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기37: 화해의 복음1(고후 2:14-17)
본문
손 내밀기37: 화해의 복음1(고후 2:14-17)
모형으로써의 개선행진(Pax Romana)
고린도후서 2장 14절에서 바울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하였다.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우리를 개선행진에로 인도하신다”(God who always leads us in triumphal procession in Christ)는 뜻이다. 헬라어 ‘드리암뷰오’(thriambeuo)는 “개선행진으로 인도하다”는 뜻으로 로마황제나 장군들이 전쟁에 나가 이긴 후에 돌아올 때 전과(戰果)를 적은 현판들을 들고 전리품목과 포로들을 군중들에게 구경시키는 개선행진을 말한다.
바울시대이후 황제들은 신성시되었고, 그들의 승리는 여신 니케와 관련지어졌다.
로마군 총사령관이 되어 유대-로마전쟁(주후 66-70)을 지휘했던 티투스는 주후 81년경에 로마에 개선문을 세웠는데, 비문에 “로마의
원로원(senate)과 시민들이 신성(Divine) 티투스와 베스파시아누스에게 헌정함”이라고 새기게 하였다. 그리고 개선문의 안쪽에 개선식
장면들을 부조케 하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토가를 걸친 티투스가 네 필의 말이 끄는 전차에 올라타 있고, 날개를 펼친 여신 니케(승리)가
티투스의 머리에 월계관을 씌우는 장면이다. 티투스의 전차 옆에 상체를 드러낸 평민과 토가를 걸친 원로원의 의원을 상징적으로 배치하였고, 여신
로마 또는 여신 용맹으로 하여금 말고삐를 붙잡게 하였다. 로마제국에 승리와 평화(Pax Romana)를 가져다주는 이가 황제라는 메시지를 담았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인간에게 진정한 평화와 승리를 가져다주시는 분은 유일하신 하나님뿐이시고, 매일 개선행진에로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라고 믿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개선행진의 모형을 히브리인들이 광야에서 펼쳤던 가나안땅을 향한 행진에서 찾았다. 늘 배고픔과 목마름과 곤고함과 피곤함과 핍박과 싸움이 있었지만, 구름기둥이 히브리인들을 가나안땅에로 인도하였듯이,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항상 개선행진에로 인도하신다고 확신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9절에서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은 자신들의 처지가 종종 개선행진에 강제로 참여한 노예들처럼 처참하였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대적자들을 물리쳐 주신 것처럼, 바울은 14절에서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참된 승리자로 개선행진에 참여시켜주신다고 확신하였다.
실체로써의 개선행진(Pax Christi)
바울이 확신했고 내다보았던 것처럼,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최종적인 승자가 되었고, 제국은 그리스도의 평화로 넘쳐나게 되었다. 이 일의 시작은 주후 313년 2월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1세(주후 272-337)와 리키니우스(Licinius)가 밀라노에서 회담하고 6월에 발표한 칙령으로 이뤄졌다. 이 밀라노 칙령으로 인해서 모든 종교들에게 자유가 허락되었고, 몰수당한 교회의 재산들이 반환되었으며, 기독교 탄압을 위한 법안들도 모두 폐지되었다.
밀라노 칙령이 발표되기 8개월 전인 주후 312년 10월 28일에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가 로마 근교의 밀비우스 다리에서 전투를 치른 일이 있었다. 이 전투에서 콘스탄티누스가 대승을 거둠으로써 사두정치체제를
끝내고 단독 황제가 되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밀비우스 다리 전투 직전에 콘스탄티누스가 환상을 보았고, 즉각
군기(labarum)와 군인들의 방패에 그리스도(XPISTOS)의 첫 두 글자 ‘키-로’(XP=CHR)를 새기게 하였더니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고
한다. 동시대의 인물로서 가이사랴의 주교이자 최초로 교회사를 저술한 유세비우스(Eusebius)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이 환상을 본 직후부터
‘키-로’가 새겨진 투구를 즐겨 썼다고 기술하였다.
유세비우스의 진술을 입증할만한 은화가 주후 315년에
이태리 북부 티키눔(Ticinum)에서 발행된바 있다. 이 은화는 증정용으로 만들어져 널리 통용되지는 않았지만 이 은화의 가치가 큰 이유는 주후
312년에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의 환상을 보고 ‘키-로’를 군기와 방패에 새기게 한지 불과 3년 이내에 주조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 은화에
새겨진 황제의 투구벼슬에서 ‘키-로’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환상을 본지 25년 후인 주후 337년에 발행된 동전 앞면에 월계관을 쓴 두상 주위로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VS MAX(imus) AVG(vstvs)>라고 썼고, 뒷면에 뱀을 찍어 누른 군기사이에 “대중의 희망 콘스탄티노폴리스”<SPES PUBLICA CONS(tantinopolis)라고 쓴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군기 상단에는 콘스탄티누스가 환상에서 본 그리스도(XPISTOS)의 첫 두 글자 ‘키-로’(XP)를 겹쳐서 썼다. 이후 ‘키-로’는 교회와 비잔틴제국의 황제들이 즐겨 사용한 그리스도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향기로써의 개선행진
밀라노 칙령이 발표된 지 80년 만에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었다. 4세기말 밀라노에는 주 지방장관이었던 암브로시우스가 극적으로 주교로 임명받고 삼위일체론을 지지하고 있었고, 밀라노에 머물던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도 380년에 침례를 받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주선으로 325년에 만들어진 최초의 신앙고백서이자 삼위일체신앙을 강조한 니케아신조를 신봉하게 되었다. 삼위일체론자들과 단일신론자들 사이의 대립이 극심하던 때였지만, 테오도시우스는 380년 2월 28일에 모든 시민이 니케아신조를 고백하라는 칙령을 발표하였다. 그때부터 삼위일체설을 믿는 사람들만 보편적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되었고, ‘보편적’(catholic)이라는 호칭이 최초로 문서에 등장하였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주후 385년부터 희생 제사를 금지시켰고, 391년에 로마와 이집트에서
이교숭배를 금지시켰으며, 392년에는 전 제국에서 금지시킴으로써 아우구스티누스가 믿었던 것처럼 기독교 천년왕국시대를 활짝 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93-5년 사이에 주조된 금화 앞면에는 “우리의 주 테오도시우스 경건하고 유복한 황제”<D(ominus)N(oster)
THEODOSIVS P(ius)F(elix) AVG(vstvs)>라고 쓰게 하였고, 뒷면에 테오도시우스가 오른손에 군기, 왼손에 지구위에
선 여신 니케(승리)를 올려놓고 포로를 밟고 선 모습과 “세 명의 황제들의 승리, 신성한 돈, 금관청(金官廳)에 의한
순금”<VICTORIA AVGGG(=Augustorum) S(acra)M(oneta) COM(es Auri)OB(ryza)>이라고
쓰게 하였다.
바울은 에베소에 체류하는 동안
돌에 새긴 승리의 여신 니케를 수없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우리를 개선행진에로 인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승리는 생명을 살림으로써 얻는 승리요, 이 행진은 생명의 향기를 뿌리는
것임을 확신하였다. 그것은 황제들이나 장군들이 많은 사람들을 죽임으로써 얻는 승리와 노예로 사로잡고 재물을 탈취하며 사망의 냄새를 풍긴 행진과
극명하게 대립되는 것이다. 또 이 향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이익을 취하는 장사꾼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답게 진실한 마음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함으로써 풍기는 생명의 향기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적자들에게는 그것이 죽음의 냄새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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