰려들었다. 예수님은 그 호숫가에서 혹은 배 안에서 자연이 만들어내는 음향효과를 이용하여 무리를 향해서 천국복음을 선포하셨다. 그 무리 속에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도 있었고, 사랑하는 딸을 잃게 된 회당장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두 사람은 자신들의 병든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고, 그 상태에서 벗어나겠다는 희망과 의지와 믿음을 소유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불치병이란 광풍을 만났지만, 그 광풍을 잔잔케 하실 분이 예수님이시란 것을 아는 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병든 상태를 보는 눈과 능력이 많으신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을 듣는 귀와 예수님께로 다가갈 믿음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병 고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잔치에 참여할 자격자들이었다.

병 고침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2)

Daughter-of-Jarius.jpg 반면에 병든 상태에 놓인 자들은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4:12) 어리석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건강한 육체, 건강한 정신, 건강한 믿음을 가졌다고 자부하고, 병들고 가난하고 죄 많은 자들을 무시하고 그들에게 동무가 되신 예수님을 배척한 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죄라는 불치병에 걸린 자들이었으나 고침을 받지 못하고 구원의 방주에 오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불치병에 걸렸어도 민족성별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고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잔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예수님이 병을 고쳐 주신 자들은 스스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희망이신 예수님께 믿음을 표명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불치병으로 인해서 절망과 좌절에 빠졌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능력과 의술의 무력함을 철저하게 경험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오랜 병듦, 오랜 헛수고, 오랜 고통에 신음하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오랜 희망, 오랜 인내로, 하나님의 오랜 자비를 기다리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움켜쥔 행동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공동체로부터 격리당한 채 살아갔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손가락질을 받던 자들이었다. 유대교 정결법은 무덤과 피와 시체 등과 접촉하면 부정하다고 정죄하였다. 따라서 무덤사이에서 생활한 귀신들린 광인, 하혈을 했던 여인, 죽은 딸 등은 모두 부정한 자들이었다. 유대교와 신약성서기독교와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예수님은 유대교가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이들과 접촉하셨고, 교제하셨으며, 고쳐주셨다. 그들의 어둠을 빛으로, 그들의 혼돈을 질서로, 그들의 죽음을 생명으로 바꿔주셨다. 그러므로 신약성서기독교는 희망의 일군이요, 살리는 일군이요, 생명의 일군이요, 빛의 일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회당장 야이로는 유대교와 율법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율법을 가르치는 유대교의 장로였던 회당장이 자신의 어린 딸을 살려내지 못했던 것처럼, 유대교와 율법은 이스라엘 민중을 구원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만일 유대인들의 정치종교 지도자들이 회당장처럼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죽어가는 이스라엘을 살려낼 자가 그리스도 예수시란 사실을 인정하였다면, 머지않아 멸망할 이스라엘의 한계와 위급함을 알았다면,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 생명을 주실 그리스도란 사실을 알았다면, 지난 2천여 년 간 유대인들이 겪었던 비극은 초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병 고침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3)

veronica_veil_el_greco_1580.jpg 마가복음 5장에 등장하는 세 사람, 곧 광인과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았던 성인 여성과 이제 겨우 12살 된 소녀는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2절 “배에서 나오시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는 이방세계가 신약성서기독교로 인하여 생명을 얻는 장면이다. 군단 귀신이 들린 상태는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우상들을 숭배함으로써 그 위세가 등등(騰騰)했다는 것과 연결될 수 있고, 무덤들은 우상들을 숭배하는 이방인들의 어둡고 혼돈한 죽음의 상태였음을 말했다고 볼 수 있다. 배는 교회를 상징한다.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만나 군단의 숫자보다 더 많고 강력한 잡신들을 몰아내고 기독교국으로 거듭난 상황과 매치가 된다.

두 여인의 공통점은 12년이란 숫자이다. 성숙한 여인은 12년간 혈루증으로 고생했고, 병을 고치려다가 가산만 탕진했으며, 여전한 고통 속에서 살고 있었다. 만일 이 12란 숫자에 무슨 비밀이 숨어있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열두 부족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성숙한 여인은 이스라엘의 현실을 상징했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볼 때 신부인 여성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스라엘로 상징되는 이 여성은 피를 생명으로 여기는 유대교와 관련된 불치병에 걸려 있었다. 이스라엘은 정치적이든 종교적이든 고질병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피압박’이란 고질병에서 헤어나보려고 몸부림쳤지만 번번이 실패하였고, 몸과 마음이 처참하게 망가진 민족이었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그리스도였지만, 하나님의 참뜻을 헤아리지 못해서 잘못된 그리스도관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구약(옛 언약)이 아니라 신약(새 언약)이었다. 모세가 아니라 예수님이었다. 유대교가 아니라 기독교였다.

열두 살 먹은 회당장의 딸은 한창 꽃이 피는 소녀였다. 유대교 전통에서 12세 소녀는 종교적 성인이 되는 나이였다. 이제 갓 종교적 성인이 된 소녀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곧 신약성서기독교를 상징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복음서의 저작 시기는 이미 기독교가 종교적 성인이 된 주후 60-70년대 곧 주후 30년에 창립한지 한 세대가 지난 때였다. 그런데 이 시기에 기독교는 죽음의 위기에 처해있었다. 이 무렵 기독교는 네로의 박해로 대 환란을 겪고 있었고, 예루살렘은 전쟁의 불길에 휩싸였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야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영웅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러므로 이제도 우리에게 필요한 행동은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달리다굼” 하는 것이다. 죽음에서 깨어나 일어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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