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끈14: 희망이 불러온 배척(3)(막 4:1-20)
본문
희망의 끈14: 희망이 불러온 배척(3)(막 4:1-20)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
예수님이 호숫가에서
복음을 전하셨다는 보도가 3장 7-12절에 이어 또다시 언급되었다. 호숫가에서 가르치신 것은 사람이 몰려와서 예수님을 만지려고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첫 번째는 작은 배를 대기시켜놓은 채 호숫가에서 복음을 전하셨고, 두 번째에는 아예 배에 올라앉으신 채 복음을
전하셨다. 첫 번째 때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려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예수님을 만지고자 한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뭔가에 목마른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이 눈이 멀어서 보지 못하고, 귀가 멀어서 듣지 못하고, 혀가 꼬여서 말이 분명치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갈릴리 호숫가의 출렁이는 물결과 빈 배처럼 오랜 한과 희망을 품고 메시아를 기다려온 사람들이었다. 오랜 외로움, 오랜 출렁임, 오랜 헛수고, 오랜 배고픔, 오랜 병듦에서 방황하고 신음하고 좌절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갈릴리 호수의 깨끗한 물로 오랜 상처를 씻고 고침 받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오랜 자비를 기다려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희망이요 구원의 빛이었다.
반면에 자신이 누구인가를 모르는 사람들은, 무식하고 병든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유식과 건강을 뽐내는 자들이었다. 자신들이 눈멀어 보지 못하고, 귀먹어 듣지 못하고, 혀가 꼬여 말이 분명치 않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들이었다. 잘났고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 그래서 가난하고 병들고 무식한 사람들을 무시한 사람들은, 그러나, 자신들이 불치병에 걸려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백치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간절함이 있을 리가 없고, 그리스도가 필요할 리가 없고, 옳음(義)과 사랑(慈悲)과 믿음(信)이 있을 리가 없고, 이웃과의 소통과 배움의 자세가 있을 리가 없었다. 자기 아집과 자만에 빠져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사람들은 불치병에 걸려 있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긍휼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화평하게 하는 사람,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복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건강한 사람과 병든 사람
복음서들에는 구조주의 모형론(Structural Typology)이 담겨
있다. 복음서들은 기독교와 유대교가 상반된 대립관계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신념체계인 복음을 독자들에게 보다 명확히 밝히기
위해서 당대의 정치종교지도자들과 유대교의 울타리 법들(Gezeirah), 곧 규례와 장로들의 전통을 건강한 복음에 대립되는 병든 것으로
설명한다. 어둠 속에서 빛이 밝게 빛나듯이 유대교의 병든 상태를 지적함으로써 기독교복음의 건강한 상태가 밝히 드러나게 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마가복음에 실린 ‘씨 뿌리는 자’ 또는 ‘네 종류의 밭’에 관한 비유를 기독교복음을 수용하는 건강한 사람과 그것을 거부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병든 상태를 세 종류로 나눠서 설명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먼저 “씨 뿌리는 자”는 기독교복음을 최초로 선포하신 예수님을 비롯한 모든 그리스도의 일군들을 말한다. 그리고 그 씨를 받는 믿음의 밭에는 네 종류가 있다고 하셨다. 여기서 “길가,” “돌밭,” “가시떨기”는 건강한 상태인 “좋은 땅”에 대립되거나 상반된 병든 상태를 말한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목적은 풍성한 수확을 얻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서 농부는 김도 매주고, 덧거름도 주고, 병충해 방제도 하고, 물도 준다. 그러나 만일 토질이 나쁘거나 전염병과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가 닥친다면, 수확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치게 된다.
예수님은 여기서 씨 뿌리는 자의 영농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고, 씨를 받는 토양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토양의 질이 좋고 거름이 충분하면, 병충해 방제를 자주 하지 않아도,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발아가 빠르고, 뿌리를 잘 내리며, 가지를 잘 뻗고, 잎사귀와 열매가 튼튼하게 자란다. 반면에 토양의 질이 나쁘거나 거름기가 없고, 햇볕이 안 들거나 통풍이 안 되면, 농부가 아무리 자주 물을 주고 김을 매줘도 씨앗은 어렵게 발아한 후에도 시들부들 죽거나 살아남아도 결실하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씨를 받는 토양은 문자적인 토양이 아니라, 믿음을 강조하신 것이다. 기독교복음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믿고 회개하고 침례를 받아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까지 결실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는가하면, 복음의 씨앗을 받는 순간 사탄에게 빼앗겨 버리는 굳어진 심령의 불신자도 있고, 말씀을 들을 때 복음의 단물인 감동만 빨아먹고 믿음의 단련인 시련의 쓴물은 내뱉어버리는 포기자도 있으며,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갖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에 짓눌려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건강한 믿음과 병든 믿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씨앗을 받는 밭의 비유는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긍정적 반응과 부정적 반응에 대한 것이다. 복음을 듣고 믿음조차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복음을 듣고 믿고 회개하고 신앙고백하고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믿음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은혜체험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믿음의 끈을 단단히 붙잡고 육체적 정신적 영적 치유를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도 있다.
갈릴리 호수는 세상을, 배는 교회를 상징한다. 마가복음 4장 1절,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었다.”는 말씀은 무리가 아직 교회라는 구원의 방주에 오르지 아니한 상태, 즉 이제 겨우 복음을 듣는 단계를 말한다. 그들이 교회라는 구원의 방주에 승선하려면, 복음을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죄를 회개하고, 마음의 믿음을 증인들 앞에서 입으로 고백하고, 침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무리는 아직 복음을 듣는 단계에 머물고 있다. 승선을 결정하기까지 아직도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러므로 씨앗이 뿌려지는 네 종류의 밭은 어쩌면 승선하기 전과 후 4단계를 말씀하신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면,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는 예수님이 교회의 창설자이시고, 교회는 그분의 말씀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배는 기독교복음을 듣고, 믿고, 회개하고, 신앙고백하고, 침례를 통해 배표를 받고 승선한 자들을 호수 건너편으로 상징된 하늘 가나안땅의 구원의 해변으로 실어 나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승선할지 말지를 결정해야할 시간이다.
기독교복음을 듣고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배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 부류가 있다. 그들은 믿음의 눈이 멀고, 말씀의 귀가 먹어서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11절)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의 마음이 “길 가”와 같고, “돌밭”과 같고, “가시떨기”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이 “좋은 땅”과 같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믿음의 눈이 열려 만물을 밝히 보는 자들이요, 귀먹고 어눌한 혀가 풀려 말이 분명한 자들이다. 이 범주의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깨달을 뿐 아니라, 결실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를 맺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다. 이들은 복음을 듣는데서 그치지 않고, 믿고,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할 뿐 아니라, 침례(배표)를 받고 승선하기까지 믿음을 발전시킨 후, 그 결실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를 맺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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