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끈16: 희망의 일군(2)(막 4: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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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16: 희망의 일군(2)(막 4:35-41)
해륙풍(Sea and Land Breeze)의 방향
온기가 상승한 자리를 냉기가 채우면서 바람이 만들어진다.
여름철 낮 시간대는 햇볕에 데워진 육지가 기온차가 작은 바다보다 기온이 높고, 밤 시간대는 기온차가 작은 바다가 식어버린 육지보다 기온이 높다.
반대로 겨울철엔 기온차가 작은 바다가 꽁꽁 얼어붙은 육지보다 기온이 높다. 찬 공기가 따뜻한 공기 쪽으로 이동하니까 여름철 낮 시간대는 바람이
바다에서 육지로 불고, 밤에는 육지에서 바다로 분다. 그러나 겨울철엔 바람이 육지에서 바다로 분다. 겨울철엔 바다의 온도가 대륙의 온도보다
높고, 이 저기압이 위로 올라가면, 그 자리를 찬 대륙의 고기압이 메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겨울에 추운 이유는 시베리아의 찬 고기압이 바다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갈릴리의 여름철엔 남서풍이 불지만, 겨울철엔 북동풍이 분다. 일반적으로 연사는 청중보다 높은 곳에 서서 청중을 내려다보며 연설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바라보며 복음을 전하셨다. 상식에 맞지 않는 방법인 것 같지만, 실상은 탁월한 방법이었다. 갈릴리 호수는 세숫대야에 물이 담긴 것처럼 해발 마이너스 210미터이상 아래에 있고, 사방이 온통 가파른 산으로 포위되어 있다. 그리고 육지는 호수보다 기온이 높기 때문에 낮 시간대에 바람은 호수에서 육지를 향해서 분다. 예수님이 무리를 피해 바닷가에 서거나 배를 타고 앉아서 말씀을 전한 것은 자연이 마련해준 음향시설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신 것이다. 바닷가에서 서서 평소처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도 호수에서 육지로 부는 바람을 타고 육지(산언덕)에 선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들린다.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은 자연의 원리를 지혜롭게 이용하셨던 것이다.
대지를 뜨겁게 달구는 여름철엔 바람이 갈릴리 호수에서 산 쪽으로, 또는 지중해에서 갈릴리 호수 쪽으로 남서풍이 분다. 반면에 겨울철엔 바람이 북동쪽 고지대, 즉 헐몬산과 골란고원에서 호수를 향해 남서쪽으로 분다. 5천만 평가량 되는 갈릴리 호수는 수심이 크게 깊지 않은 반면에 세숫대야에 물이 담긴 것처럼 협곡에 위치하고 있다. 헐몬산과 골란고원에서 오는 북동풍이나 지중해서 오는 남서풍이 세게 불면 갈릴리 호수의 물은 세숫대야의 물이 소용돌이치듯이 거센 물결을 만들어낸다. 이런 현상은 특히 겨울철인 11월에서 4월 사이에 자주 발생한다. 물결이 거센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예수님 시대의 고깃배들은 작은 돛단배들이어서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광풍에 놀란 승선 자들
예수님이 낮에 말씀을 전하실 때, 호숫가에서 물을 등지고 서서 산을 향해서 말씀하셨다. 그러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소리전달이 잘 되었다. 호수의 찬 공기가 달궈진 대지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해가 저물고 대지가 식으면,
특히 2,814미터나 되는 높은 눈 덮인 산에서 만들어진 북동풍의 찬바람이 계곡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해수면보다 210미터나 더 낮은
계곡에 위치한 갈릴리 호수를 스치고 지나간다. 35절을 보면,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셨다.
바람의 방향은 남서풍에서 이미 북동풍으로 바뀌고 있었다. 36절을 보면, 예수님이 타고 있던 배와 주변의 다른 배들도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바람이 갑자기 돌풍으로 바뀌었다. 지형의 특성상 흔히 있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배는 출발지에서 수 킬로미터나 떨어진 동쪽을 향하고 있는 터라
맞바람을 맞으며 항해하고 있었다. 돌풍은 세숫대야 모양의 갈릴리 호수를 소용돌이치게 만들기 때문에 배들이 위태롭게 되었다. 37절을 보면, 배에
물이 차기 시작하였다.
고요하기만 하던 호수가 갑자기 요동을 치자, 평화롭기만 했던 배와 배에 탄 사람들이 함께 요동을 치며 위태롭게 되었다. 38절을 보면, 몹시 고되고 지친 하루를 보내신 예수님은 그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시고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쇄도하는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병자들을 돌보시는 일은 예수님에게 힘겨운 노동이었다. 예수님은 마른 빵조각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고, 그조차도 시간이 없어서 자주 걸려야했다. 그러나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셨다”는 38절의 말씀은 이 고단함을 강조하기보다는 오히려 정반대로 평온함을 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천국복음을 선포하셨던 예수님이나 천국복음으로 한껏 위로를 받았던 제자들까지도 마음이 호수처럼 잔잔하고 평온했을 것이고 기쁨으로 차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예수님께서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를 말씀하신지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때에 벌어진 일이었다. 또 이 상황은 17절에서처럼,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 벌어질 또는 실제로 벌어진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호수는 세상을, 배는 교회를, 폭풍은 환난을, 저편은 목적지나 신세계를 암시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폭풍을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
복음서는 예수님의 전기이자 권면의 말씀이다. 그러나 전기보다는 권면에 더
치중되어져 있다. 복음서가 기록될 무렵에 교회는 환난과 박해를 당하고 있었고, 네로의 기독교박해와 예루살렘의 유대-로마전쟁이라는 중대한 국면을
맞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 교회들과 교우들은 심히 두려워 떨지 않을 수 없었고, 주님께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폭풍진압
이야기는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첫째는 돌풍처럼 환난이나 박해가 길지 않다는 것이다. 시련은 언제나 짧다는 것이다. 갈릴리
호수에 돌풍이 몰아치고 폭풍이 이는 날이 일 년 365일 가운데 며칠이나 되겠는가? 시련은 지나가게 마련이다. 둘째는 환난의 중심에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맞닥뜨리는 시련은 더 단단하게 만들지 쓰러져 넘어지게 하지 않는다. 폭풍이
있는 것은 아름다운 무지개를 피우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더욱 굳건히 세워야 한다. 39-40절은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 하라. 고요 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는 말씀으로 믿음을 굳건히 세울 것을 격려하고 독려하고
있다.
희망의 일군인 우리에게 믿음이 있어서 보고 듣고 말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맞닥뜨린 환난을 잠잠케 하고 고요하게 잠재울 능력이 많으신 이 예수님을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다. 배라는 삶의 중심에, 배라는 가정의 중심에, 배라는 교회의 중심에, 배라는 크고 작은 공동체의 중심에 누구를 모셨는가에 따라 경쟁력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세계관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36절,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라는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을 모신 삶, 예수님을 모신 가정, 예수님을 모신 교회, 예수님을 모신 크고 작은 공동체는 거친 풍랑을 인하여 더 빨리 가게 될 것이다. 또 38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환난은 예수님을 찾게 만든다. 환난은 노란색 경고표시이자 빨간색 위험표시이다. 삶에 찾아오는 위기는 경고이자 위험표시이다. 위기 때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믿음생활에서 뒷걸음질할 때가 아니라 삶을 반성하고 회개해야할 때이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능력 많으심을 인정해야할 때이다. 내게서 잊히신 하나님을 찾고 깨워야할 때이다. 희망의 일군인 제자들이 광풍을 만나 어찌할 수 없을 때에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을 깨우며 도움을 청한 것처럼, 희망의 일군인 우리도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분의 능력에 우리의 삶을 의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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