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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40: 화해의 복음4(고후 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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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493 2015.07.10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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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40: 화해의 복음4(고후 4:1-18)

하나님의 형상

바울은 단언하기를, 새 언약의 일군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는 장사꾼”처럼 간교하게 행하거나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신 일군답게 진실하게 행하며, 진리를 밝히 떳떳이 드러낸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그들이 살림과 세움의 일을 하는 영으로 일하는 일군들이기 때문이고, 그 직분이 영과 의의 직분이기 때문이며, 그 바라는 바가 영적인 것, 하늘의 것, 영원한 것, 더 큰 영원한 영광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4장 1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이 직분을 받았으니, 낙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ephesus_artemis.jpg 바울은 하늘 가나안땅과 영생에 관한 복음이 밝히 드러나 있지만, 멸망당할 자들에게는 그들이 완고하고 무지하기 때문에 베일에 가려져 있다고 하였다(3절). 그 이유는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하기”(4절) 때문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4절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형상은 하나님의 형상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기를 원하는 것은(롬 8:29) 다름 아닌 당신의 형상을 본받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이다. 또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엡 5:1)고 권한 것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고 권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는 자가 되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고, 바울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행위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롬 12:2)을 이루는 아름다운 행위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가능케 하는 인성을 말한다. 하나님은 지성과 감성과 의지로써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인간들에게 이루셨고 지금도 이루고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영과 의의 직분을 가지고 영으로 일하는 일군답게 살림과 세움과 사랑의 일을 행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이차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뜻한다. 하나님의 형상과 그리스도의 형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곳이 골고다언덕이다.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 곧 세움과 살림과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라고 하였다. 그리고 바울 자신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십자가의 길을 걷는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었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자기를 본받으라고 권하였다.

질그릇 속의 보화

christ-family-1959.jpg바울이 진실로 바란 것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이었다(빌 3:10). 그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육신의 생명보다 더 좋은 영적인 것, 세상 것보다 더 좋은 하늘의 것, 더 좋은 영원한 것, 더 큰 영원한 영광을 얻고자 하였다. 10-11절,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는 바로 그의 이런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새 언약의 일군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와 주되신 것과 자신들이 그분의 노예가 된 것을 전파한다고 하였고(5절), 말씀으로 생명의 빛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다”(6절)고 하였다. 이 말씀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신다는 뜻이다.



treasures_jarofclay.jpg그리고 바울은 7절에서 이런 엄청난 보화(속사람)를 깨지기 쉬운 질그릇(겉사람)에 담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는 심히 큰 능력,” 곧 육신의 생명보다 더 좋은 영적인 것, 세상 것보다 더 좋은 하늘의 것, 더 좋은 영원한 것, 더 큰 영원한 영광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2010년 7월 8일자 CNN 발표에 의하면, 질그릇에 담긴 52,503개의 로마시대의 주화가 4월 11일 영국 남서부 서머싯 주 프롬(Frome)의 밭에서 병원 요리사로 일하는 데이브 크리스프(Dave Crisp)의 금속 탐지기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이들 주화 가운데 766개에 주후 286년부터 293년까지 현 영국과 프랑스 북부지역을 통치했던 로마황제 카라우시우스(Marcus Aurelius Carausius)의 화상이 새겨져 있었다. 또 2012년 7월 10일자 뉴스에 의하면, 텔아비브대학교와 이스라엘 자연 및 공원 관리국(Israel Nature and Parks Authority) 발굴팀이 텔아비브에서 북쪽으로 15킬로미터 떨어진 고대도시 아르스프(Arsuf) 요새에서 주후 13세기에 십자군의 호스피틀 기사단이 질그릇에 담아 숨겨둔 108개의 파티마(Fatimid) 왕조의 디나르 금화, 5억 7천만 원어치를 발굴하였다.

심히 큰 능력

treasures_jarofclay_13c.jpg바울이 언급한 질그릇(겉사람) 속의 보화(속사람)는 없어질 세상의 금은보화보다 더 좋은 영적인 보화, 하늘의 보화, 영원한 보화, 더 영원한 영광의 보화를 말하며,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지혜를 말한다. 이런 “심히 큰 능력”을 지닌 새 언약의 일군들은 8-9절에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오히려 10-11절에서 새 언약의 일군들이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과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을 통해서 “예수의 생명이... 몸에” 또는 “예수의 생명이...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한다”고 피력하였다. 또 12-13절에서 새 언약의 일군들이 이토록 죽음에 가까운 사랑의 수고와 봉사를 기꺼이 함으로써 생명을 살리고 세우는 구원의 일을 하고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말하였다.

비록 바울이 지상에 속한 것과 육적인 것을 유한하고 일시적인 것으로 보았지만, 그렇다고 악하게 본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선하게 될 수도 있고 악하게 될 수도 있는 중립적인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겉사람(질그릇)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보화)은 날로 새로워진다”(16절)는 말씀에서 겉사람이 낡아지고 굴욕스러워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지, 악해서가 아니다. 또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는 것은 더욱 젊어진다는 뜻이기보다는 세상을 하직할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천상에 속한 것과 영적인 것, 무한한 것과 영원한 것, 더 큰 영원한 영광에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세상의 재물과 명예와 권세에 뜻을 두고 사는 사람이라면 겉사람이 낡아지는 것이 슬프고 애통한 일이겠지만, 14절에서처럼,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우리를 다시 살리사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알고 소망하는 자들에게는 그 날이 가까울수록 속사람이 더욱 새로워지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겉사람이 낡아지는 것에 대해서 낙심하지 않는다. 바울은 그 이유를 17-18절에서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 땅에서 겪는 수고와 고난이 잠시 동안 받는 것이고, 가볍다는 것은 수고와 고난이 대수롭지 않다는 뜻이기보다는 장차 받아 누릴 영광이 “지극히 크고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주목해야할 것은 보이는 것(질그릇)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보화)이어야 한다. 지상에서의 삶(질그릇)은 잠깐이지만, 천상에서의 삶(보화)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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