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기35: 갈등과 화해1(고후 1: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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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35: 갈등과 화해1(고후 1:12-24)
고린도전후서가 쓰인 배경
바울은 주후 34년경에 개종하였고, 10여년 후에 시리아의 안디옥교회에 초빙되었으며, 1-2년쯤 후인 40년대 중반에 선교여행에 나서 키프로스와 남 갈라디아지역에 복음을 전파하였다. 바울은 주후 51년경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였고, 51-2년경에는 고린도에서 1년 6개월간 체류하며 고린도와 인근 도시들에 복음을 전파하였다. 바울은 52-3년경에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건너갔다가 예루살렘을 거쳐 안디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주후 55-7년경에 에베소에서 2년 3개월간 체류하며 에베소와 인근 도시들과 심지어 오늘날의 알바니아와 유고슬라비아 지역인 일루리곤(Illyricum, 롬 15:19)에까지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모든 복음을 바울이 직접 전파한 것은 아니었다. 고린도와 에베소는 바울이 동료 사역자들을 먼 이웃나라에까지 파송한 거점도시들이었고, 드로아와 빌립보는 이들 지역들을 오가는 허브였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쓴 것은 고린도를 떠난 지 대략
5년만인 주후 57년 봄쯤이었다. 그 5년간 바울이 몇 번이나 고린도교회를 방문했는지, 몇 번이나 편지를 보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두
차례의 공식적인 방문과 서신들 중간에 최소한 한 차례의 짧은 가슴 아픈 방문(12:14; 13:1)과 두 차례 더 편지를 썼다. 고린도전서
이전에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고 적어 보낸 편지가 있었고(고전 5:9) 고린도후서 직전에 디도 편에 보낸 “눈물로 쓴 편지”(고후
2:4)가 있었다. 학자들의 다수는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고 쓴 편지에 침묵하지만, “눈물로 쓴 편지”에 대해서는 고린도후서
10-13장이 그 내용이라고 주장한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쓰게 된 것은 ‘글로에의 집 편’(고전 1:11)으로부터 고린도교회에 파당과 분열(1장), 음행(5장)과 소송(6장)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고린도교회의 대표들이 보내온 편지(고전 7:1)에 결혼과 이혼, 독신과 재혼의 문제(7장), 우상의 제물과 그리스도인의 자유(8-9장), 이교축제에 물든 자들의 공적예배에서의 무질서 즉 주의 만찬(10장), 기도나 예언할 때의 옷매무세, 특히 머리에 무엇을 쓰는 문제(11장), 은사(12-14장) 및 부활(15장) 등에 대해서 물어왔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들 문제들의 해결책을 상세히 적어 디모데 편에 보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 디모데가 물리칠 수 없는 강력한 바울의 적대자가 나타났다. 이 소식을 듣고 바울이 잠시 고린도를 방문했는데, 이때 바울은 가슴 아픈 일을 당했다. 에베소로 돌아온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위기를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먹고 “눈물로 쓴 편지”를 디도의 편에 보냈다. 바울은 디도를 드로아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조급증에 빌립보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디도를 만나 적대자들의 반란이 가라앉았다는 소식을 듣고, 화해의 뜻이 담긴 글을 써서 디도의 편에 다시 보냈는데, 그 글이 고린도후서이다.
바울의 고린도 방문취소에 대한 해명(1)
고린도후서는 주후 57년 가을쯤에 빌립보에서 기록되었다. 봄쯤에 전서를 보내고 나서 여름쯤에 가슴 아픈 방문과 눈물로 쓴 편지를 보냈고, 그 결과를 보고받고 나서 후서를 썼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해 11월말쯤에 고린도를 세 번째로 방문하여 58년 2월경까지 머물렀고, 춘분이 지난 음력 보름날에 닿는 유월절 명절을 빌립보에서 보냈으며(행 20:6), 5월 중순부터 6월 초순에 닿는 오순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낼 때 성전에서 체포되어 가이사랴 감옥에 2년간 투옥되었다가 주후 60년에 베스도가 총독으로 부임하자 네로에게 재판을 신청하여 로마로 이송되었다.
바울은, 만일 후서 10-13장이 눈물로 쓴 편지가 맞는다면, 13장 1-2절에서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참고 12:14)고 단언한 약속을 지키지 아니한 것을
놓고 적대자들이 1장 12절에서처럼 바울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혹은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지 않고, “육체의 지혜”를 따른 계획을
세웠으나 지키지 않았다고 비아냥거렸거나 바울 자신이 스스로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어져 계획했던 방문을 취소한 이유를 설명한 글이라고 볼 수
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직전에 고린도에서 과동하기로 결정하였고, 이 결정은 주후 57-8년 사이에 시행되었으나 그 전 여름쯤에 한 번
더 방문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방문은 눈물로 쓴 편지를 전달한 디도가 어떤 소식을 가져오느냐에 달려있었다. 다행히 디도가
적대자들이 굴복했다는 기쁜 소식을 가져왔고, 바울로서는 불편하고 불필요한 방문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바울은 방문 대신에 화해의 뜻이
담긴 고린도후서를 써서 디도의 편에 다시 보냈던 것이다. 바울은 18-20절에서 하나님이 신실하시고 믿을만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일군인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 또한 믿을만하며, 자신들이 전파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마찬가지여서 일구이언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 23-4절에서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20-22절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믿을만하기 때문에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된다고 하였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를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면 구원을 주시겠다고 한 약속을 선수금과 인감으로 보증하시기 위해서 성령님으로 기름을 부으신 것과 같아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은 “예”면 “예”, “아니오”면 “아니오”라고 하였다. 그만큼 바울의 계획은 신중하고 확고하였으나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이 눈물로 쓴 편지를 받고 뉘우치고 믿음에 섰음으로, 바울은 성도들의 믿음을 주관하는 자가 아니라 돕는 자로서 남기를 원하여 계획을 취소했노라고 해명하였다.
바울의 적대자들: 에비온파
바울은 전서에서 율법주의자들과 자유지상주의자들을 적대자로 부르지 않고 “육신에 속한 자”로 불렀다. 이들은 바울로 하여금 가슴 아픈 방문을 하게 만들고 눈물로 편지를 쓰게 만든 자들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후서의 적대자는 전서가 전달되기 전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다른 곳에서 침투한 자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그와 그를 추종한 자들은 누구였는가?
이들은 분명히 “히브리인”(11:22)들로서 “지극히 큰 사도들”(11:5, 12:11)을 빙자한 “거짓 사도”(11:13)들로서 “다른 예수”와 “다른 복음”(11:4)을 전한 자들이었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바울의 적대자가 갈라디아지역 교회들에도 나타나 “다른 복음”(갈 1:6,7,9)을 전하고 있었다. 바울은 그러한 자들이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고(갈 1:8,9)고 강한 어조로 경고하였다. 또 바울은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다”(고후 11:13)고 하였다.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 때까지 히브리파인 팔레스타인 출신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대다수가 예수운동을 유대교의 한 분파나 메시아운동 정도로 여겼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유대교인들’ 또는 사람들이 ‘나사렛파’(노쯔림, Notzrim)로 부른 유대교의 한 분파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 나사렛파의 근본주의적 성격을 띤 그룹이 에비온파이고, 복음주의적 성격을 띤 그룹이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헬라파인 디아스포라 출신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다. 에비온파는 이방인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구원론, 즉 하나님의 구원은 민족성별 남녀노소의 차별 없이 또 율법에 상관없이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데서 온다는 바울의 가르침에 반발해서 생긴 조직이었을 수 있다.
문자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뜻하는
에비온파(Ebionites)는 예수님의 신성과 동정녀 탄생을 부정하는 대신,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선지자 혹은 율법의 근본정신을 일깨워준
참교사로 떠받든다. 또 그들은 이 그룹의 지도자로 예수님의 이복형제인 야고보를 꼽는다. 에비온파는 랍비들이 만든 울타리법들을 인정하지 않고,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 그대로와 노아홍수이전처럼 채식을 고집한다. 에비온파는 바울의 사도직을 부정할 뿐 아니라 이방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한 유대교의 배신자와 이단자로 보기 때문에 바울서신들을 성서로 받아드리지 않는다. 그들이 신약성서에서 받아드린 책은 히브리어 마태복음뿐이다.
반면에 나사렛파는 예수님의 신성과 동정녀 탄생 등을 믿는다. 따라서 나사렛파는 큰 틀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범주에 속하지만, 에비온파는 전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다. 에비온파는 예수님을 따름과 실천의 대상으로 삼지만, 섬김과 예배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에비온파는 기독교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유대문화와 이방문화들을 정치적으로 혼합한 이방종교에 불과하다고 본다. 에비온파들은 역설적으로 신약성서교회는 구약성서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증언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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