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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47: 희망성취사역의 종말론적 완성(6)(막 14:5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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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4,539 2016.08.2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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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47: 희망성취사역의 종말론적 완성(6)(14:53-72)

공개적인 신앙고백

christ_before_the_high_priest.jpg 예수님이 체포되어 심문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절명하신 사건은 유월절 한날에 다 이뤄졌다. 이날은 금요일이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어 심문을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신 후 십자가에 못 박혀 절명하시기까지 박해자들 앞에서 담대하실 수 있었던 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체포되신 즉시 밤이 맞도록 다섯 차례, 곧 대제사장들인 안나스와 가야바에게 한 번, 공회원들 앞에서 한번, 헤롯 안디바에게 한번 그리고 빌라도 총독에게 두 번, 심문받으시는 동안 단 한 차례도 동요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념을 지키시며 심문자들이 오히려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게 하셨다. 반면에 베드로는 대제사장들의 하속들로부터 세 번 심문을 받고 세 번 모두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신한 것은 졸음에 빠져 기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다섯 차례의 심문은 베드로보다 하나님의 뜻을 배반할 기회가 더 많았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은 삶의 미련들을 모두 극복하신 반면, 베드로는 세 번 모두 굴복하고 말았다.

예수님께서 공적생애출범을 앞두고 금식기도 후 마귀로부터 세 가지 시험(심문)을 받으신 것,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번 기도하신 후 심문받으신 것, 베드로가 세 번 심문받고 세 번 다 배신한 것에는 당대의 삼심제도(三審制度)라는 관행이 숨어있다. 베드로가 세 차례에 걸쳐 예수님을 부인한 이야기는 초대교회의 박해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지금의 터키 지역인 비두니아(Bithynia)111년 총독으로 임명되었던 플리니(Pliny the Younger)는 체포된 기독교인들에게 세 차례 배교할 기회를 준 후에 그래도 계속해서 신앙을 고집하면 처형토록 하였다.

초기 기독교시대에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침례받기를 원했던 사람들에게는 세 번의 신앙고백과 세 번의 침례를 주었다. 이 당시 침례는 물이 많은 공개된 장소에서 행해졌고 박해시대여서 위험한 일이었다. 믿음이야 발설치 않으면 남이 알 수 없지만, 침례는 그 믿음을 공개하는 것이므로 목숨을 걸어야하는 일이었다. 침례를 받는 자들은 먼저 나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고 고백한 후에 첫 번째 침수를, “나는 성자 예수님을 믿습니다.”고 고백한 후에 두 번째 침수를, “나는 성령님을 믿습니다.”고 고백한 후에 세 번째 침수를 받았다. 이 세 차례의 신앙선언과 침수세례는 박해시대에 기독교인들이 자주 직면했던 세 차례의 배교선언과 무관하지 않았다.

베드로의 배신

roman_house_1st_century.jpg한 밤중이 되자, 대제사장이 보낸 무리들이 겟세마네 동산에 나타났다. 그들은 예수님을 즉시 체포했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고 갔다. 대제사장의 집 뜰에는 그날 밤의 거사를 도모하느라 이미 모닥불이 피어있었고, 쌀쌀한 밤 기온 탓인지 사람들은 일이 어찌 되어 가는지를 보려고 모닥불 곁에 모여들었다. 그들 사이에 베드로가 있었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초라한 행색의 그가 갈릴리 출신이고,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내 알아보았다. 여기서 베드로는 하속들로부터 세 번이나 심문을 받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때마다 강하게, 심지어 저주하며 맹세하면서”(71)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다. 닭이 운 것은 베드로가 첫 번째와 세 번째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때에 울었다. 누가복음 2261절에 의하면, 닭이 두 번째 울었을 때, 예수님께서 몸을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셨고,”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다”(72). 로마제국 당시 고관대작의 집들은 대개가 이층집이고, 집 가운데에 뜰이 있었다.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은 이층에서 심문을 받고 있었고, “베드로는 아래 뜰에 있었다”(66). 이것은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죄인 취급하여 집안으로 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래 뜰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다 지켜볼 수 있도록 이층 난간 쪽에 세워놓고 심문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제사장들의 다그침에 담대하게 답변하시던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교행위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하셨고, 닭이 두 번째 울자, 몸을 돌려 아래 뜰에 있는 베드로를 연민의 눈빛으로 내려다보셨다. 그때 베드로와 눈이 마주쳤고,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밖으로 뛰쳐나가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닭이 울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심문을 받으신지 벌써 네다섯 시간이나 되었고, 먼동이 트고 있었으며, 예수님의 신상문제를 신속히 처리하려는 분주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대제사장들은 공회원들을 소집하여 예수님을 그들 앞에 세웠고, 총독관저로 데려가 빌라도의 심문을 받게 하였다.

닭이 울다

persecution_japan_1630s.jpg 서울대미대 김병종 교수는 자신이 그린 <닭이 울다>(1988)란 그림에 다음과 같은 해설을 붙었다. “닭이 우는 시간은 통회와 고통 그리고 환희의 시간이다.” 배교, 수탉의 울음, 여명 등을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 있는데, 일본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 그것이다. 이 소설에 멀리서 닭이 울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유물전시관에 다 닳은 성모상이 새겨진 작은 성화판이 전시되어있다고 한다. 1637년 일본 큐슈우 시마바라(島原)에서 농민들이 과중한 세금과 기독교금지에 반항하여, 16세의 소년 아마쿠사 시로오(天草四郞)를 대장으로 삼아 난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이때는 3대 막부인 도쿠가와 이에미쯔 시대였는데, 시마바라 난을 진압한 후, 기독교인들을 색출하기 위해서 성화판을 밟고 지나가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색출된 기독교인들을 구멍 매달기란 방법의 고문을 통해서 신앙을 포기토록 유도하였다.

<침묵>에 로드리고란 이름의 포르투갈 예수회 신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담당 형사는 지독하게 믿음이 강한 이 신부를 배교시키려고 이미 몇 번씩이나 주님을 저주하고 성화를 밟고 배교한 농민들을 놓아주지 않고 그들을 거적에 말고, 양쪽 귓바퀴에 구멍을 뚫어 한 방울씩 피가 흐르게 한 뒤 좁은 구멍에 거꾸로 매달아 극도의 고통을 호소하면서 죽어가게 한다. 결국 신부는 자기로 인해서 농민신도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는 현실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들의 고통을 면해주기 위해서 배교의 길을 택한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새긴 동판을 발로 밟고 지나간다. 엔도는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지금까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 온 것, 가장 맑고 깨끗하다고 믿었던 것, 인간의 이상과 꿈이 담긴 것을 밟는 것이었다. 이 발의 아픔. 그 때, 밟아도 좋다고, 동판에 새겨진 그분은 신부에게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고, 너희들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부가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왔다. 멀리서 닭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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