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끈30: 희망이신 예수님의 수난예고(3)(막 9: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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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30: 희망이신 예수님의 수난예고(3)(막 9:30-37)
마가복음 후반부의 기록목적(2)
마가복음 9장부터는 후반부로써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인류의 속죄와 구원을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받으실 수난과 부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8장까지의 전반부가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님이 갈릴리지역에서 주옥같은 복음을 선포하시고 오실 자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기 위해서 행하신 많은 능력과 표적에 초점이 맞춰진 것과 대조를
이룬다.
마가복음의 후반부가 변화산 체험으로 시작한 것은 모세가 많은 고난 후에 구약교회인 문자적 이스라엘을 탄생시킨 후 죽은 몸으로 승천한 것과 엘리야가 많은 고난 후에 구약교회인 문자적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출시킨 후 산 몸으로 승천한 사실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많은 고난 후 신약교회인 영적 이스라엘을 출범시킬 모퉁이돌이 되신 후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것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모형과 그림자였던 구약교회시대를 끝내고 원형과 실체인 신약교회시대를 출범시키셨고, 율법시대를 끝내고 복음시대를 출범시키셨다. 이 점 때문에 전반부에 예수님이 “보다 강한 자”란 침례요한의 설교(1:7-8), “너는 내 아들”이란 하늘의 음성(1:11), 오실 자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는 예수님이 행한 많은 표적과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8:29)이 실렸고, 후반부에 예수님이 받으실 “많은 고난”에 대한 예고(8:31), “너는 내 아들”이란 하늘의 음성(9:7), 거듭된 수난예고(9:31, 10:33-34)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백부장의 신앙고백(15:39)이 실렸다.
마가복음의 전반부는 예수님의 신분을 공개하는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예수님의 첫 번째 수난예고에서 절정에 달하였다. 이것은 모세의 인도로 첫 번 유월절 날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를 건넌 후 시내광야에서 첫 번 오순절 날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고 언약의 내용으로 율법을 받아 출범한 문자적 이스라엘에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이 희망하는 명예와 경제와 주권을 되찾아 줄자가 아니라, 주후 30년 예루살렘에서 유월절 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부활승천하시고, 오순절 날 영적 이스라엘을 출범시키실 인류의 대속자이심을 암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고, 자기 죄를 회개하고, 침례식(홍해도하)을 통해서 받은 새 언약을 따라 살기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는 자들에게 죄 사함을 주시고, 그분이 세우실 영적 이스라엘의 시민권자가 되게 하시며, 하나님 가족이 되게 하실 분이심을 암시한 것이다.
자기 십자가
마가복음 전반부의 마지막 장인 8장에서 벳새다 맹인이
고침을 받고 만물을 밝히 보게 된 직후에 비로소 제자들의 대표자격인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신앙을 고백하게 된다. 이 점에서 벳새다 맹인의
눈이 뜨인 것은 제자들의 무지의 눈이 뜨인 것과 같다. 이에 예수님은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시고,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셨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죽음의 때까지는 살아남아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셔야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좀 전에 신앙을 고백했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그런 일이 결코 있어서도 안 되고 있지도 않을 것이라며
항변하였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강하게 꾸짖으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그리고는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가르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여기서 우리는 제자들에게 아직도 열리지 아니한 또 다른 무지의 눈이 있다는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럴 가능성이 큰 것은 세 번에 걸친 수난예고가 모두 있고난 다음에 여리고성의 또 다른 맹인 바디매오가 고침을 받고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10:52)고 한 말씀 때문이다. 또 한 번의 눈이 열려야 비로소 수난을 예고하신 예수님의 뜻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 목숨을 버리는 참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경 바디매오의 눈까지 열린 후에야 비로소 예수님과 그 일행은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에 입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세 차례에 걸친 수난예고는 예수님께서 받으실 수난에 대한 예고였을 뿐 아니라,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이 겪게 될 많은 고난에 대한 예고였다.
수난예고의 목적
마가복음 9장 31절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두 번째
수난예고이다. 8장 31절에서 이미 한 차례 예고가 있었고, 10장 33-34절에 세 번째 예고가 나온다.
예수님의 수난예고에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과 관계가 있다. 역설적이게도 예수님이 오실 자 그리스도이시라는 신분노출은 곧바로 그분의 죽음문제로 이어진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한 가지는 민중이 기대하고 희망했던 그리스도와 다른 형태의 그리스도이셨기 때문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리스도의 출현을 달갑게 생각할리 없는 가진 자들의 음모 때문이었다. 8장 30절에서와 같이 9장 30절에서도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신” 것은 죽음의 때인 유월절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을 기반으로 세우실 나라의 제자직에 관계가 있다. 그리스도의 모형과 그림자였던 모세와 그의 제자 여호수아가 많은 고난을 겪은 후에 문자적 이스라엘을 출범시킬 수 있었고, 엘리야와 그의 제자 엘리사가 많은 고난을 겪은 후에 북왕국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출할 수 있었으며, 그리스도의 실체와 원형이셨던 예수님이 많은 고난을 겪은 후에 영적 이스라엘을 출범시킬 수 있었듯이, 예수님은 당신의 나라가 제자들이 겪을 많은 고난의 결실로 번영하게 될 것을 아셨다. 비록 당장은 당신의 제자들이 수난예고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장차 그들은 당신의 가르침대로 참 제자가 될 것을 아셨다. 따라서 예수님의 세 차례에 걸친 수난예고는 제자들의 세 차례에 걸친 무지한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들이 장차 실천하게 될 세 차례에 걸친 제자직의 말씀으로 이어지게 된다.
첫 번째 수난예고 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난을 말리고 그 때문에 사단이란 소리까지 들었다. 이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는데, 과연 제자들은 그렇게 하였다. 두 번째 수난예고 때 제자들은 길에서 누가 서열이 더 높은가를 놓고 서로 다투었다. 이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는데, 과연 그들은 그렇게 하였다. 세 번째 수난예고를 듣고서도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하늘 영광의 자리를 요구하였다. 이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크게 되려고 하면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과연 그들은 남을 섬기는 자들이 되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나라는 출범한 지 362년 만에 전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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