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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13: 희망이 불러온 배척(2)(막 3: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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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821 2016.02.17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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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13: 희망이 불러온 배척(2)(막 3:20-35)

병들고 귀신들린 자들

starbucks_logo.jpg 마가복음 3장 20-22절에 두 그룹이 등장한다. 한 그룹은 “예수가 미쳤다. 예수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예수가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자들이고, 다른 그룹은 예수님 주변으로 모여든 무리이다. 이 무리 중에는 병든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도 있었다. 예수님은 밀려오는 이 무리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시느라 “식사할 겨를이 없었다.” 이 무리가 과연 미친 자를 보려고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왔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예수님이 과연 미쳤는가? 예수님에게 과연 바알세불이 지폈는가? 예수님이 과연 귀신의 왕에게 붙들렸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한 그룹은 건강한 상태처럼 보였어도 진짜로 병든 상태였을 것이고, 다른 그룹은 병든 상태처럼 보였어도 의외로 건강한 상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진짜 병든 자들이고, 과연 누가 진짜 건강한 자들이었는가?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붙들러 나온 예수님의 친족들과 “예수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예수가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예수가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고 비방한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이 병든 상태였을 것이고, 복음을 듣고 고침을 받겠다고 예수님을 에워싼 무리는 역설적으로 건강한 상태였을 것이다.

바알세불은 블레셋 사람들의 신으로서 본래 ‘바알세붑’(Beel-zebub) 곧 ‘높은 거처의 주인’이란 뜻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경멸의 뜻으로 이를 ‘바알세불’ 곧 ‘파리들의 주인’라고 불렀다. 또 바리새인들은 바알세붑을 귀신의 왕으로도 불렀다(마 12:24). 열왕기하 1장 2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왕 아하시야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자 사람을 불레셋으로 보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자신의 병이 낫겠는지 신탁을 받아오도록 하였다. 아하시아는 북이스라엘의 제8대 왕으로서 바알숭배 강요로 악명을 떨친 아합과 이세벨의 아들이었다. 그는 아합이 죽은 후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2년간(BC 853-851년) 다스린 후에 요절하였다. 그는 자신의 부모 아합과 이세벨의 전철을 밟아 야훼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멀리하고 이방신을 섬기다가 사망하였다. 그는 낙상에 의한 사망이 아니었더라도 엘리사와 예후의 쿠데타 때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야훼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숭배를 강요한 아합과 이세벨의 모든 자녀들이 몰살당했음을 전하고 있다.

성령님을 모독한 자들

HolySpirit_cross2.jpg 마가복음 3장 23-30절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비방하는 서기관들에게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것인가를 경고하셨다. 첫째, 아무리 악한 사탄이라 할지라도 스스로를 거슬러 분쟁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의 나라는 설 수 없고 망하고 말 것이다. 둘째, 적을 물리치지 않고서는 그 나라를 약탈할 수 없다. 하물며 적장을 치려고 나간 자가 어떻게 자신을 향해서 칼을 들이대겠는가? 사리분별이 가능한 자들로서 이런 터무니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망하게 하고 약탈당하게 하는 위험한 짓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 곧 병든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신 일들은 사람들이 일찍이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큰 능력과 기사와 표적이었다. ‘기사’란 나타난 능력에 심히 놀라는 것을 말하고, ‘표적’이란 그 놀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믿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의 능력은 큰 무리가 지켜보고 있는 현장에서 일어났다. 이를 고의로 부정하고 예수님의 말씀과 손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바알세불 또는 귀신의 왕에 의한 것이라고 폄훼한 것은 하나님을 바알세불 또는 귀신의 왕이라고 말한 것과 다름없는 신성모독이었다. 그리고 이 신성모독은 그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알고 잘 믿는다고 자만하는 자들의 입에서 나왔다. 게다가 이 같은 모독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악독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나님에 대해서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잘 아는 서기관들이 악의적으로 “예수가 미쳤다. 예수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예수가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예수가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라고 폄훼한 것은 그들이 고침 받을 수 없는 중대한 병에 걸렸다는 암시였다. 자신들의 불치병을 고쳐주실 하나님의 능력을 일컬어 귀신의 왕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였으니, 그들이 무엇으로 자신들의 불치병을 고침 받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된다.”고 하셨다.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들은 유일신 사상 때문에 성령님이 하나님의 신, 곧 인성을 지닌 하나님이신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성령님을 하나님의 말씀과 손으로 행해지는 물리적인 능력(power)으로만 생각하였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성령님이 그냥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인성을 지닌 하나님이시고, 또 자기를 통해서 행해진 하나님의 능력은 인성을 지닌 성령님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며, 또 성령님이 행하신 능력은 자기가 행한 능력이므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의 신성을 지닌 분이신 것을 우회적으로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가족

StainedGlass-Loop08.jpg 유대교에는 교리나 신앙고백서가 따로 없다. 그 이유는 613개의 계명과 수많은 규례의 실천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굳이 열거 하자면, 열 세 개의 믿음의 원리와 몇 개의 계명들을 추가시킬 수 있다. 그것들에는 ①살아계신 하나님, ②한분이신 하나님, ③영이신 하나님, ④영원하신 하나님, ⑤중보자가 필요 없으신 하나님, ⑥예언자들의 예언의 진실성, ⑦모세의 예언의 진실성, ⑧모세가 전한 토라(성문과 구전 포함)의 진실성, ⑨토라의 최종 권위, ⑩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아시는 하나님, ⑪신상필벌하시는 하나님, ⑫메시아의 도래, ⑬죽은 자들의 부활이 포함된다. 그리고 신성모독하지 말 것,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길 것,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 것, 하나님을 사랑할 것, 하나님을 경외할 것,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 것, 하나님을 본받을 것 등을 포함시킬 수 있다.

유대교의 가장 큰 업적은 초월적인 하나님을 인간과 관계하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한 것이었다. 특히 자기 민족의 운명과 관련해서 구원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 조상의 하나님으로 이해하였다. 여기에 이방인들이 비집고 들어설 공관이 없었다. 유대인들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하나님 이해에 온 인류의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으로 지평을 넓혀 놓으신 분이 예수님이셨다. 하나님의 외아들로서의 위치를 굳히시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과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예수님은 민족색깔 남녀노소 빈부귀천이나 혈통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 값없이 은혜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얻게 하셨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여 주신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자기를 찾고 있을 때, 하나님의 가족은 혈통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믿음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셨다. 그러므로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가족의 식구들이고 예수님과 더불어 한 형제요 자매들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신 복음의 내용이다. 민족색깔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이나 혈통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가족의 식구가 되게 하신다는 이 위대하고 엄청난 선포가 바로 복음의 내용이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시어 외아들의 신분을 버리시고 맏아들이 되셨다. 예수님은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고, 친히 그들의 맏형이 되심으로써 그분이 누리는 모든 영광을 동생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34-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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