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의 자료와 게시판을 분류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료 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

희망의 끈41: 예수님의 희망성취사역(8)(막 13:14-37)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조동호
댓글 0 조회 13,217 2016.08.01 21:46

본문

희망의 끈41: 예수님의 희망성취사역(8)(13:14-37)

예수님의 권면, “깨어 있으라.”

israel_liberated.jpg 마가복음 13장에 실린 예수님의 예언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한 가지는 마지막 37절에서 보듯이 깨어 있으라는 권면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12장에 실린 포도원 소작농부들의 비유에서 보듯이 옛 언약을 새 언약으로 바꾸시겠다는 것이다. 옛 질서를 새 질서로 바꾸시겠다는 것이다. 옛 언약에 기초한 공동체를 새 언약에 기초하는 공동체로 바꾸시겠다는 것이다. 구약을 신약으로, 문자적 이스라엘을 영적 이스라엘로, 유대교에 맡겼던 소임을 빼앗아 기독교에 넘기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유대교의 병든 상태, 곧 하나님독점, 성전독점, 권위찬탈, 배타적 선민사상 등을 더는 두고 보실 수가 없으셨다. 유대교를 통해서는 인류의 희망을 성취시킬 수가 없으셨다. 유대교는 선교의 대상인 이방인들과 접촉하거나 교제할 수 없도록 수많은 울타리법들을 만들어 겹겹이 방어막을 쳤다. 유대교는 하나님이 타민족들의 신이 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9), “너희는 삼가라”(23), “이 세대가 지나기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30),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33)고 권면하시고 경고하신 또 다른 이유이다. 환난과 재난을 당할 때 믿음을 잃지 말라는 권면일 뿐 아니라, 계시록 25,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하여라.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너에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예언은 부분적으로 주후 30년 그리스도의 교회의 출범과 주후 64년에 시작된 네로의 박해 및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에서 성취되었다. 이후로 예루살렘의 성전예배가 오늘날까지 복원되지 않고 있다. 비록 유대교인들은 성전예배가 반드시 복원될 것이라고 굳게 믿지만, 설사 그것이 복원된다고 해도 동물의 희생제사는 더 이상 그 의미와 가치를 상실하였다.

그런데 1948514일 이스라엘이 재건된 지 어언 70년이나 흘렀는데도, 도대체 무엇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성전이 복원되기만을 희망할 뿐, 직접 나서서 재건축하려하지 않는가?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그 일이 오실 자 그리스도가 성취시킬 일이기 때문인데, 유대인들은 여전히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두 번째는 성전이 예루살렘 시온산(모리아산), 곧 본래 성전이 섰던 자리에 단 하나만 세워져야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그 성전 터에 현재 이슬람사원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새 질서의 도래(1)

israel_capta_vespasianus.jpg복음서 속에는 주후 30년까지 예수님시대의 사건들과 말씀들이 표면에 등장하지만, 그 이면에는 주후 70년대의 교회시대 즉 저자시대의 사건들과 논쟁에 대한 신학적 해설이 깔려있다. 독자들이 예수님시대의 사람들이 아니라, 저자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바울을 비롯한 서선서 저자들이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쓴 글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복음서를 읽을 필요가 생긴다.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의 출범과 정체성을 밝히고 있는 모세오경을 읽을 때 표면에 드러난 모세시대뿐 아니라, 모세오경의 이면에 깔린 유대교신학과 유대민족사적 역사이해까지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하는 것과 같고, 후대의 예언자들이 자기시대의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하여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회개운동과 회복운동을 펼친 것 또한 신약 서신서 저자들이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들이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서 회개운동과 회복운동을 펼친 것과 같다. 이런 점에서 예언은 먼 미래에 있을 사건을 말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지금 여기에서의 회개와 결단과 헌신을 권면하기 위한 것이다.

신약성서 기록당시 교회들은 외부의 물리적인 박해와 내부의 이단침투와 성장통을 앓고 있었다. 이런 문제들은 교회에 신학과 제도를 바로 세우도록 요구하였고, 교회는 이들 문제에 잘 대응함으로써 주후 30년에 창립된 지 283년만인 주후 313년에 로마로부터 합법종교로 공인받았고, 392년에는 로마의 국교로 우뚝 서게 되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없애버리셨다. 이스라엘에서 유일했던 예루살렘성전은 하나님독점의식과 남녀노소민족의 차별의식과 배타적 선민사상의 옴팔로스(Omphalos, 배꼽)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권위유지를 위해서 하나님을 지성소에 가둬두고, 겹겹이 담을 쌓아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예루살렘이 망하고 성전이 능욕당하는 치욕이 있고난 다음에야 비로소 하나님은 성전지성소에서 해방되셨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것을 폐하시고, 두 번째 것을 세우신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10:9).

교회가 설립된 지 한 세대가 지났을 무렵인 주후 60년대에 교회는 이단들의 침투를 받고 있었고, 로마와 예루살렘에서 세기적인 사건들이 터졌다. 이 사건들은 기독교계와 유대교계 모두에 큰 충격을 안겼다. 그것들은 로마 시에서 벌어진 네로의 기독교박해(64-68)와 이스라엘에서 펼쳐진 유대-로마전쟁(66-73)이었다. 네로의 기독교박해는 로마당국차원에서 시행된 최초의 기독교박해였을 뿐 아니라, 사복음서, 베드로전서, 계시록의 기록에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다. 유대-로마전쟁은 유대인들에게 역사상 최악의 참화(慘禍)를 안긴 불행한 사건이었을 뿐 아니라, 유대교와 기독교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놓은 사건이었다.

새 질서의 도래(2)

israel_capta_titus.jpg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정권을 빼앗아 이방나라에 넘기셨다. 주후 66년에 유대총독 플로루스(Gessius Florus, 64-66)가 성전금고에서 금 17달란트를 강탈할 뿐 아니라, 유대인들을 살육하였다. 격분한 유대인들이 전쟁을 일으켰고, 주후 70년에 비극적 참패로 끝났다. 패배의 대가는 너무 컸다. 6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수천 명이 노예로 팔렸거나 광산에 보내졌으며, 검투사로 등록되었다. 땅은 황폐해졌고 경작인은 사라졌다. 공회(산헤드린)는 해산되었고, 정치적 자율권마저 빼앗겼다. 일 년에 반 세겔씩 내던 성전세를 로마의 주피터 신전에 바쳐야 했고,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토지세와 주둔군의 재정까지 부담해야 했다. 그로 인해서 유대인들은 교회를 합법적으로 탄압할 수 있었던 영향력을 잃게 되었다. 한편 유대-로마전쟁의 참패로 이스라엘의 모든 정파와 종파들은 소멸되고 오직 바리새파만이 존속되었다. 이 무렵 유대교인들은 율법중심의 유대교 재건과 생존에 힘을 쏟아부어야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더 이상 탄압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그들은 기독교를 유대교의 잠재적 위험요소로 보고 회당공동체에서 그리스도인들을 파문시켰다. 또 그들은 사라진 성전제사를 대신해서 하루 세 번 기도시간에 바치는 18개의 기도문(쉐모네 에스레이)이단을 공격함이란 제목의 기도문을 12번째에 첨가하여 기독교로부터 유대교를 보호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유대인들을 회당에서 추방하는 노력을 펼쳤다.

다른 한편 유대-로마전쟁의 참패로 인한 예루살렘교회의 폐쇄와 야브네 회의의 파문결정으로 세력이 약화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교회들에 대한 지배권을 잃게 되었다. 주후 30년 오순절 날 성령의 임재로 그리스도의 교회가 시작된 곳은 예루살렘이었다.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은 거의 모두 유대인들이었고, 야고보 장로가 수장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지만 여전히 유대교 회당에 소속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직전에 산으로 도망가라”(14)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요단강 동편의 펠라페트라로 피신하였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예루살렘교회는 더 이상 이방인 교회들을 지배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유대-로마전쟁은 기독교가 유대교의 핍박과 유대-기독교의 간섭에서 벗어나 지금의 기독교가 되는 발판을 제공하였고, 동시에 기독교가 이후 300여 년간 로마당국의 박해를 받는 새로운 위기와 392년에 국교가 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