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끈28: 희망이신 예수님의 수난예고(1)(막 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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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28: 희망이신 예수님의 수난예고(1)(막 9:1-13) 변화산 사건의 의미
첫 오순절사건이란 히브리인들이 유월절 안식일 다음날 이집트를 탈출하여 50일째 되는 날에 시내산 기슭에서 하나님과 선민언약식을 치룬 후 토라(율법 혹은 계명)를 수여받은 날로써 구약교회(유대교)가 시작된 날의 사건을 말한다. 그리고 이 날은 성령님께서 강림하시고 신약교회가 시작된 주후 30년 5월 28일 오순절 날의 사건의 모형과 그림자였다. “엿새”와 “모세”라는 말은 마가복음 9장을 출애굽기 24장에 연결시키는 단어들이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다”는 말씀은 출애굽기 24장에서 모세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를 데리고 시내산에서 엿새 동안 구름에 쌓여 얼굴에는 광채가 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건(출 24:1, 9, 15-16)을 상기시킨다. 또 마가복음 9장 1절에서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다”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이 출애굽기 24장에서 이뤄진 하나님의 나라 건국에 관련된 사건임을 암시한다. 출애굽기 24장은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한지 50일째 되는 오순절 날 선민언약식을 치른 후 토라(율법 또는 계명)를 받아 구약교회인 문자적 이스라엘을 탄생시킨 날에 대한 기록이다. 따라서 마가복음 9장 1-13절은 곧 있을 오순절 날 성령님의 권능으로 신약교회인 영적 이스라엘이 세워질 것을 암시한 말씀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이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다”고 하신 말씀은 우주종말이나 재림의 때를 언급하신 말씀이 아니라, 신약성서교회시대 곧 희망의 성취를 상징하는 종말시대의 출범을 언급하신 말씀이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50일째 되는 주후 30년 5월 28일 성령님의 권능으로 사도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것이 바로 신약교회인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이 날로부터 모형과 그림자였던 구약교회시대가 끝나고 원형과 실체인 신약교회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율법시대가 끝나고 복음시대가 시작되었다. 모형과 그림자로써의 구약교회
계시록 11장 4절에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란 구절이 있는데, 모세와 엘리야를 칭한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에 땅과 율법을 갖게 해주었고, 엘리야는 빼앗긴 그것들을 제자리에 되찾아 놓은 인물이다. 또 이 두 사람은 하나님사역의 지속성과 관련 있다. 예를 들면, 모세와 여호수아, 엘리야와 엘리사, 예수님과 사도들로 이어진 세상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일의 연속성과 관련 있다.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교회인 문자적 이스라엘의 기초자들이고, 예수님은 신약교회인 영적 이스라엘의 기초자이시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엘리사는 문자적 이스라엘의 건축자들이고, 사도들은 영적 이스라엘의 건축자들이다. 가나안땅을 희망한 최초의 인물이 아브라함이고, 그 희망을 문자적으로 성취시킨 인물이 모세인데, 모세는 떠돌이노예들이었던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요단 강변까지 인도한 첫 번째 그리스도였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서 가나안땅의 희망이 현실이 되도록 떠돌이노예들인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으로 쳐들어가 그 땅을 정복하여 떠돌이노예들에게 안식처를 마련해준 용사였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합력하여 히브리 열두 부족에게 빵과 명예와 주권을 갖게 해준 것이다. 여기서 모세는 예수님의 모형이고, 여호수아와 히브리인들은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의 모형이며, 여호수아서는 사도행전의 모형이다. 생명의 양식과 하늘 가나안땅의 시민권과 하나님가족의 식구가 되게 하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북왕국 이스라엘에 야훼신앙이 붕괴되고 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인물이다. 북왕국 이스라엘에 주전 885년에 왕이 된 오므리가 있었는데, 이스라엘을 국제사회에 알린 강력한 왕이었지만, 아들 아합(874-853B.C.)을 옛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동맹을 맺게 함으로써 북왕국 이스라엘을 위기에 빠뜨린 인물이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숭배하는 교활한 여인이었다. 아합은 이세벨의 사특함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 결과 북왕국 이스라엘 전역에서 야훼신앙이 폐지되고 바알 신앙이 강제되었다. 이 위기의 때에 엘리야가 나타나 영웅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렇다고 엘리야가 상황을 깔끔히 종결시킨 것은 아니다. 모세의 역할이 제한적이었던 것처럼 엘리야의 역할도 제한적이어서 여호수아처럼 마무리작업은 엘리사가 처리하였다. 엘리사는 예후라는 장군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예후는 이세벨의 후손들과 바알 사제들을 처단하여 이스라엘에는 단 한명의 바알 사제가 남지 않게 하였다. 원형과 실체로써의 신약교회
이는 예수님이 세우실 하나님의 나라가 유대인들이 주전 586년 이후 오랜 기다림으로 희망해왔던 올람하바(Olam Ha-Ba) 곧 ‘옛 언약’인 율법과 짐승의 피로써 드려지는 성전예배가 예루살렘 시온에 재건되는 유대민족을 위한 ‘다가올 세상’이 아닌, ‘새 언약’인 복음과 그리스도의 피로써 드려지는 영적예배로 온 열방이 민족성별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 없이 누구나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믿어 구원받으며,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고 하나님 가족의 식구가 되는 ‘다가올 더 좋은 세상’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복음인 새 언약을 히브리서 저자는 율법인 옛 언약보다 “더 좋은 언약”이라고 하였고, 예수님이 바로 “더 좋은 언약의 보증”(히 7:22) 또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히 8:6)라고 하였다. 새 언약이 옛 언약보다 “더 좋은 언약”인 것은 옛 언약인 율법에서처럼 짐승의 피로 세운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새 언약 곧 복음이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히브리인들이 시내산에서 황소의 피 뿌림으로써 언약을 맺었던 것과는 달리 침례를 통해서 성삼위 하나님과 언약식을 맺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인 새 언약 선민이 되었으므로, 이 언약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 매주일 함께 모여 주의 만찬에 참여하고 경배와 찬양으로 구원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유대인들은 짐승의 피로써 언약을 맺고, 그 언약의 내용인 율법을 엄수함으로써 선민의식을 공고히 하며, 하나님을 조상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으로 섬기는데, 하물며 “더 좋은 언약의 중보”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언약을 맺고, 그 언약의 내용인 신약성서복음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로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의식과 하나님 가족의 공동체의식을 공고히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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