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끈20: 희망이신 예수님의 신분 공개(2)(막 6: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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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20: 희망이신 예수님의 신분 공개(2)(막 6:30-44)
그리스도신분 공개를 위한 오병이어
갈릴리 지역의 주도인 티베리아스(디베랴)는 연중 기온이 10-30도 정도이고,
습도가 60-70퍼센트에 이른다. 여름인 5월과 9월 사이의 기온은 18-32도이다. 가장 더운 달은 8월로써 기온이 24-32도 정도이다. 또
5월에서 9월까지는 건기로써 강수량이 10밀리미터 안팎이다. 겨울인 12월부터 3월 사이의 기온은 9-21도 정도이다. 가장 서늘한 달은
1월로써 기온이 9-18도 정도이다. 11월부터 2월까지는 우기로써 비가 11월에 90밀리미터, 12월에 190, 1월에 180, 2월에 110
정도 내린다.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달은 12월로써 190밀리미터 정도 내린다.
이로써 푸른 잔디가 있는 계절이 언제쯤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의 공적 활동기간을 3년 6개월 정도 기록한 요한과는 달리 마태, 마가, 누가는 일 년여 남직만 기록하였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공개한 표적으로써 이 표적이 있고난 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후 30년 유월절은 4월 7일(금요일)에 닿았으므로 예루살렘까지의 여행기간을 감안할 때 오병이어의 기적은 우기철인 겨울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의 밤 기온은 10도, 낮 기온은 20도 정도이고, 들녘은 푸른 잔디로 덮인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정하신 스케줄대로 예루살렘에로의 오름의 시점을 유월절 직전으로 정하셨다. 오병이어의 표적, 베드로의 신앙고백, 별세, 수난, 배척에 대한 예고는 모두 그리스도 신분의 공개, 예루살렘에로의 오름, 십자가의 수난의 시점이 유월절에 맞춰져 있음을 보여준다. 오병이어의 표적 때 사람들이 앉았던 “푸른 잔디”(39절)가 유월절이 멀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또 인류의 희망이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르셔야할 때란 것을 말해준다.
유대인들에게는 ‘오름’(aliyah)이라는 집단무의식이 있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밖에서의 삶을 비정상적 상태로 간주하면서 그러한 삶을 유배생활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언젠가는 예루살렘의 땅에로 돌아가게 될 것이란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희망(Ha-Tikvah)을 국가(國歌)로 부른다. “우리의 희망은 아직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천년을 간직한 희망은 우리 자신의 땅에서 자유민이 되는 것, 시온과 예루살렘의 땅에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로의 오름을 ‘알리야’(aliyah)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들의 오름과 예수님과 그리스도인의 오름의 목적은 상반된다.
신앙고백을 위한 오병이어
마태, 마가, 누가복음의 공통점은
예수님의 갈릴리에서의 활동이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한 언급, 오병이어의 표적, 예수님의 신분노출, 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 마무리되는데 있다. 이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르는 길에서 예루살렘에서 당하실 십자가의 수난에 대해서 세 차례 예고하셨다. 이 세 차례 수난예고를 처음 소개한 저자가
마가이다. 그렇지만 마가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또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각각 오천 명과 사천 명을 먹이신 표적들을 마태와
누가처럼 예수님의 그리스도신분공개와 갈릴리에서의 활동을 마무리 짓기 위한 것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빵의 문제와 세상의 일로 눈이 있어도 하나님의
일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하나님의 일을 듣지 못하며, 혀가 있어도 하나님의 일을 말하지 못하던 자들이 영의 눈이 열려 만물을 밝히 보고,
영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이 분명해진 후에야 비로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일과 복음의 일에 헌신할 수 있음을
강조할 목적에 사용하였다.
세례 요한의 죽음은 그가 그리스도가 아니었다는 점과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그의 사명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이 시점부터 그동안 감췄던 그리스도 신분을 공개하시고 죽음을 예고하신다. 오병이어, 물 위를 걸으심, 칠병이어의 표적들은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보기를 원했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들로써 모세가 행한 만나와 홍해도하와 같은 표적들에서 모형을 갖는다.
삼국시대이후 우리민족에게 거짓 미륵의 출현이 종종 있었던 것처럼, 바벨론유배이후 유대민족에도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이 종종 있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누가 참 그리스도인가를 판가름하는 잣대 혹은 그리스도가 되는 조건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었다(마 16:1). 여기서 “하늘로부터”는 거짓에의 반대, 곧 ‘참’이나 ‘옳음’을 뜻한다. 예수님의 말씀에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마 21:25)는 물음이 있고, “위로부터 오시는 이” 또는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란 표현이 있다(요 3:31), 이들 표현들에서 보듯이, 하늘로부터 온 사람이면, 참 하나님의 사람일 것이고, 하늘로부터 온 표적이면, 참 하나님의 사람이 일으킨 표적이 될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온 사람, 하늘로부터 온 침례, 하늘로부터 온 표적들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큰 능력 행하심을 뜻하는 ‘기적’이란 말 대신에 그 큰 능력이 일어난 목적을 뜻하는 ‘표적’이란 말이 사용되었다.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는 예수님이 오실 자 그리스도이신 사실을 공개한 표적이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로 오름을 위한 오병이어
유대인들에게 “하늘로부터”란 표현이 생긴 이유는 주전 586년에 나라를
빼앗기고 바벨론에 유배된 이후 제2모세와 제2가나안땅을 희망한데서 비롯되었다. 제2모세는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말이다. 가나안땅 이전시대에
히브리인들은 짧게는 215년, 길게는 430년간이나 이집트에서 떠돌이노예로 살았다. 설상가상으로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가나안땅을 빼앗기고 노예로
끌려감으로써 다시금 예전의 그 땅 없던 떠돌이노예의 신세로 돌아갔다. 이 떠돌이노예의 유대인들에게 제2가나안땅의 시대를 열어줄 그리스도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일 것이라고 믿어졌다(신 18:15). 모세는 광야에서 표적을 일으켜 매일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려 먹게 하였으므로 오실 자 그리스도는
당연히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행할 수 있는 자라야했다(요 6:30-31). 그러므로 예수님이 행하신 오병이어의 표적을 본 유대인들은 놀라
말하기를,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하였고,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고 하였다”(요
6:14-15).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사명은 유대인들의 왕이 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추락한 명예와 빼앗긴 주권을 회복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오로지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도 유대인만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죄의 속박에서 건져 하나님의 자녀로 삼고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으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이 사명 감당을 위해서 예루살렘에 오르셔야 했다. 예루살렘에서 인류의 대속제물로써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것은 예루살렘에 오르실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고, 의혹에 찬 떠돌이예언자로서가 아니라, 모두가 인정하는 그리스도로서 오를 수 있는 분명한 표적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는 명확한 싸인 없이, 의심이 난무하는 상태에서 예루살렘에 올라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면, 그 죽음은 한갓 갈릴리 촌부의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의 자격에 꼭 필요한 하늘로부터 오는 음성과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 전반부에 소개된 것이고, 8장 29절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 전반부의 대미를 장식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는 때가 차기까지 당신의 신분을 감췄어야했고,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했어야했다. 그리스도신분 노출은 죽음을 의미하였다. 재물과 명예와 권세를 손에 쥔 자들이 그리스도를 극도로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신분공개 시점을 죽음의 때로 정해놓으셨고, 병자들을 고치신 후에는 소문내지 말라고 부탁하셨던 것이다. 소문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매우 역설적으로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시점을 “영광을 얻을 때”(요 12:23)로 적고 있어서 예수님의 죽음이 큰 영광으로 보상되었음을 밝혀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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