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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24: 희망이신 예수님의 신분 공개(6)(막 7: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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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4,984 2016.03.20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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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24: 희망이신 예수님의 신분 공개(6)(막 7:24-37)

이방인의 구원문제

journey_syrophoenicia.jpg 마가복음 4장 35절부터 6장 44절에 광풍진압, 야이로의 딸과 혈루증 여인 치유,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소개된 직후 6장 45절부터 8장 10절에 물위를 걸으심,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 치유,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소개되었다. 이 기적들은 앞서 유대인 지역에서 유대인들을 위해서 베풀어진 기적들의 짝들로써 이방인 지역에서 이방인들을 위해서 베풀어진 것들이다.

예수님은 게네사렛을 떠나서 64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지금의 레바논인 페니키아로 이동하셨다.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셨으나 숨길 수 없게 되었다”(24절). 예수님의 명성과 소문이 두로와 시돈 지방에까지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수로보니게의 이방인 여성이 예수님께 나와서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였다”(26절). “수로보니게”(Syrophoenicia)에서 “수로”는 시리아(Syria), “보니게”는 페니키아(Phoenicia)란 뜻이다.

예수님의 ‘자녀와 개’ 비유는 아버지의 맏아들이 동생 탕자에게 보인 태도에서 보듯이 유대인들이 이방인에 대해 갖는 잘못된 태도를 꼬집으신 것이다. “개”란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과 이방인들을 낮춰 부른 욕이었다. 이 욕은 유대인들의 배타적 선민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그러므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다”(27절)는 말씀에서 예수님이 이방인을 개로 표현하신 것은 예수님 당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첫째는 유대인들의 편견과 잘못된 생각을 고치고, 둘째는 이 이방인 여인에게 자비를 입을만한 믿음이 있는가를 확인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는다”(28절)는 여인의 답변은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자비를 입을만한 믿음과 절실함이 있다는 표시였다. 그리고 여인의 어린 딸이 귀신에 들린 것은 이방인들의 영적인 상태를 말한 것일 수 있고,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여인이 어린 딸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고, 그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딸을 귀신한테서 놓임 받게 하려는 절실함과 주님의 자비를 입을만한 믿음이 있었다는 점이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4장에서 희년의 축복을 맞이할 자들은 유대인들이 아니고, 수로보니게 지역의 사렙다 과부나 나아만처럼 믿음을 지닌 이방인들일 수 있다고 강조하신 바가 있다.

귀가 열린다는 것

Dog_Crumbs.jpg 마가복음에는 다른 복음서들에 없는 두 개의 신체장애자(남성) 치유 기적이 있다. 한 사람은 귀먹고 어눌한 벙어리였고(7:31-37절), 또 한 사람은 맹인(8:22-26)이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예수님을 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벳새다의 맹인을 고치시기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중하셨다. “너희가...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치 못하느냐?...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8:17-21). 이 꾸중은 제자들이 정말로 무지해서였기보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교훈으로써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신앙 고백할 수 없는 사람은 귀먹고 어눌한 벙어리와 같고, 앞 못 보는 장님과 같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반면에 이 두 개의 기적이 있고난 후에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게 된다. 베드로가 그렇게 분명하게 말하게 된 것은 영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렸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누구인가? 하나님의 자비를 입고 구원에로 부름을 받기 전에는 영적으로 귀먹고 어눌했던 자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이 분명하게 된 사람들이다. 열림(에바다)의 복을 받아 천국의 비밀을 깨닫게 된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누구인가? 하나님의 자비를 입고 구원에로 부름을 받기 전에는 영적으로 벳새다의 소경처럼 앞을 못 보았던 자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된 사람들이다. 열림(에바다)의 복을 받아 천국의 비밀과 그리스도의 신비와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게 된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누구인가? 마음이 둔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했던 자들이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믿고 회개하고 침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분의 나라의 시민이 된 자들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과 보물을 발견하고 그것을 소유하려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의 의미는 귀가 열리는 것이고, 혀가 풀리는 것이며, 눈이 열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감춰진, 복음에 감춰진, 하나님의 나라에 감춰진 무한한 가치와 보물에 대해서 듣고 보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혀가 풀린다는 것

deaf_mute_studylight-org.jpg 예수님께서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신 기적은 ‘에바다’란 아람어를 기록하고 있는 유명한 기적이다. 예수님께서 손가락을 그 사람의 양 귀에 꽂아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에바다”(Ephphatha!) 곧 “열리라”(Be opened!)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사람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장 풀려 말이 분명해졌다. 여기서 핵심 구절은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였다.”이다. ‘열리고,’ ‘풀리고,’ ‘말이 분명했다’이다.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고, 말이 분명해지는 치유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해결 받아야할 숙제이다.

귀먹고 어눌한 사람의 귀가 열린다는 것의 의미는 말이 분명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말이 분명하게 된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해서, 천국복음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희미하게 듣고 보고 말하던 것을 명확하게 듣고 밝히 보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말이 분명하게 될 때, 8장 29절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듯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분의 제자가 되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일과 복음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귀먹고 어눌한 사람의 혀가 풀린 것은 상황의 반전을 뜻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하나님의 지혜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과 같다. 어둠이 빛이 되고, 혼돈이 질서가 되며, 죽음이 생명이 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이 캄캄하고, 귀가 막히고, 목이 메고, 가슴이 답답할 때, 귀를 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한다. 눈을 뜨고 주님을 바라봐야한다. 모세는 나이 들어 모래바람 휘몰아치는 광야에서 쓸쓸히 양을 치던 사람이었다. 그의 삶에 상황반전이 일어난 것은 그가 양을 치던 호렙산에서 눈이 열려 하나님의 떨기나무 불꽃을 보고, 귀가 열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서 비롯되었다. 반면에 유다왕국이 세 차례나 바벨론제국의 침략을 받아 재산을 몰수당하고, 성전이 약탈당하며, 백성이 유배당하는 비극을 맞게 된 것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들려주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틀어막고 듣지 않았고 눈이 멀어 국제정치상황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매국노로 찍혀 감당키 어려운 고초를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전했고, 민족의 살길과 나아갈 길을 선포하였다. 매 맞고 갇히고 매국노로 낙인찍힌 고독하고 고통스런 삶이었지만, 하나님을 향해서 귀를 열었고, 민족을 향해서 입을 열었던 예언자였다. 이 같은 점에서 모세, 엘리야, 엘리사 및 예레미야는 예수님의 모형과 그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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