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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51: 약함과 강함의 역설3(고후 11: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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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746 2015.08.2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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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51: 약함과 강함의 역설3(고후 11:16-33)

바울의 목회 자세

고린도후서 11장에 바울의 목회 자세가 다음과 같이 드러나 있다.

첫째, 성도를 섬기고 높이기 위해서 자신을 낮췄다(7-8절).

둘째,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전하였다(7절).

셋째, 성도들에게 누나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매우 조심하였다(9절).

넷째, 성도들을 사랑하였다(11절).

다섯째,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고 약한 자나 실족하는 자가 생기면 애간장을 태웠다(28-29절).

paul_disciples.jpg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거짓 사도들을 용납한 교인들에 대해서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분변하지 못한 어리석음을 책망하였고, 적대자들을 향해서는 자신의 사도직의 우월성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이 자랑은 교인들을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 자신을 위하여서는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12:5)고 한 말에서 잘 드러나 있다.

한편 적대자들은 바울이 “대면하면 유순하고 떨어져 있을 때에는 강경하다”(10:1)고 했고, “편지는 무게가 있고 힘이 있지만, 직접 대할 때에는 약하고 말주변이 변변치 못하다”(10:10)고 폄훼하였다. 이 때문에 바울은 “나는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내가 말에는 능숙하지 못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를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다”(5-6절)고 변호하였다. 평소 같았으면,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이다.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나는 사도라 불릴 자격이 없다”(고전 15:9)고 자기를 낮춰서 말했을 바울이었다. 이미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전 3:21)거나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고전 13:4)고 말한 바울이었다.

자랑은 세움과 살림의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의 사도직이 심각하게 도전받고 폄훼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 거짓 사도들에 속아 넘어가 그리스도를 배신한 교인들을 되찾아야하는 상황에서 바울의 자랑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바울의 자랑은 고린도 교인들을 바른 신앙의 반석위에 세우기 위한 애간장 태우는 사랑과 살림의 행위였다. 이 때문에 바울은 16절에서 “아무도 나를 어리석은 자로 생각하지 마라. 그렇게 못하겠거든, 나를 어리석은 자로 받아들여 나로 조금 자랑하게 하여라”고 했다. 이 말씀에는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바보로 취급당할망정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만큼은 바른 반석 위에 세워놓겠다는 바울의 간절함과 진솔함이 담겨있다.

자랑에 대한 바울의 역발상

유대인들은 내세개념이 거의 없었고 고토회복과 민족해방으로 성취될 다가올 세상Olam Ha-Ba)을 희망(Ha-Tikvah)하였기 때문에 또 그 희망의 성취와 이 세상에서의 복이 다 토라의 준수에서 비롯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약한 것은 다 부정한 것으로 여겨 무시하였고, 강한 것은 정하게 여겨 자랑하였다. 바울을 대적한 자들의 자랑이 여기에 속했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을 육체의 자랑에 불과하다고 일축하였다(18절). 그리고 바울은 그들의 자랑에 속아 넘어간 교인들을 향해서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꺼이 용납하고 있다.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누가 너희를 집어삼키거나, 누가 너희를 사로잡거나, 누가 얕보거나, 누가 너희의 얼굴을 때리더라도, 너희는 용납하고 있다”(19-20절)고 책망하였다.

적대자들의 수고와 업적이란 것이 실상은 매우 보좔 것 없는 것이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먼 고린도까지 왔다는 것과 사도들의 추천장을 갖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그들을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다”(13절)고 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또 주후 51년경에 예루살렘에서 모인 사도총회의 결정문에서 볼 수 있듯이 적대자들이 지참한 추천장은 예루살렘의 에비온파들이 적어준 것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도총회의 결정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들으니, 우리 중 몇몇 사람들이 나가서 우리가 시키지 않은 말들로 너희를 괴롭히고 너희의 마음을 혼란케 한다고 하므로, 우리가 사람들을 택하고 그들을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로 한마음으로 결정하였다. 바울과 바나바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동일한 것을 말로 전할 것이다. 성령과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런 필요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더 지우지 않기로 하였으니, 곧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는 것이다. 만일 너희가 이것들을 스스로 삼가면 잘될 것이다. 평안하기를 원한다(행 15:24-29).

damascus.jpg바울은 적대자들이 그토록 업적을 자랑하고 싶어 한다면, 자신도 기꺼이 그들의 광대가 되어 자랑거리를 내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로(16-18절) 자신이 겪었던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수고들, 곧 옥에 갇힘과 매 맞음과 죽을 뻔했던 일들과 위험과 굶주림과 헐벗음(23-29절) 등을 상세히 소개하였다. 그러나 적대자들과는 상반된 발상을 가지고 “내가 꼭 자랑해야 한다면, 나는 나의 약함을 자랑하겠다”(30절)면서 개종직후에 다메섹에서 아레타스 4세 왕의 총독이 자기를 잡으려고 성을 지키자 창문으로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내려가 도주한 일을 언급하였다. 이것은 아마도 로마가 적진의 성벽을 가장 먼저 넘어간 용맹한 군인에게 주는 무공훈장에 빗대어 역설적으로 자신의 약함을 말한 것으로 추정된다.


약함과 강함의 역설

aretas_coin.jpg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18-25절에서 강한 것이 반드시 강한 것이 아니고, 약한 것이 반드시 약한 것이 아니라는 역설을 보여줬다. 고대 지중해 연안의 세계인들은 가장 강한 짐승의 상징으로 양을 꼽았고, 동시에 가장 순하고 약한 짐승으로 양을 꼽았다. 여기서 우리는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한 것이라는 역설을 보게 된다. 그 역설이 바로 기독교 사상과 구원교리의 핵심이다. 복음서에서 세상의 구세주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묘사한 것이나 그리스도인들을 어린양으로 묘사한 것이 그것이다. 기독교에서 양은 양들을 치고 감독해야할 강인한 목자의 상징이자, 목자를 믿고 따라야할 여린 그리스도인들의 상징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예배와 경배의 대상인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지만, 동시에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희생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신다. 이 하나님의 어린양이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가 된다는 사상이 기독교교리의 핵심이다. 가장 여린 것이 가장 강한 것이고, 가장 미련한 것이 가장 지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구원할 능력과 지혜는 강함에 있지 않고, 약함에 있다는 것이 바울의 확신이었다.

elagabalus_coin.jpg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11-13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하였다. 자신의 고난과 약함을 들어 강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물리쳤다. 바울을 대적했던 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아니라, 알렉산더나 헤라클레스와 같은 강한 그리스도를 원했던 자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올 뿐이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예수님과 바울을 비롯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판단이었다. 세상에 필요한 진정한 구원은 속죄제나 속건제 때 바치는 숫양과 같은 희생과 약함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믿었다. 세계사가 말해 주듯이, 폭력을 쓰는 나라는, 아무리 강하더라도, 또 다른 더 강한 폭력에 의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시리아가 앗수리아에, 앗수리아는 바벨론에, 바벨론은 페르시아에, 근동과 소아시아 및 그리스 일부까지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을 통치했던 페르시아조차도 헬라에 무너졌고, 헬라는 로마에 무너졌다. 그리고 그 로마는 비폭력, 평화, 용서, 화해,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에 무너졌다. 군마대신에 나귀를 타시고, 왕관대신에 가시관을 쓰시고, 홀대신에 갈대를 쥐시고, 왕좌대신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꺾이고 말았다. 이것이 약함과 강함의 진정한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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