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끈22: 희망이신 예수님의 신분 공개(4)(막 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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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22: 희망이신 예수님의 신분 공개(4)(막 7:1-23)
장로들의 전통
예수님에 관한 소문은 예루살렘에까지 퍼졌고, 예수님을 찾아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루살렘당국이 보낸 정보원들이었다. 그들은 트집거리를 찾고 있었고, 그들과 예수님과의 논쟁은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마가복음 7장 1-23절에서 세 가지 “장로들의 전통”(3절)이 언급되었다. 장로들의 전통이란 규례 혹은 울타리 법들로써 모세오경에 실린 613개의 계명(토라)이외에 미쉬나(Mishniot)라 불리는 구전에 실린 율법들이다. 이 가운데 손 씻기는 미쉬나의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주제(Seder)인 토호롯(Tohorot, 정결들)에 담겨있다. 토호롯은 12개의 소주제로 나뉘는데, 그중 열한 번째인 야다윔(Yadayim, 손들)이 손 씻기에 해당된다. 4절에서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라”는 카샤룻(Kashrut) 음식법과 토호롯의 12개 소주제 가운데 첫 번째인 케이림(Keilim, 식기류)에 나오는 식기류 침례(Tevilat)를 언급한 것으로 추정된다. 카샤룻은 유제품(Dairy)과 육류(Meat) 및 그 밖의 식품들(Pareve)을 조리할 때 이들 세 가지 제품을 위한 각각의 전용 조리기구들과 식기류를 별도로 비치하여 서로 섞이지 않게 사용하고, 씻을 때에도 섞이지 않게 엄격히 구분하여 전용 싱크나 개수대에서 씻어야 하며, 전용 식기 건조대나 수건은 물론이고, 이들 조리기구들과 식기류를 보관하는 전용 찬장과 공간을 별도로 구비해야한다는 것과 부정하게 된 식기류를 정화하는 방법을 담고 있다. 케이림은 처음 구입했거나 부정하게 된 식기류의 정화의식에 관한 내용이다(민 31장).
고르반(Corban)은 하나님께 드림이 된 예물(a gift devoted to God)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어떤 물건을 지적하여 ‘고르반’이라고 선포하면, 그 물건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으로 간주되어 즉시 성전에 속한 물건이 되지만, 그 물건은 서원한 사람의 소유로 그냥 남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11-13절,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한다”는 부모님께 공양하기 싫은 재물을 고르반으로 지정만하면, 부모님께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악법을 지적하신 것으로써 이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을 폐하는 사악한 장치였다. 하나님의 계명들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울타리 법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계명들의 본질을 훼손하거나 보통사람들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었던 것이다.
손 씻기 의식
첫째, 음식을 먹기 전에
‘하모찌’(Hamotzi)라 불리는 베라카(복 받으시옵소서. 주 우리의 하나님, 우주의 주재시여, 당신은 지상에서 빵을 생산하시나이다.)를
낭송하고, 양 손에 물 붓기를 한다.
둘째, 흘러나오는 수돗물에 손을 갖다놓거나 물통에 손을 넣거나 할 수 없다. 그래서 물을 담기에 적합하고, 바닥에 세울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물그릇이 필요하다. 물그릇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의 손목에서부터 손등, 손바닥, 손가락, 손톱, 손톱사이에까지 물이 닿도록 한 번에 붓는다. 보통은 물을 오른손에 먼저 붓는다. 손에 물이 닿는 것을 방해할 만한 것들은, 깁스처럼 부득이한 것이 아닌 한, 모두 미리 제거해야한다.
셋째, 양손에 물을 적신 후에 양손을 비빈다. 그리고 두 손을 높이 쳐들고서 물기가 마르기 전에 베라카(복 받으시옵소서. 오, 주님, 우리의 하나님, 우주의 왕이시여, 당신의 계명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고, 손 씻는 것에 대해서 저희에게 명령하셨습니다.)를 낭송한다. 보통은 베라카 낭송 후에 한 번 더 전과 동일한 방법으로 각각의 손에 물을 붓는다. 그러고 나서 양손을 말려야 하는데, 그 무엇도 손에 닿아서는 안 된다. 만일 손이 마르기 전이나 한 손에 물을 부은 후에 다른 손이나 다른 사람의 손에 접촉되면, 부정하게 된 것으로 보고 손을 말린 후에 씻기 과정을 다시 해야 한다.
넷째, 물그릇을 구할 수 없는 특수한 경우에는 흐르는 물이나 물통 혹은 두터운 눈 속에 두 손을 손목까지 담글 수 있다. 펌프질을 해야 할 경우, 한 손이 땅에 있어야한다. 만일 손 씻을 물에 손이나 손가락이 닿았다면, 그 물로는 손 씻기를 할 수 없다.
다섯째, 부득이한 경우가 아닌 한, 손 씻기 전에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단체여행중이어서 동행과 떨어질 수 없는 상황이면, 장갑을 끼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여섯째, 손 씻기를 마치고 식사 전이나 식사중이라도 손으로 신체의 일부를 만지거나 액체에 닿으면 안 된다. 또 식사 중에 화장실을 다녀왔거나 액체에 담갔던 음식과 액체를 부은 음식을 먹는다면, 손에 닿지 않았더라도, 베라카 낭송을 뺀 물 붓기를 다시 해야 한다. 증류주를 뺀, 물로 형성된 위스키 같은 물질은 손 씻기를 해야 마실 수 있다.
일곱째, 손 씻기 관련 베라코트는 그 역사가 2천년이나 된다. 손 씻기 혹은 물 붓기는 영적 청결의 회복을 상징한다. 이 의식은 2천 년 전 제사장이 매일의 의식을 시작하기 전에 손을 씻도록 한 성전예배와 관련이 있다. 제사장이 손을 씻는 것은 성별의 행위였다. 유대인들은 제사장의 행위를 본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 대한 존경심에서 손을 씻는다고 주장한다.
손 씻기 의식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
이토록 하나님께 깊은 존경심을 표하고, 손을 씻어 성별되기를 바라는
유대인들을 예수님은 6절에서 “외식하는 자”라고 하셨고, 8절에서는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고 하셨으며, 9절에서는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셨다. 무엇 때문이었는가?
첫째, 예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셨고, 늘 본질문제에 접근하셨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외적인 허례허식에 매달렸고, 자만과 우월감에 차서 이방인들과 접촉을 꺼렸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죄인 취급하였다. 유대인들은 겉껍데기 사슬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현실을 눈이 있어도 직시하지 못했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으며, 머리가 있어도 깨닫지 못했고, 가슴이 있어도 느끼지 못하였다.
둘째, 손 씻기는 위생문제이지 성결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유대인들의 손 씻기는 손에 물을 붓는 것이었지 더러움을 씻는 게 아니었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손 씻기는 위생문제와 상관이 없는 상징적인 의식에 불과하였다.
셋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육신문제이지, 영적문제가 아니었다. 유대인들의 손 씻기는 영적 청결회복을 상징하는 것이었지, 실제로 영적 청결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을 영적으로 더럽게 하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다”(21-22절)고 하셨다. 정작 씻어야 할 것은 마음이지 손이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세오경에 기록된 율법이외에도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로써 주신 구전(口傳)율법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유대교에서는 성경의 율법은 원리만을 가르치기 때문에 세세하고 복잡한 현실 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보다 상세한 규범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바벨론 유배이후부터 유명한 유대 랍비들이 고대의 전승(傳承) 자료들을 중심으로 하여 세세한 생활 규범들을 정비하여 집성(集成)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바로 장로들의 전통이라 불린 미쉬나였다.
유대인들의 문제점은 전통을 하나님의 계명과 동일한 수준에 놓고, 법규를 지나치게 상세히 규정해 놓음으로써 계명의 목적과 정신에서 멀어졌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justice)와 인(mercy)과 신(faithfulness)은 버렸으며, 신앙심의 자만과 우월감에 빠진데 있었다. 손에 물을 붓는다고 위생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청결해지는 것이 아니며, 더더욱 영혼이 성결해지는 것도 아니다. 정작 우리가 힘써야할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의 청결과 영혼의 성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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