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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21: 희망이신 예수님의 신분 공개(3)(막 6: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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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298 2016.03.1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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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21: 희망이신 예수님의 신분 공개(3)(막 6:45-56)

침례와 성만찬 모형: 홍해도하와 광야만나, 폭풍진압과 급식기적(1)

tabgha_dalmanutha2.jpg 두 번의 광풍진압과 두 번의 급식기적은 교회의 두 가지 의식 곧 침례와 성만찬의 모형이고, 제1모세가 히브리인들을 인도하여 홍해를 건넌 후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사건의 원형이다.

4장 35-41절에서 이미 한 차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폭풍만난 제자들이 배 안에서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깨움으로써 문제를 해결하였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시지 않는지, 휘몰아치는 폭풍 가운데 서서 바람과 바다를 향해 고요하라고 꾸짖어야할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이 일상에 쫓기며 살아가는 우리의 내리에서 잊히신 것은 아닌지, 그래서 하릴없이 낮잠이나 청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우리는 지나치게 자존심이 강하고 지나치게 독립적이어서 예수님께 도움 청하기를 꺼려하고, 자신만의 힘으로 문제해결을 시도하다가 절망상태에 빠진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때이다. 그러나 바로 그때가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한 때이다. 늦었다고 생각되는 바로 그 시점이 우리의 의식을 깨워야할 때이다.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워야할 때이다. 자신들만의 힘으로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 보려고 했던 제자들은 결국엔 예수님의 도움을 받고서야 바다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었다.

6장 45-56절에서는 이전 사건과 달리 예수님이 없는 제자들만의 항해에서 예기치 않게 광풍을 만나 밤새도록 고생한 사건이었다. 오병이어 기적이 있은 직후 해 저문 때에 예수님은 육지에 남으시고,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북서쪽 타브가를 출발하여 북동쪽 벳새다로 가고 있었다. 바람이 낮에는 기온이 낮은 호수에서 기온이 높은 육지로 불지만, 육지의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밤에는 북동풍이 호수를 향해 불어온다. 이 바람이 종종 광풍으로 바뀌기도 한다. 북동쪽 벳새다로 가려던 제자들이 만난 역풍이 바로 북동풍이었다.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함께 배에 타고 있었거나 예수님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만 아니었다면, 이 맞바람과 밤새도록 사투를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펼치는 사투도 이와 같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께 고백한 신앙이나 약속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는 세상의 역풍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순응하며 살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의 배를 타고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서 세상이란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강한 고난의 역풍이 닥쳐와도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예수님이 지켜보고 계시고 있고, 너무 늦지 않게 다가와 도움을 주신다는 점이다.

침례와 성만찬 모형: 홍해도하와 광야만나, 폭풍진압과 급식기적(2)

redseacross.jpg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 기도하시던 중에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셨다. 예수님이 계신 산에도 강풍은 불었고, 달빛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예수님은 예루살렘에로 오름을 단행하실 시기가 다가왔기 때문에 기도를 멈출 수가 없으셨던 것 같다. 만일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제자들에게 전화로 벳새다로 가지 말고 게네사렛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제자들은 역풍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과 약속한 장소에 도달하려고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낭패를 보았다. 우리도 종종 선한 일로 우리 자신을 혹사시키지만,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는 때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지켜보고 계신다는 점이고, 너무 늦지 않게 찾아오신다는 점이고, 우리 안에 그분을 영접하는 즉시 문제가 해결된다는 점이다. 물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이 배에 올라 그들과 함께 하셨을 때 강풍이 멎었다(51절). 그러나 배는 이미 게네사렛땅에로 밀려가 있었고, 동이 틀 시각이었기 때문에 배를 게네사렛땅에 댔다. 그러자 예수님을 알아보고 사방 각지에서 병자들이 몰려왔고, 예수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려고 힘썼으며, 옷 가에 손을 대는 자는 다 고침을 받았다(56절).

어떤 항해도, 비록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항해라도, 주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위태롭다. 설사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항해라도, 거친 파도와 강한 폭풍과 같은 시련은 여지없이 찾아온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하시는 한,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일은 결코 없다. 믿음만 있다면, 물위도 걸을 수 있고, 강풍과 거친 파도도 잠잠케 할 수 있으며,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져 병을 고치겠다는 믿음만 있다면, 믿음대로 병 고침을 받을 수 있다.

사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목적은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성역(聖役)이었다. 예수님의 그리스도 신분노출(공개), 세 번의 수난예고, 예루살렘에로의 오르심, 십자가에 못 박히심, 부활, 승천, 영광 받으심은 두 개의 바다기적, 병든 자들(여자) 치유, 두 개의 급식기적, 두 개의 장애자들(남자) 치유가 있고난 이후에 이뤄졌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제2모세 곧 그리스도이심과 그 사명이, 유대인들이 간절히 바란 이스라엘의 경제, 명예, 주권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음을 잘 말해준다. 여기서 사건들이 쌍으로 소개된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 남녀, 노소, 빈부, 귀천을 아우른 것이고, 바다기적이 급식기적보다 앞선 것은 제1모세의 인도로 히브리인들이 홍해를 건넌 후 광야(빈들)에서 만나를 먹었던 것에서 모형을 취한 것이다. 이것은 또한 침례(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하여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근거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모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목적

마가복음 4장부터 8장까지를 보면, 두 개의 바다기적과 두 개의 급식기적 그리고 두 개의 장애자 치유기적이 나온다. 그러고 난 다음 8장 29절에서,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나온다. 두 개의 바다 기적들 가운데, 풍랑을 잔잔케 하신 이야기(4:35-41)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6:35-44)을 향해서 진행이 되고,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기 위해서 귀먹고 어눌한 벙어리(7:31-37)가 고침을 받고 말이 분명해진다. 풍랑만난 제자들을 향해서 물위를 걸으셨던 이야기(6:45-51)는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8:1-10)을 향해서 진행이 되고, 그리스도인들의 대표인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기 위해서 벳새다 장님(8:22-26)이 고침을 받고 만물을 밝히 본다.

복음서 독자들이 놓치지 말아야할 중요한 부분은 두 개의 급식기적 곧 오천 명을 먹이신 것과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침례 요한이 순교를 당하고난 직후에 베풀어졌다는 사실이다. 침례 요한이 죽고 나서부터 예수님은 당신의 신분 곧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나게 말씀하셨다. 침례 요한이 예수님보다 먼저 순교를 당한 것은 그가 그리스도가 아니었다는 증거였다. 또 침례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인 사실을 입증하는 하늘로부터 오는 음성을 듣거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베풀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침례 요한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당신의 신분을 철저히 감추셨다. 복음씨앗을 좋은 땅에 뿌릴 충분한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고, 사람들 중에는 침례 요한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례 요한이 살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더군다나 당신의 인기가 나날이 치솟고 있고, 그 소문이 헤롯 안티파스와 예루살렘의 정치종교 지도자들의 귀에까지 들어가 위태롭게 된 상황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신분을 더 이상 감추실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오천 명과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들을 행하셨다. 이 두 개의 급식기적이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예수님을 제2모세 곧 오실 자 그리스도로 믿게 만드는 표적들이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 곧 제2모세가 오시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곧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먹게 한 것과 같은 표적을 행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개의 표적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명확히 밝히는 외적 증거였다. 이로써 눈과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된다. 이 신앙고백을 끝으로 복음서의 전반부가 끝나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부활하시는 후반부가 시작된다. 후반부에서는 예수님의 처형을 진두지휘한 백부장의 신앙고백,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15:39)가 대미를 장식한다.

이 모든 것에 더해서 매우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의 공적 사역이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일 곧 빛을 주고 생명을 주는 일이었음과 이 일이 궁극적으로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승천 및 하늘우편보좌에 앉으심을 통해서 완성된데 있다.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일은 희생 없이 값싸게 이뤄지지 않는다. 여기에 예수님의 수난의 목적이 있다. 그러나 그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음과 허무의 수렁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우편보좌에 앉으시고 영광을 받으셨다. 그러므로 부활, 승천, 하늘우편보좌영광은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보상이었다. 이는 또한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부활, 승천, 보좌영광을 받아 누리게 될 보상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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