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기45: 화해의 복음9(고후 7: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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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45: 화해의 복음9(고후 7:1-16)
위로에 대한 약속을 끌어내는 믿음
참되고 영원한 위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하나님은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6절) 분이시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떠돌이와 노예라고 말하고, 그 사실을 자손대대로 가르칠 만큼 낙심이 정말 큰 민족이었다. 그들의 삶은 바울이 5절에서 고백한 것과 마찬가지로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다.” 여기서 육체의 고난과 다툼과 두려움은 모든 사람이 겪는 고통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신다. 아브라함의 사례에서 보듯이, 하나님은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위로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믿음이 하나님의 위로의 약속을 끌어내고 성취시키는 능력이다.
약속의 내용은 유대인들에게서 보듯이
떠돌이와 노예의 삶을 끝내고 가나안땅에서 누리는 안식을 말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지상 가나안땅에서 누리는 안식을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그것을 자기우상화시킴으로써 그 속에 하늘의 것과 영원한 것을 담지 못하였다. 반면에 바울은 이 땅에서의 안식은 결국 깨지고 낡아지고
무너질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영원한 저 하늘 가나안땅에서 누릴 참되고 영원한 안식을 사모하였고, 하나님께서 새
언약의 내용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는 특권을
값없이 차별 없이 은혜로 주셨음을 확신하였다. 바울은 구약성서를 인용하여 이미 6장 16-18절에서 7장 1절에서 말한 “약속”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밝혔다. 그 약속은 다름 아니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레 26:12, 렘 31:1,
32:38)와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삼하 7:14)고 하신 말씀이다. 민족성별색깔
노소빈부귀천에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위로의 하나님이 되시고, 위로의 아버지가 되시겠다는 말씀이다. 바울이 1절에서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 한 것은 하나님의 이 언약을 굳게 믿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동하자라고 말한 것이고, 2절에서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는 바울의 권면이 성도를 올바로 세우기
위한 충심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고”(빌 4:9)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 3:14)는
말씀이다.
위로에 대한 약속을 회복시키는 회개
바울의 권면은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의 예언활동처럼 회개와 회복에 관한 것이었다. 그 내용은 3-4절의 말씀처럼 성도들을 정죄하려는데 있지 않고, 회개시켜
회복시키려는데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인들과 바울의 관계에 금이 가고 충돌이 생긴 것은 성도들이 처음 고백했던 믿음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고 바알숭배와 신전음행에 빠짐으로써 불행을 자초한 것과 같았다. 그로 인해서
어리석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를 비롯한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과 충돌했던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그들이 예언자들의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권면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돌아올 때마다 하나님은 위로에 대한 약속을 회복시켜주셨다. 마찬가지로 고린도 교인들도 에비온파나 영지주의자들의 꾐에 빠져
바울이 전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님의 신앙에서 벗어났을 때 큰 혼란에 빠졌고, 그로 인해서 바울과 크게 충돌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바울의
권면을 듣고 회개하였을 때 그들은 위로의 하나님의 성별된 공동체로 다시 세움을 입을 수 있었다. 바울의 ‘준엄한 편지’ 혹은 ‘눈물로 쓴
편지’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시기에 활동한 맨몸과 맨발의 예언자 이사야와 남왕국 멸망시기에 활동한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를 생각나게 한다.
바울의 권면이 다름 아닌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예언활동 곧 회개운동과 회복운동에 잇대어져 있기 때문이다. 주의 종들의 예언활동은 회개와 회복과
세움과 살림의 일이었기에 늘 신령한 것이었다.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함으로써 이단자들의 사슬에서 벗어나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어 바르게 세움을 입었다는 소식은 바울과 동역자들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다. 바울은 그들이 회개하게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 곧 지은 죄를 뉘우치고 회개케 한 근심 때문이라고 하였다(9-11절). 성서 66권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회개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회복할 수 있고, 위로의 은총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간절히 희망한 가나안땅과 민족해방은 회개함으로써 회복된다는 것이 구약예언자들의 한결같은 외침이었다. 마찬가지로 회개함으로써 구원의 은총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 예수님과 사도들의 일관된 외침이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구원을 언급할 때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신앙고백하고, 침례를 받으라고 하였다. 여기서 믿음과 회개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행위이고, 신앙고백과 침례는 공개적이고 객관적인 행위이다. 신앙고백은 마음으로 믿은 것을 여러 증인들 앞에서 입으로 시인하는 행위이고 침례는 회개한 자가 여러 증인들 앞에서 물로 씻음으로써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자와 하나님가족의 식구가 되었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이 네 가지 회심의 행위는 두 가지, 곧 믿음과 회개로 압축된다. 그리고 네 가지 과정은 모두 성령님의 개입으로 이뤄지며, 하나님의 위로에 대한 약속을 유지, 회복, 성취시키는 동력이다.
위로에 대한 약속의 성취와 기쁨
눈물로 쓴 편지가 고린도 교인들을 다시 믿음위에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쓴
편지가 고린도후서라 불리는 화해의 편지이다. 이 편지는 1장부터 7장까지로써 1장 1절부터 2장 13절까지의 결론문구가 7장 5-16절까지이다.
이 화해의 편지에서 바울은 대적자들이 회개한 것, 고린도교회와 바울사이에 신뢰가 회복된 것, 디도가 교회로부터 사랑과 환대를 받고 돌아온 것에
고무되어 위로를 받고 기뻐하였다. 이 위로와 기쁨을 바울은 ‘화해 복음’으로 발전시켰는데, 그 글이 2장 14절부터 7장 4절까지이다. 이 글이
길어져 결론문구가 7장 5절 이후로 밀려나 있는 것이다.
화해 편지의 결론문구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담고 있다.
첫째, 바울과 디도에게도 육체의 약함과 환난과 두려움이 있었다는 점이다(5절).
둘째, 이런 상황에서 바울과 디도는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6절)의 은혜를 깨달았다. 하나님은 디도가 가져온 기쁜 소식으로 바울을 위로하셨고, 불안해하는 디도가 환대를 받게 함으로써 위로하셨으며, 고린도교회가 바울을 사모하게 하고, 잘못을 뉘우치게 하며, 열정을 품게 함으로써 위로하셨다(7절).
셋째,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위로와 격려와 살림의 손 내밀기가 되지만, “세상
근심”은 비방과 비난과 죽임의 손가락질이 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런 점에서 바울의 근심은 위로와 격려와
살림의 손 내밀기였고, 대적자들의 근심은 비난과 비방과 죽임의 손가락질이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눈물로 쓴 편지를 받고서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을 기뻐하였다. 그 때문에 그들은 바울의 준엄한 편지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분을 품지 않았고, 오히려 회개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9절). 만일 그들이 바울의 편지를 받고서 비방과 비난과 죽임의 손가락질을 이어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10절).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근심”은 교회로 하여금 뉘우침을 “간절하게 하며,” 옳음을 “변증하게 하며,” 불의에
“분하게 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두렵게 하며,” 바울과의 재회를 “사모하게 하며” 바울의 가르침에 “열심 있게 하며,“ 이단자들을 ”벌하게
하였고,“ 그들이 그 일에 대해서 자신들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다“(11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바울의 근심과 눈물로 쓴 편지는 하나님의 뜻을
따른 고린도교회의 근심에 위로와 기쁨과 안심과 신뢰와 회복과 살림의 열매를 맺게 하였다(12-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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