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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38: 예수님의 희망성취사역(5)(막 12: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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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477 2016.07.2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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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38: 예수님의 희망성취사역(5)(막 12:18-27)

희망성취를 위한 준비사역(6)

levirate_yibbum.jpg 마가복음 12장 18-27절에 실린 부활논쟁은 예수님께서 희망성취를 위한 예비사역으로 보여주신 여섯 번째 일로써 부활과 천국에 관한 것이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반박하기 위해서 모세의 수혼법을 증거로 제시하였다.

유대교는 유대민족의 생사가 걸린 613개의 계명과 수많은 규례(구전)를 지키는 민족종교이지, 교리를 믿는 종교가 아니다. 구약성서에서 에덴은 지상낙원이고, ‘스올’(sheol)은 무덤에 불과하다. 구약은 지상 가나안땅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에게 ‘다가올 세상’(Olam Ha-Ba)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가 세울 지상의 국가이다. 유대인에게 지복(至福)은 지상 가나안땅에서 누릴 안식이다. 유대인들이 영적세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구약성서기록이 끝나고 100년쯤 더 지난 헬레니즘시대 때부터였다. 반면에 신약은 하늘 가나안땅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내세는 천국(낙원)과 새 하늘과 새 땅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지복은 부활 후 천국 또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릴 영원한 삶을 뜻한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성전 멸망과 함께 사라진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을 정경으로 취하면서 정결의식과 제사의식을 강조한 반면, 모세오경에 없다는 이유로 영적 세계를 믿지 않았다. 반면에 유대교의 기틀을 마련한 바리새인들은 613개의 계명이 담긴 모세오경 말고도 구전((Mishniot)과 울타리법들을 정경과 동일한 권위로 취급하였고, 죽은 자들의 부활도 믿었다. 그렇다고 유대교에 영적세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유대교에는 13개의 믿음의 원리가 유일한 교리이다. 이것들은 영이신 하나님, 모세와 토라의 권위, 그리스도의 도래, 이스라엘과 성전회복에 관한 모세와 예언자들의 예언,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는 것으로 압축된다. 게다가 이들 믿음의 원리는 모두 하나님과 가나안땅에 관련된 구약의 문자적 성취를 믿으라는 내용이다.

예수님은 땅에 목숨을 거는 유대인들에게 깨지고 낡아지고 무너질 천막집 같은 가나안땅에 목숨 걸지 말고, 깨지지 않고 낡아지지 않고 무너지지 아니하는 하늘 가나안땅을 사모하라는 취지로 말씀하셨다. 인간의 오랜 희망은 땅의 것, 물질적인 것, 유한한 것, 일시적인 것으로 성취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부활과 천국의 실재를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는 출애굽기 3장 6절의 말씀으로 입증하셨다. 첫째는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들의 하나님이시고(27절), 둘째는 부활한 몸이 영적이고 신령한 천사의 몸과 같아서 육신과 본능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던 때처럼 결혼이 필요치 않다(25절)고 하셨다.

‘위붐’(yibbum)과 ‘하리짜’(halitza)

halizah_ceremony1.jpg 유대인들이 과부형수나 과부제수와 결혼하는 것을 수혼(嫂婚, Levirate)이라고 부른다. 이 수혼을 유대인들은 ‘위붐’(yibbum)이라고 부르는데 시형제란 뜻이다. 또 수혼의무포기식을 유대인들은 ‘하리짜’(halitza 혹은 chalitzah)라 부른다. ‘위붐’은 자녀가 없는 상태에서 남편이 사망한 경우, 남아 있는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이 과부형수 또는 과부제수와 결혼하여 낳은 맏아들로 하여금 죽은 남편의 이름을 받아 대를 잇게 함으로써 남편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라는 계명이다(신 25:5-6).

‘하리짜’는 수혼이행의무자(goel)가 ‘위붐’을 거부하면, 과부여성이 장로들 앞에서 시형제의 신발을 벗기고 면전에 침을 뱉는 의식이다(신 25:9-10). 유대인공동체에서는 이 ‘하리짜’의식을 위해 가죽신을 만들어 보관하며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준다.

‘위붐’은 시형제에게 수혼을 할지 혹은 말지를 결정할 선택권을 준다. 의무이행을 거부하면 불명예가 주어지고, 의무를 이행하면, 죽은 형제의 재산을 물려받게 된다. ‘위붐’의 목적이 죽은 남편의 대를 잇게 하는 데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편도 자식도 없는 과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말과 룻의 이야기는 ‘위붐’에 관련된 유명한 사례들이다. 또 다말과 룻은 예수님의 조상들을 출산한 여성들로써 마태복음 1장에 실린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올린 유명 인사들이다.

수혼이행의무자는 죽은 형제와 아버지가 같아야한다. 죽은 형제에게 아들이든 딸이든 자녀가 없어야 한다. 의무자(goel)는 형수나 제수의 남편이 죽기 이전에 태어난 형제라야 한다. 의무자나 과부나 모두 자녀를 낳을 수 있는 자라야한다. 죽은 형제가 여러 명의 부인을 두었더라도, 의무자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하고만 결혼할 수 있고, 한 사람하고만 ‘하리짜’의식을 치를 수 있다. 대신에 ‘위붐’이나 ‘하리짜’의식을 치른 후에는 죽은 형제의 다른 부인들도 재혼할 수 있다.

과부는 ‘하리짜’의식을 치르기 전에 다른 남성과 재혼할 수 없다. 만일 과부의 시형제들이 너무 어리면, 그들 가운데 누구든 결혼적령기에 도달할 때까지 수절해야한다. 또 만일 의무자가 행방불명이면, 과부는 그를 찾을 때까지 수절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위붐’은 젊은 과부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법이다.

‘위붐’(yibbum)과 ‘하리짜’(halitza)의 문제점

halizah_ceremony2.jpg 비잔틴시대이후 유대인들은 대체로 수혼보다는 수혼의무포기식을 선택해 왔다. 정통주의 유대인들은 ‘위붐’보다는 ‘하리짜’를 선택하고 있고, 개혁주의와 재건주의 유대인들은 아예 ‘위붐’을 폐지시켜버렸으며, 보수주의 유대인들만 ‘위붐’을 형식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위붐’을 피하고 ‘하리짜’를 선택하는 대신에 시형제의 아들들 가운데 한 아이에게 죽은 형제의 이름을 물려받게 한다.

‘위붐’의 본래 취지는 자식 없는 과부들은 보호하려는데 있었지만, 오히려 여성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어왔다. 과부들은 자신의 재혼을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남자의 결정에 맡겨야한다. 게다가 과부들은 시형제가 결혼적령기에 도달할 때까지 수절해야하므로 가임기를 넘길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시댁이 며느리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데 있다.

2014년 11월 10일자 <예루살렘포스트>지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유대교 대법원이 ‘위붐’ 때문에 13년간 시댁과 힘겨운 싸움을 진행해온 42세의 슬로미트 라비(Shlomit Lavi)라는 여성에게 현재의 동거남과 결혼할 수 있다고 판결함으로써 하급심인 예루살렘의 유대교 법원이 지난 10년간 그녀에게 내린 불합리한 결정을 뒤집었다.

사건의 발단은 결혼생활 1년 6개월 만에 병사한 남편의 아버지가 ‘하리짜’의식의 대가로 며느리에게 20만 세겔(5천9백만 원)을 요구한데 있었다. 시댁에서는 며느리가 아들을 위해 써야할 치료비를 함부로 썼다고 주장하였고, 며느리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하게 항의하였다. 법원이 그들에게 타협을 권했는데도 이를 거부한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세 차례나 가정법원에 고소하였다. 남편과 사별한지 13년이 된 지난 2014년도에 며느리는 가정법원의 중재로 시댁에 5천9만원을 지불하였고, 시댁으로부터 ‘하리짜’를 허락받았다. 그리고 7월에 며느리는 시동생이 거주하는 캐나다로 건너가 토론토의 정통주의 유대교법정에서 합법적인 ‘하리짜’를 치렀다. 그랬는데도 예루살렘의 유대교 법원은 또 다시 그녀에게 재혼을 가로막았다. 그녀가 수절해야할 기간에 다른 남자를 만나 4명의 자녀를 두었기 때문이다. 결국 슬로미트는 유대교대법원에 상고하였고, 유대교대법원은 그해 11월 초에 하급심의 판결을 뒤집고 슬로미트에게 재혼을 하락하였다. 상급심은 ‘하리짜’가 지체된 책임이 큰돈을 요구하며 슬로미트를 세 차례나 법정에 세운 시댁에게 있다고 본 것이다. 또 유대교법원은 토라의 근본취지를 살려 과부를 돕기보다는 오히려 그녀를 10년간이나 법정에 세우며 거액을 요구한 시댁의 편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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