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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38: 화해의 복음2(고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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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944 2015.07.0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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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38: 화해의 복음2(고후 3:1-6)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통

바울시대에는 교통과 통신수단이 오늘날과 같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의 신분을 확인하려면 추천서가 필요하였다. 신약성서가 아직 없던 때여서 방문자의 가르침이 옳은 것인지를 확인할 마땅한 수단이 없던 때였다. 그런데다가 이 시대에는 떠돌이 사역자들이 많았고, 그들 중에는 이단자인 에비온파와 영지주의자들이 있었다.

주후 30년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처음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진 때로부터 27권의 글이 신약성서로 확정되고,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기까지 360년 정도가 걸렸고, 이 기간에 정통과 이단을 구별할 수단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실천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기간에 여러 복음서, 서신서, 행전들이 나왔다. 교회들은 저마다 힘닿는 대로 문서들을 수집하였으나 예배 때 낭독해도 좋을 문서인지를 결정해야했고, 그 잣대가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통이었다. 그리고 그 기준을 충족시키는 1세기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글인 27권을 대부분의 교회들이 보유하고 있었다. 이에 동방교회는 367년에 서방교회는 393년과 397년에 각각 이들 27권을 신약성서의 정경으로 확정지었다. 그리고 신약성서 27권에 들지 못하였으나 신뢰할한 글들을 ‘정경 외 경전’(외경)으로, 그밖에 저자가 의심되거나 사도성이 떨어지는 글들을 ‘위경’으로 취급하였다.

marcion_paul_james.jpg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진 주후 30년부터 예루살렘이 멸망한 주후 70년까지 팔레스타인 출신인 히브리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일부는 유대교의 율법과 전통을 포기하지 못하였고, 헬라인 그리스도인들의 일부는 성육신을 부정하고 율법과 물질을 악하게 보는 영지주의를 포기하지 못하였다. 이들 율법주의와 영지주의는 피차 상극으로써 대표적인 기독교 이단들이었다. 그리고 바울의 사도직을 문제 삼아 대적한 자들은 유대교를 포기하지 못한 에비온파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들에게 구원이란 문자적으로 가나안땅에서 누리는 안식이다. 유대인들에게 땅은 너무나 절실하고 절박한 것이었다. 그들은 조상대대로 떠돌이였고 노예였다. 땅은 그들이 수천 년간 꿈꿔왔던 희망(Ha-Tikvah)이었고, 다가올 세상(Olam Ha-Ba)이었다. 아브라함이 그들의 조상이 되는 까닭도 그가 가나안땅의 희망을 품었던 최초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후로 그들이 가나안땅을 차지하고 주권을 행사한 기간은 1천년이 넘지 않지만, 주권을 빼앗겼거나 속주민으로 살았던 기간은 3천년이 넘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땅에 대한 절박함은 율법준수의 엄격함으로 나타났다. 유대교는 민족해방과 가나안땅회복이 ‘토라’(모세율법)와 토라보호를 위해서 만든 울타리법인 규례를 철저히 지킬 때 이뤄진다고 믿고 가르치는 민족종교이다.

복음주의와 율법주의의 충돌

유대인들은 그들의 숙원인 민족해방과 고토회복이 오실 자 메시아에 의해서 이뤄진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예슈아)을 메시아로 믿고 고백하는 신앙운동이 주후 30년 오순절 날을 기점으로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고,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이 신앙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러자 유대인공동체가 술렁였고 의견이 갈리기 시작하였다. 대다수는 민족해방도 고토회복도 이뤄지지 아니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메시아로 믿는 행위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배신행위로 간주하였다. 반면에 소수의 무리였지만, 예수님을 율법의 의미를 올바르게 깨우쳐준 위대한 랍비로 인정하여 그의 가르침과 사상을 따랐는데, 그들이 바로 에비온파였다.

한편 예수님을 율법교사 이상의 특별하신 분으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앉으신 분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분으로, 지금은 영으로 그들을 돕고 계신 분으로 믿고 회개하고 신앙고백하고 침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고, 성령님을 선물로 받게 되며, 그분이 머지않아 재림하시면 완벽하고 철저한 메시아왕국이 건설된다며 회개와 회복운동을 펼친 무리가 있었다. 유대인들은 이들을 ‘나사렛파’(노쯔림)라고 불렀으나 시리아 안디옥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 불렀다.

pella.jpg 나사렛파 운동은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으나 그 운동이 민족종교인 유대교의 틀과 한계를 벗고 세계종교인 기독교로 발전할 수 있도록 시동을 건 인물이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디아스포라 출신의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출신의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던 예수님의 제자들과 나사렛파는 대부분 바울의 복음주의 기독교에 흡수되었다. 한편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전도를 위해서 사방 각지로 흩어져 순회하는 동안 예루살렘교회는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의 책임아래 있었다. 가이사랴의 주교 유세비우스가 남긴 <교회사> 3권 5장에 따르면,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은 주후 66년경 유대-로마전쟁이 시작될 무렵에 계시의 말씀에 따라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펠라로 피난하였다. 펠라(Pella)는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사마리아 땅과 마주한 베레아 땅으로써 현재의 요르단 북부 요단강 주변에 있었던 도시였다. 베레아는 이방지역이어서 유대-로마전쟁 때 피해를 면한 곳이다. 펠라는 주후 635년 이슬람의 손에 넘어가기까지 기독교가 성행했던 곳이다.

반면에 예수님의 율법해석과 마태복음만을 인정해온 에비온파는 오늘날까지도 존재하며, 유대교의 신념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고, 차별 없이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기독교 복음에 적대감을 드러내왔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서에 편향된 기독교 종파들이 여전히 있고, 그들로 인해서 순수하고 복음적인 신약성서교회가 왜곡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떠야 한다.

에비온파의 활동

바울이 3장 1-6절에서 언급한 먹으로 쓴 추천서를 거론하고, 석비에 쓰인 십계명과 율법조문을 자긍하는 옛 언약의 일군임을 자처하는 “어떤 사람”은 에비온파에 속한 유대인이다. 신약성서에 에비온파의 활동이 잘 드러나 있다.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예루살렘교회로부터 어떤 유대인들이 안디옥교회까지 와서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1절)고 가르쳤다. 그로 인해서 안디옥교회에 쟁론이 벌어졌다. 이에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교회에 보내 사도들의 판결문을 받아오게 하였고, 51년경에 사도들과 장로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행 15:5)고 주장하였다. 이 같이 주장하는 에비온파가 안디옥교회뿐 아니라, 갈라디아교회와 고린도교회를 들쑤셔놓고 있었다. 이것이 갈라디아서와 고린도후서가 기록된 배경이다.

councilofjerusalem.jpg 바울의 선교방법과 전도내용은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정 났다. 바울도 갈라디아서 2장 9절에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다”고 말하였다.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이 에비온파가 아님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다. 그들이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수차례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보고를 받고 인정하였지만, 바울은 그들의 승인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신이 선포한 복음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강조하였다.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이 에비온파이거나 에비온파를 지지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유대교인들과 동일한 선민의 자격이 아닌 ‘하나님 경외자’ 또는 유대교의 절반 개종자 정도로 받아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의 적대자가 예루살렘의 추천서를 운운했지만 실상은 예루살렘교회의 승인서가 아니라 에비온파의 승인서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베드로와 바나바 및 다른 유대인들조차 그들의 공격을 두려워하였다(갈 2:12-13). 이런 점에서 그들의 활동을 저지시킬 수 있었던 사람은 바울밖에 없었다. 바울은 그들을 일컬어 ‘거짓 사도’라고 불렀다.

바울과 디모데와 디도는 고린도교회를 방문하기 위한 추천서가 필요치 않았다. 그들은 고린도교회를 세운 개척자요 사역자였기 때문이다. 바울이 디도와 디모데를 위해서 글을 쓴 것은 특별임무 때문이었지, 신분확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2절)고 하였다. 고린도교회야말로 그 어떤 추천서보다 가장 확실하게 바울일행의 신분을 확인해 주는 추천서요, 율법서처럼 가죽이나 십계명처럼 돌비에 쓴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마음에 쓴 것이었다(3절). 또 바울은 자신들이 에비온파가 자긍하는 옛 언약의 일군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새 언약의 일군으로서, 죽이는 율법조문으로 사역하지 않고, 살리는 영으로 한다고 차별화시켰다(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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