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끈36: 예수님의 희망성취사역(3)(막 11: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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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36: 예수님의 희망성취사역(3)(막 11:15-33)
희망성취의 방향
인간이 숙명이나 다름없는 오랜 외로움을 극복하고 희망을 성취하는 길은 ‘시온에로의 오름’에 있다는 점을
복음서는 보여준다.
‘시온에로의 오름’(aliyah to Zion)은 모든 유대인들의 집단무의식이자 오랜 희망(Ha-Tikvah)이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밖에서의 삶을 비정상적 상태로 간주하면서 그러한 삶을 유배생활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언젠가는 예루살렘의 땅에로 돌아가게 될 것이란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희망(Ha-Tikvah)을 국가(國歌)로 부른다. “우리의 희망은 아직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천년을 간직한 희망은 우리 자신의 땅에서 자유민이 되는 것, 시온과 예루살렘의 땅에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로의 오름을 ‘알리야’(aliyah)라고 부른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오름과 예수님과 그리스도인의 오름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모범적으로 보여준 것이 예수님의 예루살렘으로의 오름이었다. 예수님은 명예와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성공한 장소인 갈릴리지역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 고문과 십자가와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오르셨다. 거대한 생명의 호수를 끼고 있는 풍요로운 갈릴리지역을 버리고 더욱 거대한 죽음의 호수를 끼고 있는 유대광야지역을 향해서 오르셨다. 요단강변과 오아시스 여리고를 버리고, 돌산 예루살렘을 향해서 거칠고 힘든 오르막길을 택하셨다. 그러나 진짜 매서운 오름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될 것이었다. 예수님은 수일 후면 날카로운 채찍으로 맞아 망신창이가 되어버린 육신으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을 향해서 오르실 것이고, 못 박히신 후 십자가에 매달리실 것이며, 종국에는 하늘 예루살렘에 오르시어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오르실 것이다. 예수님의 이 오름의 행진은 모두가 인간이 숙명이나 다름없는 오랜 외로움을 달래고 희망을 성취하기 위한 사역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오름의 방향이 깨지고 낡아지고 무너지질 지상의 것, 일시적인 것, 육신의 것이 아니고, 깨지지 않고 낡아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하늘의 것, 영원한 것, 영적인 것이라고 하였고, 히브리서 저자도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히 12:22) 곧 “흔들리지 않는 나라”(히 12:28)라고 하였다.
희망성취를 위한 준비사역(1)
주후 30년 3월 31일 금요일 오후에
베다니와 벳바게에 도착하신 예수님은 안식일 후 첫날인 일요일에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두루 살펴보신 후에 희망성취를 위한
예비사역으로써 몇 가지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셨다.
그 첫 번째 일이 주후 30년 4월 3일 월요일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말라죽게 하신 것이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구약(율법)에 기초한 유대교를 상징한 것이었고, 그것은 이제 죽고, 그 대신에 열매 많은 무화과나무로 교체되어야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열매 많은 무화과나무는 신약(복음)에 기초한 그리스도의 교회를 말한다. 그리고 그 두 번째 일이 같은 날인 월요일에 예루살렘 성전의 이방인의 뜰에서 이뤄지고 있던 부정한 상행위들을 몰아내고 이방인의 뜰을 기도하는 장소로 돌려놓으신 것이었다. 유대인들의 성전에서의 기도는 미문 안쪽 여성의 뜰이나 이스라엘의 뜰에서 ‘베라코트’(berakhot)라 불리는 기도문들을 낭송하는 것이었다. 또 제사장의 뜰에서 바쳐지는 희생제사도 짐승의 피에 의한 것이었다. 이것들은 머지않아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신령과 진실로 드리는 그리스도의 교회 예배로 교체되어야할 것들이었다.
예수님이 세우실 하나님의 나라가 유대인들이 주전 586년 이후 오랜 기다림으로 희망해왔던 올람하바(Olam Ha-Ba) 곧 ‘옛 언약’인 율법과 짐승의 피로써 드려지는 성전예배가 예루살렘 시온에 재건되는 유대민족을 위한 ‘다가올 세상’이 아닌, ‘새 언약’인 복음과 그리스도의 피로써 드려지는 영적예배로 온 열방이 민족성별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 없이 누구나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믿어 구원받으며,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고 하나님 가족의 식구가 되는 ‘다가올 더 좋은 세상’을 의미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이 이방인의 뜰에서 이뤄지고 있던 부정한 상행위들을 몰아내고 이방인의 뜰을 기도하는 장소로 돌려놓으신 것은 ‘다가올 더 좋은 세상’의 상속자가 되는 일에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차별이 없다는 것을 시위하신 행위였다.
희망성취를 위한 준비사역(2)
4월 4일 화요일 아침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저주한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은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22-26절)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월요일에 이어 화요일에도 기도에 대해서 언급하신 것은 율법인 옛 언약을 상징하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어야하는 이유처럼, 율법인 옛 언약의 또 다른 상징인 “이 산”이 바다로 사라지고, 복음인 새 언약이 죽거나 사라진 자리를 새것으로 채워야했기 때문일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새것을 “더 좋은 언약”이라고 하였고, 예수님을 “더 좋은 언약의 보증”(히 7:22) 또는 “더 좋은 언약의 중보”(히 8:6)라고 하였다. 누가는 예수님이 더 좋은 언약의 보증과 증보가 되시기 위해서 늘 기도하셨음을 피력하였다. 따라서 누가는 예수님이 시시때때로 기도하셨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기도하셨으며, 기도로 시작하셨고, 기도로 생애를 마치셨음을 강조하였다.
예수님께서 희망성취를 위한 예비사역으로 보여주신 세 번째 일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의 권위를 꺾은 것이었다. 진정한 권위는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며 사람을 살리는 일에서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경쟁자로 보고 죽여 없앨 계략을 꾸몄다(18절). 이처럼 그들은 매사에 죽임을 일삼고, 계명의 본질보다는 겉껍데기에 치중했기 때문에 잎사귀만 풍성한 무화과나무처럼 열매는 없고 위선만 가득하였다. 그들은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며 사람을 살리기보다는 전통에 노예가 되어 사람을 억압하고 죽이는 일을 하였다. 배타적 선민사상과 독점의식에 빠져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며 사람을 살리는 일에 소홀하였다. 반면에 예수님은 인류의 희망은 뭇 사람의 끝이 되어 뭇 사람을 섬기는 일에서 성취되며, 복음의 일과 하나님의 일에서 성취된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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