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기42: 화해의 복음6(고후 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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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42: 화해의 복음6(고후 5:11-21)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 새 언약의 일군으로서 바울은 품삯을 바라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는 장사꾼처럼 간교하게 행하거나 말씀을 왜곡시키지 않았고, 하나님의 일군답게 진실히 행하며, 진리를 떳떳이 드러냈다. 바울이 진실로 바란 것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육신의 생명보다 더 좋은 영적인 것, 세상 것보다 더 좋은 하늘의 것, 더 좋은 영원한 것, 더 큰 영원한 영광을 얻고자 하였다. 그가 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그의 몸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가 늘 예수님을 위하여 죽음에 넘겨진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그의 몸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바울은 새 언약의 일군으로서 예수님의 노예가 된 것과 예수님이 그리스도와 주가 되신 것을 전파하였다. 게다가 바울은 최후심판을 믿고 두려워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된 것을 전파하거나 거짓된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최후심판의 무서움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알리려고 전도에 힘썼다. 바울은 하나님도 아시는 이 같은 사실을 고린도 교인들이 알기를 간절히 바랐다(11절). 그러므로 바울은 새 언약의 일군으로서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12절)처럼 자기자랑을 늘어놓거나 대접을 받으려하거나 군림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 겸손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수고하였다. 바울은 13절에서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다”는 말로써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과 성도들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였다.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또 다시 자기 자신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내세우려고한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순수함과 진실함과 헌신함을 자랑삼아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반박할 수 있기를 바랐다(12절).
그리스도를 육신을 따라 알았던 자들
극우 유대인 집단인 프라이스 태그(Price Tag)는 침해당한 재산만큼 되갚아주겠다는 집단으로서 요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정착촌에서 증오 범죄들을 일삼고 있고,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을 갈리지 않고 테러를 일삼고 있어서 이스라엘 당국도 그들을 골칫거리로 여기고 있다. 여기서는 그들이 남긴 낙서내용만을 소개하려고 한다. 2012년 2월 20일 예루살렘에 있는 한 침례교회당 외벽 여기저기에 스프레이 낙서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은 “기독교에 죽음을, 예수는 창녀의 아들이었다. 우리는 너희를 십자가에 못 박겠다.”는 것이었다. 또 2013년 5월 31일 예루살렘의 성모승천성당의 외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은 원숭이다”라고 쓴 스프레이 낙서가 발견되었다. 또 2014년 5월 8일 예루살렘의 루마니아 교회당 외벽에서는 “프라이스 태그, 예수 쓰레기. 유대인에게 다윗 왕을”이라고 쓴 스프레이 낙서가 발견되었다.
화해의 복음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침례를 받아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의 일인 생명과 빛의 일을 하게하셨다. 우리가 마귀의 일인 죽음과 어둠의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해할 기회를 열어주셨다(롬 5:10-11). 바울은 하나님과 화해한 사람을 일컬어 17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18-19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한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은 세상을 자기와 화해시키는 사신의 직분을 맡기셨고, 또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려고, 곧 사람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구원하시려고, 사신의 직분을 맡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화해의 메시지를 맡기셨다고 설파하였다. 여기서 화해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뜻이 담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을 말한다. 20절에서 “사신”(사절, 대사)으로 번역된 ‘프레스뷰오멘’(presbeuomen)은 장로(presbyter) 혹은 연장자(elder)란 말을 내포하고 있다. 교회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장로는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고 감독하는 목사(pastor)를 뜻하였다(행 20:28). 그런 이유로 장로(pastor)를 설교자(preacher), 전도자(evangelist) 또는 목회자(minister)와 구별 짓는 교회들이 많고, 일부 교회들에서는 목회자가 장로를 겸직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비춰볼 때, 전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신들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하여금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신 것은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회개하는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밝히 드러내게 하려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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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바울이 비교대상으로 삼았던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12절)은 누구였는가? 바울은 그들이
16절에서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던” 자들이란 말로써 율법주의 유대인들이란 점을 암시하였다. 철저한 율법주의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철저히 거부하였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육신의 잣대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육적이고 물질적이며 세속적인 고토회복과 민족해방에
고착되어 있었다. 바울의 용어로 말하자면, 그들은 깨지는 질그릇, 낡아지는 겉사람, 무너지는 땅의 장막만 고집하는 자들이었고, 그것들 속에
담아야할 하늘의 영원한 보화, 영적으로 새로워지고 빛이 나는 속사람, 영원한 하늘의 처소를 거부하는 자들이었다.
조상대대로 고토회복과 민족해방에만 집착해온 민족적 배타주의 유대인들 가운데 극우 시온주의자들은 이스라엘
영내에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과 아랍인들을 향해서 일 년에도 수백 혹은 수천 건씩 테러를 일삼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Messianic Jews)이 극우 유대인들의 테러의 위협과 공포 속에서 불안한 나날을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철저한 율법주의 유대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거부해왔고, 고토회복과 민족해방만을 희망해왔다.
그들에게는 하늘의 영원한 보화, 속사람, 영원한 하늘의 처소에 대한 희망이 없는 대신 깨지는 질그릇, 낡아지는 겉사람, 무너지는 땅의 장막 집에
대한 희망만 있다. 그러나 그들의 희망은 과거 수천 년간 깨져버리고, 낡아져버리고, 무너져버린 땅의 것이었다. 이에 반해서 영지주의 헬라인들은
깨지는 질그릇, 낡아지는 겉사람, 무너지는 땅의 장막, 곧 육적이고 물질적이며 세속적인 땅의 것들을 죄악시하였고, 그림자로 보았으며, 갇힌
동굴, 갇힌 감옥, 갇힌 무덤에서 벗어나듯 그것들에서 벗어나고자 하였고, 그 속에 담아야할 하늘의 영원한 보화, 속사람, 영원한 빛의 세계만을
실체로 인정하여 추구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깨지는 질그릇, 낡아지는 겉사람, 무너지는 땅의 장막을 영지주의자들처럼 죄악시하지 않았고,
율법주의자들처럼 집착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바울은 질그릇에 보화담기(4:7), 겉사람에 속사람심기(4:16), 땅의 장막 집에 하늘의 영원한
처소를 덧입히기(5:1-4)를 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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