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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50: 약함과 강함의 역설2(고후 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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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4,383 2015.08.26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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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50: 약함과 강함의 역설2(고후 11:1-15)

하나님의 일꾼에 대한 정의

바울은 고린도에 보낸 서신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꾼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첫째, 따로 세움을 입고 그리스도의 대사가 된 자들이다(고후 5:20).

둘째,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새 언약의 일꾼들이다(고전 4:1, 고후 3:6).

셋째, 영광이 넘치는 영의 직분과 의의 직분을 맡아 세움과 살림의 일을 하는 자들이다(고전 7:22, 고후 3:6-9).

넷째, 생명을 살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퍼뜨리는 직분을 맡은 자들이다(고후 2:15).

다섯째, 성도들을 순결한 처녀로 한 남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정혼을 시키는 중매쟁이들이다(고후 11:2).

바울은 이 직분을 맡은 자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선을 그었다.

첫째, 그들은 자기 일을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맡아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이다(고후 5:20, 6:1).

둘째, 그들의 권세는 무너뜨리는 일을 하면 작아지고, 세우는 일을 하면 커진다(고후 10장).

eve_figtree.jpg 셋째,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는 장사꾼처럼 간교하게 행하거나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신 일꾼답게 진실하게 행하며, 진리를 밝히 떳떳이 드러낸다. 그 이유는 그들이 살림과 세움의 일을 하시는 영으로 일하는 일꾼들이기 때문이고, 그 직분이 영과 의의 직분이기 때문이며, 그 바라는 바가 영적인 것, 하늘의 것,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고후 4:2).

넷째,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전파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신 것과 자신들이 예수님을 위하여 교회의 종된 것을 전파한다(고후 4:5).

다섯째, 그들은 깨어질 것에 하늘의 보화를 담고, 낡아질 것에 속사람을 담고, 무너질 것에 영원한 것을 덧입히는 개혁가들이다(고후 4-5장).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3절에서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고 있으니, 나는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정혼시켰다. 뱀이 그의 간계로 하와를 속인 것같이 혹시 너희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렵다”고 하였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마음을 빼앗는 우상들을 질투하시듯이, 거짓 사도들에게 성도들을 빼앗길 수 없다는 질투심으로 그들을 정결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정혼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하와가 뱀에 속은 것처럼 그들이 거짓 사도들에게 속아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을까 몹시 마음을 쓰고 있다는 뜻이다.

거짓 사도들의 믿음

고린도후서 11장에서 거짓 사도들은 에비온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바울의 적대자들이자, 옛 언약의 일꾼들(여호와증인들)로서 새 언약의 일꾼들(그리스도증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토라를 엄격히 준수해야 고토회복과 민족해방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었지, 민족성별 빈부귀천 차별 없이 값없이 은혜와 믿음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회개하고, 증인들 앞에서 신앙고백하고 침례 받고 하늘 가나안땅의 상속자가 되고, 하나님가족의 식구가 된다는 새 언약의 복음을 믿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단지 예수님의 팬(fan)이었지, 제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율법 교사였지,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따름과 실천의 대상이었지, 믿음과 예배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배움의 대상이었지, 헌신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 예슈아였지,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힐 자가 아니라, 모세처럼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적을 행하여 유대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자였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는 죽었다가 부활하여 승천할 자가 아니라, 빼앗긴 고토와 주권을 회복시킬 자였다. 그들은 “히브리인”(22절)들이었고, “지극히 큰 사도들”(5절, 12:11)을 빙자한 “거짓 사도”(13절)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4절)을 전하는 자들이었다. 바울은 그 같은 자들이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고(갈 1:8,9)고 강한 어조로 경고하였고,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다”(13절)고 하였다.

ebionite_flag.jpg최근에 정리된 유대인 에비온주의자들의 성명서를 보면, 자신들이 펼치는 유대종교운동이 예수님이 펼쳤던 바로 그 운동이고, 기독교는 바울과 다른 이들이 만든 종교이지, 구약성서의 믿음이거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계시한 것이 아니며, 예수님에 관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방인의 사도임을 자처한 바울은 거짓 교사이며, 유일하고 참된 이방인 선교사들은 에비온주의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잘못된 신앙에서 돌이키고, 토라와 할례와 침례를 통해서 참된 언약, 곧 구약에 입문할 것을 촉구한다. 또 그들은 예수님께 예배드리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예수님의 기적과 신성과 부활은 동화일 뿐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폐기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홀로 한 분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께서 주신 성문토라를 엄격히 준수하는 여호와증인(Yahwism)들이다.

고린도교인들의 일부가 바울이 심히 우려했던 대로 이 같은 거짓 사도들의 간계에 넘어가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받아드렸고, 바울을 대적하는 무리에 합류하였으나 디도의 중재로 회개하고 바울에게로 마음을 돌림으로써 위기가 기회로 바뀌게 되었다.

바울의 자비량 선교의 목적

바울이 주후 51-52년경에 고린도에서 사역할 때 고린도교회로부터 후원을 받지 않고 빌립보교회의 후원을 받았다. 반면에 고린도교회에 침투한 에비온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사례비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바울이 마케도니아 교회들로부터는 후원금을 받아썼으면서 고린도교회로부터는 받지 아니한 것은 마케도니아 교인들을 사랑하고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추정된다(11절).

aqulia_priscilla.jpg 바울의 자비량 선교의 목적은 복음사역을 이유로 교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자비량 선교가 처음부터 바울의 선교정책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바울은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한 지역에서 오래 머물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의 박해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린도에 도착하기 전에 3주 정도 머물며 세웠던 데살로니가교회에 쓴 편지에서조차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살전 2:9)고 하였다. 이것은 바울 일행이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를 제외하고는 체류기간에 상관없이 노동하면서 선교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천막사업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 18개월간 장기체류하였고, 에베소에서도 2년 3개월간 함께 사역하였으므로, 바울은 생계유지를 위해서 천막 만드는 일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린도와 에베소는 천막수요가 많은 도시였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역시 목숨 걸고 바울을 도왔다. 바울은 자신의 자비량 선교를 비난한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케도니아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9절).

주후 57년 말부터 58년 초까지 3개월간 고린도에 체류한 바울은 58년 봄에 고린도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 밀레도에 들려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당부하였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3-35).

바울의 자비량 선교의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의 삶과 정신 속에 살아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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