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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47: 하나의 믿음을 위한 선물2(고후 8: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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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4,140 2015.08.1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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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47: 하나의 믿음을 위한 선물2(고후 8:16-24)

고린도교회에 파송된 자들

baptismofpaul_cappellapalatina.jpg디도는 마음이 착하고 신실하며 총명하고 열정을 가진 일군이었다. 디도는 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의 심정을 그대로 자신의 마음에 품고 있었다. 따라서 바울의 간절함과 동일한 간절함을 갖고 있었다. 바울의 서신을 들고 고린도교회에 왕래하였을 뿐 아니라, 바울로부터 모금을 장려하라는 임무를 띠고 재차 파송을 받았을 때에도 불평하지 않고, 바울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그 일에 자원하였다(16-17절). 이는 디도가 스승인 바울과 동일한 뜻과 목표를 갖고 열성으로 추진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바울은 디도를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다”(23절)고 칭찬하였다.

바울은 디도와 함께 가기로 한 두 사람이 누군지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바울은 추천서에서 첫 번째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일로 모든 교회에서 칭찬이 자자한 사람이요”(18절), 주의 영광과 모금프로젝트를 위해서 “여러 교회가 우리의 여행 동반자로 뽑아 세운 사람이며,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이 은혜로운 일을 돕는 사람”이라고 하였다(19절, 새번역). 두 번째 사람은 “모든 일에 열심”을 내는 일꾼으로 여러 번 확인이 된 사람이라고 소개하였다(22절). 19절의 정확한 뜻은 “우리가 예루살렘에 부조금을 가져갈 때 우리와 함께 갈 자로 교회들로부터 뽑힌 사람이다. 이 은혜의 모금프로젝트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가난한 자들을 도우려는 열정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일이다.”이다

바울이 믿을 수 있는 인물로 세 사람을 선정하여 고린도에 보낸 것은 모금에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고 돈 관리를 잘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 모금액이 거액이어서 그 무게와 운반은 무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화폐나 은행제도 및 송금제도가 없었던 때라 무거운 주화들을 여러 개의 가죽파우치에 담아 여러 사람이 나눠 짊어져야 했다. 그러나 환전은 필요치가 않았다. 로마 돈은 모든 속주들에서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선한 일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오해나 의심을 사지 않도록 조심해야하고, 비방 받을만한 일을 만들지 말아야했다(20-21절).

바울은 거액의 부조금을 모으고 있었다. 이것은 자칫 그 돈을 개인적으로 유용하거나 착복하려 한다는 오해와 비난을 살 수 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객관성 확보가 관건이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도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고전 16:3)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부조금이 모두 모아졌을 때, 바울은 그것을 여러 이방인교회의 대표들을 통해서 예루살렘교회에 전달되게 하였다(23절).

지역교회들의 대표자들

paul_preaching2.jpg 사도행전 20장에 따르면, 주후 58년 봄에 바울은 부조금을 들고 배를 이용하여 수리아로 바로 가려고 했지만, 유대인들이 공모하여 바울을 살해하려고 했기 때문에 마케도니아로 갔다가 아시아를 거쳐서 가게 되었다. 이때 아시아까지 함께 간 자들이 있었는데,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였다. 그들은 바울보다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기다렸다. 누가의 진술을 유추해 보면, 이들 7인은 바울과 함께 고린도에 머물다가 바울과 헤어져 다시 만나기로 정한 드로아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7인은 예루살렘으로 가져갈 부조금과 편지를 운반해온 지역교회들의 대표자들이었다. 그들의 이름 앞에 지역명이 나온 이유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이들은 예루살렘교회 앞에서 이방인교회들의 현황을 보고할 지역교회들의 대표들이자 이방인들 가운데서 복음으로 거둔 구원의 열매들이었다. 그렇더라도 이들 7인이 모두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갔는지는 확실치 않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누가를 만나 유월절을 보낸 후 누가와 함께 빌립보를 떠나 5일 만에 드로아에 도착하였고, 먼저 도착한 7인과 합류한 후에 일주일을 그곳에서 보냈다. 이들 중에서 바울과 누가와 함께 예루살렘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 사람은 드로비모뿐이다. 그리고 바울이 옥에 갇힌 지 2년 후에 네로의 재판을 받기 위해서 로마로 갈 때 같은 배에 승선한 사람은 누가와 아리스다고였다(행 27:2). 드로비모도 이들과 함께 가기로 했으나 병이 들어 밀레도에 남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딤후 4:20). 이런 정황을 종합해 볼 때, 바울이 디도와 함께 고린도교회에 추천한 사람들은 아리스다고와 드로비모였을 가능성이 높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부조금 모금에 적극 협력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디도를 파견하였고, 디도와 함께 보낸 두 사람은 이미 모금프로젝트를 완수한 두 지역교회들의 대표자들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도행전 20장에 따르면, 모금프로젝트를 끝낸 다른 지역교회들의 대표자들도 고린도에 모였던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들은 각각 자기들이 대표한 지역교회가 모아준 돈과 편지를 지참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들이 고린도에 모인 것은 바울이 그곳에서 3개월간 과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디도와 함께 온 두 지역 대표자들과 그 후에 합류한 다른 지역 대표자들이 가져온 부조금과 편지는 고린도교회를 분발시키는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

바울의 동역자들

disciples_of_paul2.jpg 수많은 바울의 제자들 가운데서 여기서는 디도, 아리스다고, 드로비모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언급하려고 한다.

먼저 디도는 안디옥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주후 51년경 예루살렘에서 개최된 사도총회 때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교회의 대표로 참석하였기 때문이다. 이 회의에 디도가 참석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이방인들의 대표자, 곧 이방인 선교열매의 산 증거를 사도들에게 보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후로 디도는 바울이 자신의 동료요 동역자로 생각할 정도로 주의 일에 열정을 갖고 헌신하였다.

디도는 임무수행능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디모데보다 연장자로서 디모데가 어머니로부터 유대인의 피를 받은 혼혈인이었다면, 디도는 순수 헬라인 혈통이었다. 고린도교회의 공동개척자였던 디모데가 바울의 편지를 들고 고린도에 파송되었을 때, 바울을 적대하는 유대인 에비온파가 교회에 숨어들어 혼탁시켰으나 이를 디모데는 막지 못하였다. 그러자 바울은 에베소사역을 잠시 중단하고 고린도를 짧게 방문하였으나 사태가 심각하여 어찌해보지 못하고 돌아와 눈물로 편지를 써서 디도에게 주어 전달케 하였다. 디도는 디모데와 바울이 막지 못한 사태를 능수능란하게 수습하고 바울이 기다리던 마케도니아로 돌아가 바울에게 기쁨을 안겨준 인물이었다. 이뿐 아니라, 디도는 유대인교회와 이방인교회가 상호동등하고 독립된 그러나 하나의 그리스도의 교회임을 표명하기위해서 추진한 모금프로젝트를 이해하고, 그것을 고린도에서 시작한 사람도 디도였고(6절), 성공시킨 사람도 디도였다(롬 15:26).

디도와 함께 고린도에 동행한 두 사람은 아리스다고와 드로비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드로비모는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에 있었다는 진술이 있고(행 21:29), 아리스다고는 바울을 로마로 호송하는 배에 누가와 함께 승선했다는 진술이 있기 때문이다(행 27:2). 데살로니가 사람이었던 아리스다고는 주후 57년 중반 바울이 에베소사역을 마칠 무렵에 발생된 은장색들의 폭동 때 마케도니아 출신 가이오와 함께 연극장에 끌려갔었고(행 19:29), 데살로니가 교회의 대표자로 뽑힌 인물이었다. 주후 60년경에는 바울을 로마로 호송하는 배에 누가와 함께 승선하였다. 옥중서신인 골로새서 4장 10절에서는 아리스다고가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힌 것으로 언급되었고, 전설에 의하면, 주후 67년경 네로 때 순교하였다. 드로비모는 시리아의 에데사 출신으로서 에베소교회의 대표로 뽑혀 예루살렘에 부조금을 전달한 사람이었다. 드로비모는 예루살렘에 체류하는 동안 성전영내에 들어간 것으로 오해를 받았다. 이 오해로 인해서 바울은 체포되어 가이사랴에서 2년, 로마에서 2년 옥살이를 해야 했다. 드로비모도 바울과 아리스다고와 마찬가지로 주후 67년경 네로 때 순교하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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