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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15: 희망의 일군(1)(막 4: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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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5,190 2016.02.2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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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15: 희망의 일군(1)(막 4:21-34)

희망의 일군: 등불 비유

jewish_oillamp.jpg 등잔에 불을 밝히는 목적은 어둠을 몰아내기 위함이다. 그리스 로마세계에서 어둠은 무지를, 빛은 지식을 상징한다. 병들고 무지한 흑암의 세상에 등불을 켜는 목적은 무지를 몰아내고 지식을 깨우치기 위함이다. 고린도의 유명한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밝은 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고린도사회가 병들고 무지한 흑암에 갇힌 사회임을 질책하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22절에서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때는 바야흐로 숨긴 것이 드러나고 감추인 것이 나타날 종말시대란 것이다. 여기서 종말은 오랜 희망과 염원이 성취되는 새로운 세상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여기서 “숨긴 것”과 “감추인 것”은 악한 무엇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11절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말한다.

바울은 기독교복음을 하나님의 비밀(신비) 혹은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불렀다. 그것을 알게 한 것은 계시인데, 그 계시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것이 오랜 기간 비밀이었던 것은 유대인들의 아집과 무지 때문이었다. 한편 예수님은 그것이 오랜 기간 비밀이었던 이유조차도, 22절에서, 나타내려 하고, 드러나게 하려는데 있다고 하셨다. 그 시점이 바로 지금 여기란 것이다. 지금 여기가 바로 그 오랜 비밀이 드러나고 나타날 때란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이 다름 아닌 등불을 가져온 희망의 일군이시오, 희망의 등불이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비밀(신비)을 밝힌 희망의 등불이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한 계시였다. 그분이 세상에 등장하신 것은 어둠의 세상에 등불이 켜진 것과 같다.

그러나 예수님은 등불이 빛을 발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말”이나 “평상”과 같은 배척자들을 경고하셨다. 여기서 “말”은 등잔을 덮는 됫박이나 그릇을 뜻하고, “평상”은 침상을 말한다. 등불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가 아니라 등경 위에 놓아야 어둠을 밝힐 수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무지하고 캄캄한 세상에 지식의 빛, 구원의 빛, 생명의 빛을 밝히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빛의 일을 하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자들은 등불이신 예수님을 끌어내려 자신들의 율법과 규례의 됫박으로 덮어버리거나 자신들이 누리는 부와 안락의 침상 아래에 감춰버리려고 하였다. 그 공격이 집요하고 날카로웠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24-25절에서,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고 경고하셨다. 만일 누구든지 어둠의 일과 생명을 해치는 죽이는 일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그 일로 인해서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희망의 일군: 농부의 비유

jewish_wheat_harvest.jpg 본문 26-29절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마가복음에만 기록된 말씀이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예수님의 이 비유와 비교시켜 볼 수 있는 성구가 고린도전서 3장 5-10절이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바울의 말씀에 비춰볼 때, 예수님의 비유에서 씨를 땅에 뿌리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일군, 곧 희망의 일군이다. 일군은 농부와 같아서 기독교복음의 씨를 심고 물과 거름을 주며 병충해를 방제하고 김을 매주는 자이다. 그러나 그 씨가 발아되어 싹을 틔우고 성장시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땅이다. 땅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고, 하나님은 그 땅에 생명의 신비를 부여하셨다. 농부가 씨를 심고 물과 거름을 주며 병충해를 방제하고 김을 매주는 목적은 “충실한 곡식”을 얻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라게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오랜 인간의 희망인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고 건설하는 복음의 일은 신인협업, 곧 하나님과 사람의 협력사역으로 이뤄진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하는 일이 형통하게 된다. 사람의 능력, 곧 사람의 노동과 기술만으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일궈지지 않는다. 사람이 씨를 심고 물과 거름을 주며 병충해를 방제하고 김을 매준 후에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한다. 땅과 비와 공기와 해를 사람이 주관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일군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일하는 하나님의 일군이요 그리스도의 일군이다.

그리고 29절,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는 말씀은 최후심판의 때를 암시한다. 그러나 비유의 핵심은 불에 태워질 쭉정이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곳간에 모아질 “충실한 곡식”에 있다(마 3:12, 눅 3:17). 충실한 곡식은 하나님의 오랜 자비를 입어 헌신한 희망의 일군들의 수고의 대가이다. 그리고 충실한 곡식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한다.

희망의 일군: 겨자씨 비유

mustard_flower_bird_seeds.jpg 겨자씨 비유는 믿음과 기독교복음의 잠재 능력, 곧 하나님의 나라의 성장 동력을 암시한다. 복음서에는 두 개의 겨자씨 비유가 있다. 하나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마 17:20, 눅 17:6)이 갖는 행동 능력에 관한 것이고, 또 다른 것은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마 13:31, 눅 13:19)만한 복음이 갖는 성장 동력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겨자씨 비유는 믿음과 기독교복음이, 비록 지금은 그 시작이 미약하지만, 필연적으로 나중은 창대하게 된다(욥 8:7)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겨자씨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마치 메마른 겨울나무 속에 숨겨진 생명의 부싯돌처럼, 또 메마른 씨앗 속에, 비록 그것이 아주 작은 알갱이에 불과할지라도, 그 속에 새 생명을 탄생시켜 열매를 맺게 할 DNA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겨자씨를 지목하여 말씀하신 것은 겨자가 갈릴리 주변에서 자라는 매우 흔한 식물이었기 때문이다.

겨자는 1년생 초본식물로써 2-3미터정도까지 자라며, 유채꽃과 흡사한 노랑꽃이 핀 후에 좁쌀 정도의 씨앗이 맺힌다. 우리나라에서 “작다”는 것을 종종 “좁쌀만 하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유대인들도 “작다”는 의미를 겨자씨로 표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겨자씨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31절)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땅에”라는 말은 “자기 밭(채소밭)에”(마 13:31, 눅 13:19)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자기 밭에 심은 모든 씨보다 작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겨자는 유대인들이 먹을 수 있는 정한(kosher) 채소로써 채전에 심기는 씨앗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작지만 큰 키로 자라기 때문에 새들이 자주 날아와 앉는다.

복음서에서 겨자씨는 좋은 씨를 대표한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장 38절에서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에 비춰볼 때, 겨자씨는 좋은 씨, 곧 하나님의 나라의 자녀들을 의미했다고도 볼 수 있다. 갈릴리 주변에 흔해빠진 잡초나 다름없는 작은 겨자씨가 하나님의 밭에 심긴 후에 새가 깃들만큼 성장한다는 말씀은 작고 쓸모없다며 멸시와 무시만 당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밭에 심겨져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지친 새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쓸모가 큰 사랑받는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의 교회가 된다는 뜻이다.

초기에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의 교회는 유대교인들과 헬라인들로부터 무시와 탄압을 받던 작은 겨자씨 공동체에 불과했지만, 삶에 지친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어줄 만큼 성장 동력이 큰 다이내믹한 집단이었다. 10여 차례에 걸친 대대적인 박해에도 불구하고, 주후 392년에 1,145년의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로마제국을 그리스도의 나라로 바꾸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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