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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31: 희망이신 예수님의 수난예고(4)(막 9: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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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338 2016.07.0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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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31: 희망이신 예수님의 수난예고(4)(막 9:36-50)

제자의 길: 첫 번째

Audrey_Hepburn.jpg 마가복음 9장 37절,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다”는 말씀은 35절,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35절은 두 번째 수난예고에 따른 제자의 길에 관한 말씀인데, 37절은 그 제자의 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설명한 첫 번째 것이다. 뭇 사람의 끝이 되는 것이 무엇이고, 뭇 사람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한 첫 번째 말씀이다. 그것은 “어린 아이”와 같이 약하고 소외된 자를 예수님 이름으로 섬기는 것이다.

레오 톨스토이(1828-1910)의 마음속에 세 가지 물음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사람은 무엇으로 살까? 그리고 톨스토이는 운 좋게도 이들 물음에 해답을 찾았다. 톨스토이는 사람의 마음속에 사랑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모질고 거칠며 욱하는 사람의 마음에조차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두 번째로 톨스토이는 사람에게 자신의 운명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고, 마지막으로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면에 톨스토이는 사람의 가장 큰 실수가 자신을 향하고 자기를 바라보고 사는 것임을 알았다. 불행히도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런 능력을 주시지 않은 이유는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염려하며 살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만을 바라보고, 자기 가족, 자기 부족, 자기 민족만을 바라보는 탐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기보다는 죽이는 일을 한다고 하였다.

톨스토이가 주목하여 본 복음서구절은 다름 아닌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다.” 도로시 데이나 테레사가 깨달은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 곧 예수님께 행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행하는 것이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35-37, 40).

제자의 길: 두 번째

nazarene_stonemill.jpg 마가복음 9장 38-40절,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는 말씀은 35절,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35절은 두 번째 수난예고에 따른 제자의 길에 관한 말씀인데, 38-40절은 그 제자의 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설명한 두 번째 것이다. 뭇 사람의 끝이 되는 것이 무엇이고, 뭇 사람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한 두 번째 말씀이다. 그것은 예수님 이름으로 이뤄지는 사역들을 배척하지 않고 포용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은 하나님의 독점과 배타적 선민사상이었다. 한분밖에 없는 하나님을 독점하였으니, 타민족에게 하나님이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조상(민족)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계약의 하나님으로 믿고 계약의 내용으로 율법(토라)을 지킴으로써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높은 영성에 도달하였다. 반면에 배타적 선민사상과 장자의식으로 인하여 타민족을 이방인 취급, 죄인 취급, 탕자 취급하여 멸시하고 교제를 멀리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대인들은 보편적으로 이방인들을 멸시와 비방의 대상으로 삼았고, 섬김과 선교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였다. 유대인들은 세계에서 첫째가 되려는 욕심을 품었으나 실제로는 과거 수천 년 동안 이방인들의 지배아래서 처참한 삶을 영위하였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도 비슷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예수님 이름으로 세워진 여러 공동체들 중에서 첫째가 되려는 욕심, 신앙인들을 독점하려는 교파주의 때문에, 자기 교파에 소속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예수님의 공동체들을 이단으로 몰아세우고 배척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앞서가는 집단이라는 이유로 뒤처진 집단을 배척하고, 덩치 큰 집단이라는 이유로 작은 집단을 배척하는 것은 뭇 사람의 첫째가 되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비뚤어진 행위이다. 진실로 “첫째가 되고자 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진실한 제자가 되고자 하면, 예수님의 권면대로,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독점의식과 배타적 선민주의는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며 사람을 살리는 일이 아니라 죽이는 일이다. 반면에 뭇 사람의 끝이 되어 뭇 사람을 섬기는 일은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며 사람을 살리는 복음의 일이요 하나님의 일이다.

제자의 길: 세 번째

gehennom.jpg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는 말씀은 35절,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세 번째 것이다. 35절은 두 번째 수난예고에 따른 제자의 길에 관한 말씀인데, 41절은 그 제자의 길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에게, 비록 그가 지극히 작은 자일지라도,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물 한 그릇이라도” 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반면에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지극히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시키기보다는 연자 맷돌에 묶인 채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하셨다. 또 예수님은 죄지은 두 손, 두 발,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고 하셨다. 지옥은 불이 꺼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벌레 한 마리도 죽지 않는 뜨거운 맛을 보는 곳이라고 하셨다(42-48절).

참고로 유대교에는 교리가 따로 없다. 그 이유는 613개의 계명과 수많은 규례(구전)의 실천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약성서에는 천국과 지옥이란 개념이 없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다가올 세상’(Olam Ha-Ba)이란 오실 자 ‘모쉬아크’가 장차 세울 문자적 이스라엘국가를 말한다. 구약성서에 자주 쓰인 ‘스올’(sheol)은 죽음의 세계 곧 무덤을 의미한다. 지옥이란 개념은 헬라시대에 나온 것으로써 그리스인들은 죽음의 세계인 ‘하데스’가 여러 개의 강들로 통하는 땅속 깊은 곳에 있다고 믿었다. 이곳 하데스에 낙원격인 ‘엘뤼시온’과 지옥격인 ‘타르타로스’가 있다고 믿었다.

반면에 예수님이 언급하신 지옥은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힌놈의 골짜기(게헨놈, 게힌놈)를 말한다. 이곳에 가룟 유다가 목맨 ‘피밭’이 있었다. 힌놈의 골짜기에서는 한때 바알에게 분향하던 곳이었고, 몰렉에게 어린자녀들을 산 채로 불살라 제물로 바치던 곳이었다(대하 28:1-4, 렘 7:31-33). 그러나 요시야 왕의 개혁(왕하 23:10)으로 이곳은 이방인의 무덤과 쓰레기 소각장으로 쓰였다. 이후 힌놈의 골짜기는 불이 꺼지지 않는 지옥의 상징이 되었다.

결론으로 예수님은 앞서 세 차례 언급한 제자의 길, 곧 뭇 사람을 섬기는 일을 49-50절에서 소금에 비교하였다. 소금은 음식에 맛을 내고 부패를 막는다. 따라서 소금은 섬김과 살림의 상징이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섬김과 살림의 일을 하지 않고 으뜸이 되려고만 하고 죽임의 일만 한다면, 그 그리스도인은 맛을 상실한 소금과 같다.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인이 뭇 사람들 속에서 소금처럼 맛을 내고 부패를 막는 섬김과 살림의 일을 한다면, 서로 화목하는 살기 좋은 천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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