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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26: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 예배5(고전 1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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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794 2015.05.0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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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26: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 예배5(고전 13:1-13)

몸과 지체들의 상호작용

사람의 몸은 약 70조개에 달하는 살아 있는 세포와 세포외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직과 기관과 기관계로 조직되어 있다. 몸에는 머리, 가슴, 배, 손과 발이 있고, 몸의 뼈대를 근육이 둘러싸고 있으며, 그 겉을 피부가 덮고 있다. 또 뼈는 머리, 척추, 흉곽, 골반, 사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생명유지를 위한 몸의 작용에는 크게 8가지가 있다. 경계유지, 움직임, 반응, 소화, 대사, 배설, 생식, 성장이 그것들이다. 건강유지를 위한 몸의 기관계에는 11가지가 있다. 피부계, 골격계, 근육계, 신경계, 내분비계, 심혈관계, 림프계와 면역계, 호흡기계, 소화기계, 비뇨기계, 생식계가 그것들이다.

body.JPG 몸의 각 기관들은 생명유지와 건강유지라는 두 가지 공동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서로 협동하고 긴밀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기관계를 유기체라고 부른다. 소화기계통과 호흡기계통은 음식물과 산소를 각각 섭취하고, 이들은 혈액에 의해서 모든 체세포에 분배된다. 대사 노폐물 배설의 경우, 소변은 비뇨기계, 대변은 소화기계, 이산화탄소는 호흡기계에 의해서 배출된다.

사람의 몸은 그 어떤 정밀한 기계도 비교의 상대가 되지 못할 만큼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구조와 기능을 갖고 있다. 이 같이 몸을 구성하고 생명과 건강을 유지시키는 수많은 조직들에서 어느 것 한 가지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몸 상태가 건강하여 활력이 넘치려면, 몸을 구성하는 이 모든 지체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고 상호작용해야 된다. 지체는 개별적이지만 몸 전체에 부속된 유기체이다. 지체는 개별적이지만, 몸 전체를 위해서 기능한다. 지체는 개별적이지만, 다른 지체들과 상호작용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생명과 건강을 유지시키는 지체들이다. 성도는 개별적이지만 교회공동체에 소속된 유기체이다. 성도는 개별적이지만, 교회공동체를 위해서 기능한다. 성도는 개별적이지만, 다른 성도들과 상호작용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공동체와 성도들과의 관계이다. 교회의 은사들과 직분들은 몸의 생명유지와 건강유지라는 두 가지 공동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서로 협동하고 긴밀하게 작용하는 기관계와 같다. 은사들과 직분들에 계급이나 경중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유기체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고, 교회와 성도상호간에 덕을 세우기 위한 것들이다.

아가페(Agape)와 에로스(Eros)의 차이

Agape_feast.jpg 은사와 직분과 사역에 높낮이와 경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바울이 “더욱 큰 은사”(12:31)로써 아가페 사랑을 강조한 것은 그것이 몸에 필요한 산소와 같기 때문이다. 몸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들에는 음식물과 산소 두 가지가 있다. 교회공동체에 필요한 음식물은 하나님의 말씀과 주의 만찬이고, 산소는 사랑이다. 음식물과 산소가 몸에 필요한 영양분과 피를 만들어 심장박동과 혈관을 통해서 온몸에 공급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과 주의 만찬과 사랑은 교회공동체의 생명과 건강을 유지시키는 양식이자 산소이다.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교회의 기초임을 분명히 밝혔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 생명을 살리고 유지시키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임을 천명하였다. 이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교회공동체의 생명을 살리고 유지시키는 음식물이고, 주의 만찬은 이 음식물의 물질적 표현이다.

Eros-c340-320bc_Waltersartmuseum.jpg몸의 지체들이 생명유지와 건강유지라는 두 가지 공동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도 사랑 안에서 상호작용한다. 사랑은 교회를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윤리의 규범이다. 다른 은사들과 직분들과 사역들도 교회를 건강하게 만드는데 필요하고 크게 도움이 되지만, 그것들이 옳고 바르게 작용하는가를 판단하는 잣대는 사랑이다. 사랑으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 사랑으로 나누는 주의 만찬과 애찬, 사랑으로 작용하는 은사들과 직분들과 사역들이 진정으로 교회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파이드로스>(Phaidros)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에로스에 의한 사랑을 가장 고귀한 형태의 광기로 칭송하였다. 또 플라톤은 <향연>(Symposion)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에로스는 처음에는 육체의 미, 다음에는 정신의 미, 그리고 최후에는 미 자체의 세계로 사람들을 높여 불사(不死)하는 보물을 얻게 하는 조력자라고 하였다. 플라톤은 사랑의 광기를 육체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에로 발전시켜 궁극적으로는 이데아세계로까지 승화시켜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처럼 플라톤의 에로스가 불완전에서 완전을 향하는 치사랑이었다면, 바울이 강조한 아가페 사랑은 완전에서 불완전을 향하는 내리사랑이다. 아가페는 거의 쓰이지 않았던 단어였으나 주전 2세기경부터 헬라어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에 쓰였다.

아가페 사랑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에서 이미 사랑의 법으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그리스도인을 신령한 사람, 쾌락과 전적 자유를 추구하는 방탕주의 그리스도인을 육신에 속한 사람으로 규정한바가 있다. 13장 1-3절에서 강조된 부정적 과정법, “만일 사랑이 없다면,” 방언과 천사의 말도, 최고조에 이른 예언의 능력과 산을 옮길 만한 믿음도,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구제와 봉사도, 요란한 타악기소리에 불과한, 아무 것도 아닌, 아무 유익도 없는 육신에 속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반면에 바울은 진실로 신령한 것은 아가페 사랑이라고 하였다. 아가페란 하나님과 그리스도님께서 솔선수범하신 사랑, 바울이 솔선수범한 사랑,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할 사랑을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엡 5:1),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라”(빌 2:5), “나를 본받으라”(빌 3:17)고 권했던 것이다.

아가페 사랑은 흔적을 남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예수의 흔적”은 예수님의 몸에 생긴 채찍자국, 못 박힌 자국, 창에 찔린 자국을 말한다. 비슷한 흔적이 바울의 몸에 있었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한 그리스도의 노예로서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받아 생긴 흉터들을 말한다.

세계는 하나님이 당신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신 흔적이다. 완전하신 절대자 하나님께서 부족하여 죄와 허물을 피할 수 없고 죽을 수밖에 없는 피조물을 만들어 굳이 당신의 거룩하심을 훼손시킬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시고 인간을 만드셨고, 만물을 그에게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는 당신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시고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신 하나님의 몸의 흔적이다. 마찬가지로 바울 자신의 몸의 흔적도 교회를 사랑하여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한 사도의 흔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울은 4-13절에서 아가페 사랑이 무엇인지를 서술하였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greek_bronze_mirror_corinth.jpg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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