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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22: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 예배1(고전 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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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20,436 2015.04.2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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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22: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 예배1(고전 11:1-16)

유대인들의 복장

headcoverings_jews.jpg 성서시대에 유대인들은 근동문화에 영향을 받아 터번과 너울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터번은 태양열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고, 베개와 포켓으로도 쓰였다. 북왕국 이스라엘 왕 예후와 그의 사절단이 앗수르 왕 살만에셀 3세에게 조공을 바치는 장면이 님루드의 블랙 오벨리스크에 부조되었고(주전 853년), 북왕국 이스라엘 왕 베가 때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침략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을 잡아가는(왕하 15:29) 장면이 님루드의 부조에 새겨져있다. 이 부조들에서 터번을 쓴 이스라엘 사람들은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토라는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에게 “영화롭고 아름답게 보이도록”(출 28:40) 각각 ‘미쯔네페트’(mitznefet)와 ‘미그바오트’(migbaoth)를 쓰라고 지시하지만, 평민에 대한 규정은 없다. 평민에게 터번은 사치품이었을 것이다.

유대인 여성의 너울착용은 시기적으로 남성의 터번착용시기보다 훨씬 앞선 관행으로 여겨지며, 태양열로부터 머리를 보호하는 용도뿐 아니라, 정숙함과 정절의 표시였던 것으로 보인다. 리브가, 다말, 술람미 여자의 사례에서 보듯이, 젊은 여성들은 남성 앞에서 너울에 부착된 면사포로 얼굴을 덮었던 것으로 보인다.

tallit02.jpg오늘날 유대인들은 기도회와 토라공부 때 경외심과 복종의 표시로 머리에 ‘키파’(kipa, 빵떡모자)를 쓰지만, 이 관행은 주후 5세기경 탈무드란 책이 쓰였을 때 시작되었다. 오늘날 정통파 유대인들은 항상 머리를 가려 하나님을 경외하지만, 보수파는 기도회 때와 거룩한 장소에 들어갈 때 키파를 쓰며, 개혁파는 개인의 자유에 맡긴다.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 ‘탈리트’(Tallit, 보자기)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몸을 앞뒤로 흔든다. 탈리트 네 귀퉁이에 매단 긴 술은 ‘찌찌트’(tzitzit)라 불린다. 그들은 또 쉐마가 담긴 트필린(상자)을 이마와 팔에 끈으로 감아 붙들어 맨다. 탈리트에 찌찌트를 매달고, 트필린을 이마와 팔뚝에 붙들어 매다는 이유는 토라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바울시대의 유대인 평민들은 터번을 쓰지 않았으나 여성들은 너울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로마인들의 복장

greek_custom2.jpg고린도는 상업도시이자, 다인종사회였다. 수리아인, 이집트인, 동방인, 유대인, 헬라인, 로마인이 살았고, 군인, 평민, 빈민, 해방노예, 노예 등이 살았다. 인구 10여만 명 가운데 노예가 3분의 1를 차지했기 때문에 근성, 도덕성, 윤리성이 낮은 도시였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인들 모두가 터번을 썼거나 너울을 썼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수리아인, 이집트인, 동방인, 유대인들은 터번을 쓰거나 너울을 착용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리스-로마인들은 혼례식을 치르는 신부, 농업의 여신 데메테르와 여성사제들, 델포이 신전의 제니, 불의 여신 베스타의 동정녀사제들, 로마사제들과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최고 신관으로서 너울을 썼을 뿐이다. 아무튼 고린도는 다양한 인종과 신분 또 수많은 우상들만큼이나 다양한 문화와 관습과 다양한 의복패션과 헤어스타일이 공존했다.

그리스-로마인들은 대체로 아무 것도 쓰지 않았고, 여성의 경우 헤어밴드나 머리끈으로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고린도의 전통적 관습이 공적으로 머리를 덮는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고, 너울을 쓰지 않는 귀족여성들의 유행을 따라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이 충고한 것이라는 주장과 유대인 여성의 너울착용 관습을 고린도교회에 이식시키려했다고 주장도 있다.

bacchuspriestess.jpg바울 당시 그리스-로마인들은 머리를 가리지 않고 종교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1장에서 특별히 언급한 행위는 기도, 예언, 주의 만찬의 격식이었다. 바울시대에 바쿠스(디오니소스) 여성사제들은 솔방울과 리본으로 장식한 디오니소스 지팡이(thyrsos)를 손에 들고 술에 취해 예배자들과 함께 머리를 앞뒤로 심하게 흔들며 광적이고 음란한 춤을 추었다. 바울이 기도나 예언하는 여성들에게 수건으로 머리를 덮어 옷차림을 단정히 할 것과 성도들이 주의 만찬을 격식을 갖춰 시행할 것을 권면한 이유를 이런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복장

kalumma_christiansects.jpg구약시대에 대제사장이 미쯔네페트와 제사장들이 미그바오트를 쓴 목적과 탈무드시대이후 13세 이상의 계명의 아들들이 키파를 쓴 목적은 전혀 달랐다. 제사장들은 “영화롭고 아름답게 보이도록”(출 28:40) 썼고, 상류층의 남성들도 같은 목적으로 터번을 썼다. 따라서 바울시대의 유대인들 중에는 제사장이나 상류층만이 터번을 착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경외심과 복종의 표시로 키파를 쓰는 관행은 주후 5세기경에 시작되었으므로 바울시대인 1세기에는 키파를 쓴 유대인들이 없었다. 키파를 쓰는 목적은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는 인식, 곧 하나님의 임재를 상기시켜 신앙양심을 발동케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키파착용에서 보듯이, 너울착용은 권위에 대한 존경과 순종의 표시였다.

kalumma_paganreligions.jpg유대교의 사제들이 터번을, 로마사제들과 최고 신관이었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너울을 썼던 것에서 보듯이 바울시대에 일부 종파의 남성사제들은 공적 예배 때 터번이나 너울을 썼다. 반면에 바울은 남성에게 머리를 덮지 말라고 함으로써 기독교예배를 차별화했다. 또 아스다롯, 아프로디테, 디오니소스의 여성사제들이 너울을 쓰지 않고 예배자들과 더불어 광적이고 음란한 행위를 행한 것에 반해서 바울은 기도나 예언을 하는 여성들에게 너울로 머리를 덮어 몸가짐을 단정히 할 것과 성도들이 주의 만찬에 참여할 때 격식을 갖추게 함으로써 기독교예배를 차별화했다.

추정이지만, 3-10절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의식한 말씀이고, 11-16절은 여성들에게 회당의 성소출입을 금한 유대사회와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여긴 그리스-로마사회의 관습을 월등히 뛰어넘는 평등의 복음으로 여겨진다. 교회공동체의 머리는 그리스도뿐이고, 성도들은 지체들이다. 지체들은 동등하지만, 기능과 역할에서 다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나 자신을 낮춰 사람이 되셨다. 이 점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머리가 되신다. 여자도 남자처럼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평등한 존재이다. 아담이 먼저 창조되고 이브가 나중에 창조되었다고 우열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가장 늦게 창조된 인간은 먼저 만들어진 만물보다 열등하게 된다. 그러므로 형 동생처럼 질서와 기능면에서만 남자가 여자의 머리가 된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우주를 상징한 성전의 모든 담과 문들, 곧 민족의 담(미문), 성별의 담(니카노르 문), 신분의 담(성소 문), 계급의 담(지성소 휘장)을 허시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갈 수 있게 하셨다고 했다. 그러므로 지구상의 종족 수만큼이나 각기 다른 의복패션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허락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머리를 덮어야할 이유가 더 이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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