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기54: 약함과 강함의 역설6(고후 1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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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54: 약함과 강함의 역설6(고후 12:9-10)
우리는 지난 일 년 동안 고린도전서와 후서를 통독하였다. 말씀의 주제는 ‘손 내밀기’였다. 또 2015년의 표어가 ‘복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교회’였다. 우리 교회는 빛의 일과 생명의 일을 하시는 주님을 본받아 빛의 일, 생명의 일을 하는 그리스도인의 교회 곧 Christian Church이다. 이 빛의 일, 생명의 일이 복음의 일이고, 신령한 일이다. 그러므로 복음으로 산다는 것은 빛의 일을 하고 살림의 일을 한다는 뜻이다.
그 어떤 능력도 그 어떤 재능도, 그 어떤 권세도, 그 어떤 재물도, 그 어떤 명예도, 그 어떤 신령한 방언과 천사의 말도, 최고조에 이른 예언의 능력과 산을 옮길 만한 믿음도,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구제와 봉사도, 그 어떤 환상과 계시도, “낙원에 이끌려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과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을” 듣고 왔어도, 살림이 없고 세움이 없다면, 그 속에 빛이 없고 생명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고, 허무한 것이고, 무의미한 것이고, 무익한 것이다. 깨어질 것이고, 낡아질 것이고 무너지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이야말로 겉으로는 강해보여도 실상은 약해 빠진 것이다.
반면에 아무리 약해도, 아무리 무능해도, 아무리 가난해도, 아무리 병약해도, 아무리 무시당해도, 아무리 작아도, 아무리 별 것 아니어도, 아무리 제 몸에 육체의 가시가 많고, 사탄의 사자가 많아도, 유대인들이 꺼려하고, 헬라인들이 어리석게 생각했던 수치와 죽음의 십자가조차도, 저 벌거벗은 추한 몰골의 겨울나무조차도, 그 속에 생명을 살릴만한 빛이 있다면, 살림이 있고, 세움이 있고, 충전부싯돌이 있다면, 어둠이 빛이 되게 하고, 혼돈이 질서가 되게 하며, 죽음이 생명이 되게 할 사랑이 있고 헌신이 있다면, 그것은 신령한 것이고, 영적인 것이며, 하늘 것이고, 영원한 것이며, 영의 일이고, 의의 일이며, 본질이고, 핵심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이고, 특권이며, 강력한 것이다.
약한 것이 강하다는 역설은 그냥 약한 모든 것이 강하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리 강하다할지라도 살림이 없고 세움이 없고, 손 내밀기가 없고, 나눔이 없고, 빛이 없고, 생명이 없다면, 약한 것이고, 보좔 것 없는 것이고, 싸구려이고, 가치 없는 것이고,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아무리 약하다할지라도 살림이 있고, 세움이 있고, 손 내밀기가 있고, 나눔이 있고, 빛이 있고, 생명이 있다면, 강한 것이고, 찬란한 것이고, 값비싼 것이고, 가치 있는 것이고, 영광이고, 특권이고, 은혜인 것이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고린도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깨우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이야말로 겉으로는 약해보여도 실상은 강력한 것이다.
우리가 만일 누군가에게, 비록 약하지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었다면, 우리가 만일 누군가에게, 비록 서툴지만, 사랑을 베풀었다면, 우리가 만일, 비록 쪼금이지만, 나눔을 실천했다면, 손가락질이나 비난이나 비방을 하기보다는, 비록 많이 서툴지만, 손을 내밀어 잡아주고 위로하고 칭찬했다면, 마구간의 구유에 뉘이신 예수님이 실패자가 아니듯이, 채찍을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실패자가 아니듯이, 죽어서 무덤에 묻힌 예수님이 실패자가 아니듯이, 우리도 결코 실패자가 아닌 것이다. 구유에 뉘이신 예수님이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받고, 천사들의 경배를 받았듯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앉아 영광을 받으시며,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시듯이, 우리 또한 실패자가 아니라 승리자요 영광을 누릴 자들이며 생명을 살릴 자들인 것이다.
고린도전서와 후서는 우리에게 겉만 보지 말고 속도 보라, 화려함만 보지 말고, 그 속에 감춰진 추한 모습도 보라. 질그릇만 보지 말고, 그 속에 담긴 보물도 보라. 낡아질 육적인 것만 보지 말고, 영원히 새로워질 것을 보라. 무너지고 말 것만을 보지 말고, 하늘의 것, 영적인 것, 참된 것, 가치 있는 것으로 덧입기를 힘쓰라고 말한다.
자랑과 교만과 비교는 무익하다. 어둠의 일이다. 혼돈의 일이다. 죽임의 일이다. 사단의 일이다. 반면에 사랑과 겸손과 온유는 유익하다. 빛의 일이다. 질서의 일이다. 생명의 일이다. 성령의 일이다. 누가 신령한 사람이고, 누가 의로운 사람이며, 누가 복 받을 사람이고, 누가 구원받을 사람인가?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다가오는 2016 병신년에는 병신처럼 살지 말고, 원숭이처럼 좋은 일에 재주를 부리며 삽시다. 한 해 동안 열심히 사신 여러분은 모두 영웅이십니다. 새해엔 하나님의 더욱 큰 은총을 입으시고, 더욱 신명나고 활기차게 복음의 일에 힘쓰면서 살아갑시다. 자기 아집과 무지와 왜곡된 가치관에 갇히지 말고 어둠을 박차고 뛰쳐나와 태양을 향해서 가슴을 활짝 펴고 당당하게 걸어 나갑시다. 또 병신년의 영웅적인 삶을 위해서 우리 모두 파이팅을 외칩시다. 다같이 “승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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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환원신학이 좋아서 공부하면서 매우 행복했으며 보람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도 환원신학의 목표가 신약성경을 주체로 하는것에 매료되었습니다
현한국교회들의 침체는 예수님의 뜻과는 전혀 맞지않게 행하기 때문에 촛대를 신천지 같은 곳으로 옮겨버리지 않나 생각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이적과 기적을 행하였다고 자랑하는 자를 불법을 행한자로 정죄하며 도무지 알지못한다고 일축한 뜻을 아직도 모르는 자들이 많다고 봅니다.우리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주님의 뜻을 쫓아 한국교회를 이끌고 갈것을 굳게 믿습니다
교수님 내년에도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