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끈42: 희망성취사역의 종말론적 완성(1)(막 1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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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42: 희망성취사역의 종말론적 완성(1)(막 14:1-11)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모색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마가복음 14장 1-2절과 3-9절의 기록내용은 같은 날에 일어난 사건들이
아닐 수 있다.
1-2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유월절 날을 이틀 앞두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체포하여 죽일 방도를 모색하였고, 그들의 계획에 날개를 달아 준 것은 가룟 유다의 배신이었다는 암시가 담긴 말씀이다. 이 날은 주후 30년 4월 5일 수요일이었다. 복음서는 이 날에 대한 예수님의 활동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3-9절은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베다니에 도착한 금요일부터 머물렀던 숙소로 추정되므로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신 때가 유대력으로 4월 5일 수요일 저녁 한 날뿐이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3-9절에 기록된 예수님 머리에 기름부음 사건은 베다니에 도착하신 금요일 저녁식사 때부터 수요일 저녁식사 때까지 어느 한 날에 있었던 사건으로써 마가는 이 도유사건을 예수님을 죽이고자 도모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병든 상태에 상반된 한 여성의 건강한 상태를 비교하기 위해서 이곳에 배치하였다고 여겨진다. 이 여성은, 비록 연약하지만, 힘을 다하여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부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다.
1-11절에는 다섯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정치종교지도자들, 그들에게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 가난한 자들을 위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배만 불리는 사람들, 그리고 십자가의 수난을 준비하는 예수님과 그분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한 여자가 등장한다. 이들 모두는 각자의 분야에서 탁월한 감각을 발휘한 자들이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정권과 교권을 잡고 유지하는 일에서 뛰어난 감각을 발휘한 정치인들이자 종교인들이었다. 민중이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예수님을 살려둬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자들이다. 시몬이 배설한 식사에 참석한 자들은 먹고사는 일에 남다른 수완을 갖춘 사람들이다. 한편 가룟 유다는 다른 제자들보다 두뇌회전이 빠른 자로서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희망을 성취시킬 자가 아니라는 것, 이스라엘에 문자적인 빵과 명예와 주권을 되찾아줄 메시아가 아니란 것, 현실문제에 눈이 어둡고 무력한 예언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크게 실망한 자였다.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여인
실제로 예수님은 혁명이나 전쟁을 위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고,
군사도 모집하지
않았다.
유다는 예수님을 추종한
3년을 시간낭비였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현실문제의 해결에
기대를 걸고 예수님을 믿다가 중도에 포기한 많은 사람들이 이 가룟 유다한테서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반면에 값진 향유를 준비한 여자는 예수님이 정치나 경제나 종교에 무슨 큰 뜻을 품었던 인물이라서 예수님을 따랐던 것이 아니고, 가룟 유다처럼 당면한 현실문제해결을 위해서 예수님을 믿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오로지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깊이 존경하며 신뢰할 뿐이었다. 그녀는 타고난 감각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직감하였고, 힘을 다하여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부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다(8절). 예수님께 헌신했던 수많은 여신도들이 이 여자한테서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은 마가복음 14장 3-9절에서 뿐 아니라, 마태복음 26장 6-13절과 요한복음 12장 2-8절에서도 읽을 수 있다. 마가복음이 주후 70년경, 마태복음이 70-80년 사이, 요한복음이 80-90년 사이에 각각 기록되었고, 최소 5년에서 10년의 간격차로 교회와 성도들을 믿음의 반석위에 굳건히 세우기 위해서 쓰였다. 마가와 마태가 옥합을 깨트려 값비싼 나드(Nard) 향유를 예수님에게 부은 여인의 이름에 침묵한 반면에 요한은 그녀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였다고 이름을 밝혔다. 또 그녀의 행동에 분개한 사람을 마가가 “어떤 사람들이”라고 한 반면에 마태는 그 어떤 사람들이 “제자들이”였다고 밝혔고, 요한은 “가룟 유다”였다고 이름까지 밝혔다. 이로 보건데, 여인의 행동을 책망한 자들은 다수의 제자들이었고, 그들 가운데 삼백 데나리온과 가난한 자들을 운운한 자는 가룟 유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여인이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곳이 마가와 마태는 “머리”라고 한 반면에 요한은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았다”고 하였다. 추정컨대, 그 여인은 향유를 먼저 예수님의 머리에 조금 붓고 나서, 나머지를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가와 마태는 머리에 부은 것을 부각시킴으로써 예수님이 기름부음을 받은 한 여자로 상징된 교회의 그리스도이심을 강조하였고, 요한은 발에 붓고 머리칼로 씻은 것을 부각시킴으로써, 교회를 상징하는 한 여자의 순종과 헌신을 강조하였다.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
나드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자라는
감송(spikenard)으로써 나르도스타키스
자타만시(Nardostachys
Jatamansi)이다.
나드는 가나안땅에서는
자라지 않기 때문에 인도에서 수입하여 썼다.
기름은 뿌리줄기를
압착하여 얻는데,
한 그루에 여러 개의
뿌리줄기가 뻗는다고 한다.
옥합(玉盒)은 앨러배스터(Alabaster)라 불리는 석고(石膏)처럼 연한 돌을 깎아 만든 것으로써 불빛이 희미하게 통과되는 기름병을 뜻하며, 이집트에서 수입하여 썼다.
“옥합을 깨뜨렸다”는 의미는 망치 같은 도구로 기름병을 깨뜨렸다는 뜻이 아니라, 기름병 입구를 밀봉한 밀랍을 뜯어냈다는 뜻이다. 여인이 예수님에게 부은 나드(Nard) 기름은 순도 100퍼센트의 고급 향유로써 그 값이 “삼백 데나리온”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는 일반 노동자의 연봉에 해당되는 큰돈이었다. 여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되거나 바꿀 수 없는 무한한 가치였던 것이다. 그 고귀한 마음이 그녀로 하여금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게 하였고, 대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반면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 세겔, 곧 120데나리온에 넘겨주려고 대제사장들을 찾아갔다. 120데나리온은 건장한 노예 한 사람값에 해당되는 돈이었다. 여인이 예수님에게 부은 향유의 가격을 300데나리온으로 평가했던 가룟 유다는 스승을 그보다 훨씬 낮은 노예 가격에 팔아넘겼던 것이다. 여인과 비교해볼 때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얼마나 낮게 평가했는가를 알 수 있다.
여인은 값비싼 나드 기름이 담긴 옥합을 들고 예수님을 찾아갔고, 가룟 유다는 은 삼십 세겔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으로 대제사장들을 찾아갔다. 여인은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고 발을 씻기며 그분의 발에 헌신과 복종의 키스를 하였지만, 가룟 유다는 3년간이나 추종했던 스승에게 배신을 때려 가슴을 멍들게 하고 그분의 뺨에 배반의 키스를 날렸다. 여인은 어떻게 하면 죽음을 앞둔 예수님을 위로하고 그분의 장례를 미리 준비할까하고 그 기회를 찾았지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대제사장들의 손에 넘겨줄 수 있을까 하고 그 기회를 노렸다(10-11절). 그로 인해서 여인은 대대로 칭송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의 귀감이 되었고, 가룟 유다는 대대로 악평을 받는 구천을 떠도는 가련한 혼령(a wondering man)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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