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기41: 화해의 복음5(고후 5:1-10)
본문
손 내밀기41: 화해의 복음5(고후 5:1-10)
죽음을 삼킬 생명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7절과 16절에서 질그릇에 담긴 보화, 겉사람에 담긴 속사람이란 표현을 썼다. 거기에 더해서 바울은 5장 1절에서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을 삼킬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란 표현을 썼다. 여기서 질그릇, 겉사람, 장막 집은 땅에 속한 것들로써 깨지거나 낡아지거나 무너질 것이라고 하였다. 땅의 것들이 깨지고 낡아지고 무너지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이 현상을 자연법칙, 엔트로피법칙, 제2열역학법칙이라고 부른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고 간절히 바라는 바는 이 자연적인 것에 깨지지 않고, 낡아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하늘의 것, 영원한 것, 영적인 것을 담는 것이다.
바울은 깨지는 질그릇 같고, 낡아지는 겉사람 같으며, 무너지는 장막 집과 같은
땅의 것들을, 영지주의자들처럼, 벗기를 사모하지 않고 덧입기를 사모하였다(2절). ‘덧입기’란 입고 있는 옷 위에 걸쳐 입는다는 뜻이다. 땅에
있는 장막 집을 벗지 않고 그 위에 하늘로부터 오는 집을 껴입는다는 뜻이다. 깨어질 질그릇 속에 영원한 보화를 담고, 날로 낡아지는 겉사람 속에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을 담는 것은 영적부활과 현재구원을 말한 반면, 무너질 장막 집 위에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덧입는 것은 주님 재림의
때에 있을 육체부활과 미래구원을 말한다.
율법주의 유대인들은 깨지고 낡아지고 무너질 땅의 것들에 집착하여 하늘의 것, 영원한 것, 영적인 것을 아예 무시해버렸다. 그들이 고집한 땅과 해방과 같은 세상 것들에는 영적인 보화가 없고, 영원히 살 속사람이 없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없는 겉껍데기였다. 반대로 영지주의 헬라인들은 하늘의 것, 영원한 것, 영적인 것에만 집착하여 질그릇, 겉사람, 장막 집으로 표현된 세상의 것, 유한한 것, 물질적인 것을 죄악시하여 벗고자하였다. 반면에 바울을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것에 하늘의 것을 담고, 유한 것에 영원한 것을 담고, 물질적인 것에 영적인 것을 담고자하였고, 깨지고 낡아지고 무너지고 말 육체에 영원하고 영화로운 육체를 덧입고자하였다. 이것이 복음주의자가 율법주의자나 영지주의자와 다른 점이다. 그리고 2-4절,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는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과 상반된 말씀이다.
인감과 보증금 되신 성령님
바울은 새 언약의 일군으로서 어둠이 빛에, 무질서가 질서에, 죽음이 생명에
삼키는 일에 수고를 넘치도록 하였다. 비록 육신은 나날이 깨어지고 낡아지고 무너져가지만, 영혼은 나날이 빛나고 새로워지면서 최종적으로는 영원한
생명이 사망을 삼켜버릴 것을 믿었다. 그리고 ‘육체’라는 우리의 장막 집이 기어이 무너져버리면,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으로 이주하게 될 것을 믿었다. 그리고 이 믿음 때문에 이 땅에서 겪은 그 숫한 고난과 죽음조차도 애석해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오히려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고, 죽음도 없는 광명한 천국에서 편히 쉬며 영광중에 영원히 살게 될 것을 믿었기에 환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이 소망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약속하신 미래가 확고한 것임을 보증하시기 위해서 성령님을 보증금과 인감으로 주셨다고 하였다(5절). 바울은 ‘장차올 세상’에
대해서 언급하였고(엡 1:21),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빌 3:20)고도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그리스도인들이 장차 받을 상속(기업
혹은 유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상속을 약속하시고, 그 보증금과 인감으로 성령님을 선물로 주셨다(엡 1:13-14)고 하였다.
바울은 5절에서 상속(기업 혹은 유업)이란 말 대신에 ‘장차올 것’이란 표현을 썼다. 우리말 성경은 5절을 “이것을(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덧입는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로 번역하였는데, 영어성경은 “장차올 것을 보장하는 보증금으로써”(as a deposit, guaranteeing what is to come)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로 번역하였다. ‘장차올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늘의 것, 영원한 것, 영화로운 것으로써, 하나님께서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엡 2:8) 이 약정의 보증금과 인감으로써 성령님을 주셨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1장 22절에서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다“고 하였다. 여기서 성령님이 보증금과 인감으로 표현된 것은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을 반드시 성취하시게 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승리자
무신론자들은 “신은 없으니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외친다. “진실은 없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외친다. 또 성적 소수자들은 “신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삶을 즐기라”며 무지개빛깔을 상징으로 사용한다. 과연 그들의 삶이 무지개빛깔처럼 아름다울까? 그들이 외치는 자유지상주의가 과연 이 땅에서의 삶을 행복하게 해줄까? 오히려 신이 없다거나 내세가 없다는 발상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땅에 있는 것들은 잘 깨지는 질그릇 같고, 낡아지는 겉사람 같으며, 무너지는 장막과 같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이라면, 바울처럼, 깨지지 않고 영원한 보화,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사모할 것이다. 바울은 10절에서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자가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일에 따라 보응을 받을 것이다”라고 경고하였다.
비잔틴시대였던 주후 969-1081년 사이에 주조된 주화들을 보면, 전면에는 전통적으로 들어가던 황제들의
화상대신에 복음서를 안고 계신 예수님을 새겨 넣고 있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 만황제의 황제, 최후의 승리자이심을 깨닫고 황제의 자리에 예수님을
대치시킨 것이다. 그리고 뒷면에는 주로 십자가를 새기고 그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 만왕의 왕”(IhSuS XRISTuS bASILEu
bASILE 또는 줄여서 IS XS bASILEu bASILE) 혹은 “예수 그리스도 승리자”(IC XC NIKA)를 새겨 넣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왕의 왕, 승리자로 인정하는 자들은 율법주의 유대인들처럼 하늘의 것, 영원한 것, 영적인 것은 무시하고, 세상의 것, 유한한 것,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고, 영지주의 헬라인들처럼 세상의 것, 유한한 것, 물질적인 것은 무시하고, 하늘의 것, 영원한 것, 영적인 것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의 것에 하늘의 것을 담고, 유한 것에 영원한 것을 담고, 물질적인 것에 영적인 것을 담는 일에 헌신한다. 바울은 율법주의와 영지주의를 완전히 부정하여 정죄하기보다는 상반된 그것들을 통합하여 복음주의를 만들어냈다.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통합시켜 영과 육이 하나가 되게 하였다. 육이 영을 담는 통전적인 사람이 되게 하였다. 그러나 육은 깨지면서, 낡아지면서, 무너지면서, 영은 더욱 빛나고 새로워지면서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생명이 이 깨지고 낡아지고 무너져 사망하게 될 것을 삼켜버리게 될 것을 믿었다. 바울은 성령님의 영감을 힘입어 율법주의(正)를 영지주의(反)와 통합하여 복음주의(合)를 변증법적으로 도출해냈다. 이렇게 하여 바울은 기독교를 유대교와 이교들과 차별화하고 성별화하는데 성공하였다.
- 이전글 손 내밀기42: 화해의 복음6(고후 5:11-21) 15.07.20
- 다음글 손 내밀기40: 화해의 복음4(고후 4:1-18) 15.07.1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