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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31: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 예배10(고전 15: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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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086 2015.06.0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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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31: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 예배10(고전 15:35-58)

불로불사를 꿈꾸는 인간

chin_emperor.jpg 인간은 불멸과 영원을 꿈꾼다. 생명공학기술, 대체장기생산기술, 의료기기생산기술, 3차원 인쇄(3D 프린팅)기술 등의 발달로 불로불사(不老不死)를 바라는 인간의 꿈이 실현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문의 미이라관과 진시황제의 병마용갱들이 원시적인 방법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아바타(성육신, 분신, 윤회, Avatar), 완전기억, 대체장기 등으로 수명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포스트휴먼(인간이후)시대 또는 신인류시대를 열어 불멸의 꿈을 이루려고 한다. 예를 들어, 삶의 모든 것을 기록 장치에 남기는 완전기억 또는 전자기억 형태로 자신의 일생을 영원히 남길 수 있고, 사후에도 본인의 화신(化身) 아바타가 나오는 가상시뮬레이션(cyber simulation)을 통해서 후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또 인간의 몸의 모든 장기를 복제하여 부품 교체하듯이 대체해 나감으로써 늙지도 죽지도 않는 신인류시대 또는 포스트휴먼(인간이후)시대를 열 수 있다.

arcadiapoussin.jpg 그러나 인간의 가장 심각한 딜레마는 그 어떤 과학기술로도 인간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생명을 연장시켜 죽음을 늦출 수는 있으나 죽음을 아예 없애지는 못한다. 그 점이 인간과 기술의 한계점이다. 프랑스 화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이 그린 <아르카디아의 목동들>이란 그림을 보면, 목동들이 지상낙원 아르카디아에서 무덤을 발견하고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묘비에 이런 글까지 있었다. “나는 아르카디아에도 있다.” 이 말은 죽음이 지상낙원에도 있다는 뜻이다. 충격에 빠진 한 목동은 묘비에 기대 선채 사색에 잠겼고, 다른 목동은 한쪽 무릎을 땅에 꿇은 채 손가락으로 묘비명을 되짚어본다. 또 다른 목동은 우수에 잠긴 눈으로 뒤에 선 여인(역사)을 돌아보며 손가락으로 묘비를 가리킨다. “이게 사실인가?” 목동의 어깨에 손을 얹은 엄숙한 여인(역사)이 주는 답은 간단명료하다. 부와 명예와 권세가 아무리 많고, 일평생 누린 쾌락이 아무리 클지라도, 또 인간의 생명공학기술, 대체장기생산기술, 의료기기생산기술, 3차원 인쇄(3D 프린팅)기술이 아무리 발전할지라도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히 9:27)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우치는 것이 바로 인간(너 자신)이 누군가를 아는 것이다.”

육의 몸과 신령한 몸

imortality_science.jpg바울은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 수 있으며, 어떤 형체가 된단 말인가?”(35절)라며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의 반박에 대해서 여러 가지 비유로 부활이전의 육신과 부활이후의 육신의 차이점을 설명하였다.

36-38절에서 바울은 식물의 씨앗들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새싹이 나오듯이, 또 새싹이지만, 종자에 따라 이전 것과 동일한 형체이듯이, 인간도 죽으면 각 사람에 따라, 새로운 몸이지만, 동일한 형체를 주신다고 하였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일순간에 알아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부활한 사람은, 본질적으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육신을 갖지만, 형태적으로 부활이전의 사람과 동일하다는 뜻이다. 부활한 몸과 부활이전의 몸과의 차이점은 부활한 몸이 영화로운 성화된 몸인 반면, 부활이전의 몸은 영육이 죄악에 물든 몸이다. 이 죄악에 물든 몸이 죽으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구원을 약속받은 자들은 영화로운 성화된 몸으로 부활하게 된다. 이는 또 영적부활이 아닌 육체부활을 뜻한다. 영적부활은 복음을 듣고 믿고 회개하고 신앙고백하고 침례 받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죄 사함을 받고 영적으로 성화되고 의롭다함을 받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육체부활은 육적으로 성화되고 영화롭게 되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39-49절에서 몸의 생김새가, 사람, 짐승, 물고기, 새가 다르듯이, 또 해, 달, 별의 밝기가 다르고, 별과 별사이의 밝기가 다르듯이, 부활한 몸도 이생의 몸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42절부터 보면, 썩을 것과 썩지 않을 것의 차이, 욕된 것과 영광스러운 것의 차이, 약한 것과 강한 것의 차이, 육의 몸과 신령한 몸의 차이가 그것들이다. 바울은 육의 몸은 첫째 아담으로 대표되는 생령(땅의 사람)에 속하여 흙으로 돌아가지만, 신령한 몸은 둘째 아담(예수님)으로 대표되는 생명의 영과 하늘에 속하여 하늘로 돌아갈 것이며, 이생에서는 땅에 속한 첫째 아담의 형상을 입고 살지만, 하늘에서는 하늘에 속한 둘째 아담의 형상을 입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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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부활의 몸

avatar.jpg50절의 “혈과 육”은 썩을 것, 욕된 것, 약한 것, 육의 몸을 말하며,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가 신령한 하늘에 속한 곳이므로 유업을 받고 그곳에 들어가 살려면 썩지 않을 것, 영광스러운 것, 강한 것, 신령한 몸, 곧 부활의 몸을 입어야 한다는 뜻이다.

51절의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는 그리스도께서 신령한 하늘에 속한 자들에게 신령한 몸을 입혀주시기 위해서 재림하실 때, 그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재림을 알리는 나팔소리에 부지불식간에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뜻이다. 52절의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는 이미 죽어 땅속에 묻힌 그리스도인들도 재림을 알리는 나팔소리에 순식간에 부활하여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을 입을 것이란 뜻이다.

53-54절은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것이 죽지 않을 것을 입으며,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을 입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입으며, 육의 몸이 신령한 몸을 입는 그 순간이 바로 사망을 멸망시키는 순간이요, 음부의 세계가 정복되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승리하는 순간임을 말한다.

55절의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는 호세아 13장 14절의 인용으로써 “사망”은 “스올” 곧 음부 또는 죽음의 세계를 말하고, 사망의 “승리”와 “쏘는 것”은 죽음이 인간에게 주는 극심한 공포, 재앙, 고통을 말한다. “어디 있느냐?”는 기세등등하던 골리앗 같은 적장을 단칼에 쓰러뜨린 다윗 같은 무장이 비웃는 말로써, “기고만장하던 독종이 뻐드러진 꼴이 보기 좋다”는 뜻이다. 56절의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는 죄는 율법에서, 사망은 죄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57-58절에서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늘 감사하고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권하면서, 우리의 수고가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활의 몸과 영생을 주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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