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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43: 화해의 복음7(고후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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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469 2015.07.2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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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43: 화해의 복음7(고후 6:1-13)

하나님의 일꾼의 직분

chronos.jpg하나님의 일꾼은 자기 일을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맡아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를 말한다. 6장 4절의 “하나님의 일꾼”은 3장 6절의 “새 언약의 일꾼,” 고린도전서 4장 1절의 “그리스도의 일꾼,” 로마서 15장 16절의 “예수의 일꾼”과 동일한 표현이며,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롬 15:16)과 “하나님의 비밀을 맡아”(고전 4:1),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대사가 되어”(5:20),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6:1)를 말한다. 반대로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11:4)을 전한 에비온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신성과 하나님의 복음과 바울의 사도직을 부정한 자들로서 자기들을 그리스도의 사도와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 “속이는 일꾼”과 “사탄의 일꾼”(11:13-15)들이었다. 바울이 6장 1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한 것은 이들 “속이는 일꾼” 또는 “사탄의 일꾼”이 전한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에 속아 그들과 함께 바울을 대적했던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구원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과 하나님의 비밀은 같은 것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고전 2:2)과 이방인들이 유대인과 동등하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죄 사함 받고 구원받아(골 1:14, 엡 1:7), 하나님의 식구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된 것(엡 2:19)을 말한다. 이 엄청난 복이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고전 2:1)이나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고전 2:4)로 된 것이 아니고, 에비온주의 유대인들이 꺼리는 것과 영지주의 헬라인들이 어리석게 생각하는 것, 곧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고전 2:2)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이 비밀이었던 이유는 유대인들이 꺼려했고, 헬라인들이 어리석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구원할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는 유대인들이 희망한 고토회복과 민족해방을 가져다줄 영웅적 메시아나 헬라인들이 희망한 영지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민족색깔남녀빈부귀천에 상관없이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등하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식구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게 하시는 당신의 비밀(mysterion)을 만천하에 공개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일꾼의 역사인식(1)

kairos_francesco_salviati.jpg바울이 인식한 역사는 이렇다. 하나님이,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 아니고,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며, 유대인들이 희망해온, 결국은 또 다시 깨지고 낡아지고 무너지고 말, 고토회복과 민족해방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실 계획을 갖고 계신 것이 아니라, 깨지지 않고 낡아지지 않고 무너지지 아니할 영원한 하늘 가나안땅과 인류구원을 위해서 이미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시며, 그분을 통해서 그분 안에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에게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까지도 하나님의 나라 시대가 활짝 열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란 것이다(6:2, 사 49:8). 이 ‘때’에 대한 인식이 바로 바울의 역사인식이었다.

바울 당대의 사람들은 시간의 개념을 두 가지로 이해하였다. 우주역사 또는 인류역사처럼 객관적 보편적 양적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로 이해하였고, 정해진 시간 또는 특별한 시간처럼 개인과 관련된 주관적 구체적 질적 시간을 ‘카이로스’(kairos)로 이해하였다. 프란체스코 사르비아티(Francesco Salviati, 1510–63)가 그린 ‘카이로스’를 보면, 앞머리는 길지만, 뒷머리가 없고, 등과 발뒤꿈치에 순간속도를 높이기 위한 날개가 달려 있고, 손에는 천칭과 칼이 들려 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가치를 신속히 판단하여 결정하라는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다. ‘정한 시간’ 또는 ‘기회’로도 번역될 수 있는 카이로스(kairos)는 앞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린 채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손을 뻗어 그것을 잡으려고 하면 천칭을 들이대며 값을 치른 후에 가져가라고 말한다. 값을 따지며 망설이는 순간 시간은 순식간에 돌아서 날아가 버린다.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손을 뻗어봤자 뒷머리가 민머리인데다가 벌거숭이 몸이어서 붙잡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구원의 기회, 남녀노소 빈부귀천 민족에 상관없이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늘 가나안땅의 시민권자가 되는 이 절호의 기회를 잡아야지 놓쳐서는 안 된다. 그 이유가 시간의 신 크로노스에게 있다. 크로노스를 묘사한 작품들을 보면, 그에게는 긴 수염과 날개가 있고, 손에는 모래시계와 낫이 있으며, 양발사이에 아이가 있다. 여기서 수염은 시간의 태고성, 날개는 시간의 덧없음, 모래시계는 역사의 끝, 낫은 추수심판, 어린아이는 시간이 삼키고 말 죽음을 상징한다. 모래시계가 멈추듯이 역사는 멈춰 서게 될 것이고, 심판이 뒤따르게 된다는 교훈이다. 따라서 종말이 이르기 전에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과 화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꾼의 역사인식(2)

바울은 자신의 품행이나 인격 때문에 복음이 배척당하는 일이 없도록 무엇에든지 거리끼지 않게 행하였다. 하나님의 일꾼의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3절),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4-5절)을 참아냈고, 그런 중에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과 의의 무기로 무장하여(6-7절) 충실하게 일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영광과 욕됨”을 한 몸에 받았고,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을 한꺼번에 들었다(8절). 그러나 세상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확신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8-10절)라고 선언하였던 것이다.

기업의 총수들에게 충실했던 비서들이 CEO로 승진하듯이, 바울은 하나님께 충실했던 일군들이 고난 후에 얻게 될 영광이 엄청나다고 확신하였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8절에서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고,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서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한다”고 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마음을 넓게 가지라고 권면하였다(11-13절).

god-heart.jpg바울은 “나타날 영광,”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 또는 ‘장차올 세상’(Olam Ha-Ba)에 대해서 후천년설의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바울의 대적자였던 에비온주의자들은 이스라엘왕국의 문자적 회복을 희망하였으므로 시대구분론(세대주의)적이었고, 영지주의자들은 세상을 부정하였으므로 전천년설적이었다. 바울은 깨어질 질그릇 속에 영원한 하늘의 보화를, 날로 낡아지는 겉사람 속에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을 담고자 하였다. 또 무너질 장막 집이 영원한 하늘의 처소로 덧입기를 희망하였다. 질그릇 같고, 겉사람 같고, 장막 집 같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복음으로 인하여 점진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가기를 바랬던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가 사도행전 3장 19-21절에서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아야, “만물이 새롭게 되는 날”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한 것과 같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눅 5:38)는 예수님의 말씀과도 같으며,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때 비로소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카이로스의 때가 임할 것이다(사 11:9)고 한 이사야의 예언과도 같다. 그러므로 지금은 장막 집이 하늘의 처소로 덧입히올 때까지 질그릇에 하늘의 보화를, 겉사람에 새로워지는 속사람을 담아야할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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