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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48: 희망성취사역의 종말론적 완성(7)(막 1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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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4,808 2016.09.0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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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48: 희망성취사역의 종말론적 완성(7)(15:1-32)

대제사장들과 공회(산헤드린)의 심문

mapjesusrt2.jpg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신 예수님은 대제사장들인 가야바와 안나스로부터 새벽까지 심문을 받으셨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직은 본래 세습되는 종신직이었다. 그러나 강대국들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터는 임명직으로 바꿨다. 안나스는 주후 6년경에 시리아총독으로부터 대제사장직에 임명되었으나 15년에 면직되었다. 그 후 3년간 안나스의 아들들이 대제사장직을 이어갔고, 18년에 안나스의 사위인 가야바가 대제사장직에 올라 36년까지 대제사장직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가야바는 명예 대제사장이자 장인인 안나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런 정황 때문에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는 대제사장들이란 복수 명사가 사용되었다.

새벽에 가야바와 안나스는 공회(산헤드린)를 소집하여 예수님을 공회원들 앞에 세웠다. 몇몇 공회원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대제사장들과 한 통속이었다. 그들은 곧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하였고, 날이 밝자 예수님을 결박하여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끌고 갔다. 로마의 속주(식민)인 예루살렘공회에 사형집행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월절은 유대민족의 해방절이기 때문에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던 유대인들로서는 이 시기에 왠지 모를 흥분과 기대에 휩싸이곤 하였다. 이 시기에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마치 한껏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건들기만 해도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8일간 지속되는 유월절 명절은 민중봉기의 가능성이 연중 가장 높은 시기였고, 로마총독과 대제사장들 및 헤롯 왕가의 권력자들에게는 결코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숨 가쁜 한 주간이었다. 이런 긴박하고 위험한 상황 때문에 그들은 모두 예루살렘에 집결해 있었다. 빌라도는 유대총독부가 주재한 가이사랴에서 혹 있을지도 모른 소동에 대비하여 추가 병력을 이끌고 왔고, 헤롯 안디바도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 갈릴리의 수도 디베랴에서 왔다.

로마총독 빌라도의 심문

pilate_courtyard2.jpg 폭동이나 반란의 기운이 극에 달하는 유월절에 대제사장들과 공회가 모의하여 고소한 예수사건은 빌라도 총독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도 있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으므로 총독 빌라도로서는, 비록 이른 아침에 갑자기 밀어닥친 사건일지라도, 섣불리 다룰 수 없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은 것은 공회가 제출한 공소장을 읽고 한 심문이었다. 공소장에는 이밖에도 민중선동, 로마에 바치는 조세(租稅)거부, 자칭 그리스도, 성전모독, ‘하나님의 아들이란 신성 참칭(僭稱) 등이 기재되어 있었다. 로마병영내의 빌라도 관저(Praetorium)에는 고소인들인 대제사장들과 공회원들이 참석하였고, 그들이 동원한 증인들과 방청객들로 북적이었으나 예수님을 변호해줄 변호인이나 증인들은 없었다.

공소장은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시기”(10)하여 작성한 것이기 때문에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것이었다. 빌라도 총독은 고민에 빠졌다. 예수님에게서 죄를 입증할 직접증거나 정황증거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줄 한 가지 방안으로 유월절 명절에 백성이 요구하는 죄수를 사면하는 전례를 이용해 볼 생각이었다. 마침 무리가 빌라도에게 전례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달라고 요구하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예수님을 놓아 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에게 매수된 무리는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게 하고, 바라바를 석방해달라고 청하였다. 바라바는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 중에 사람을 죽인 자였다.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도대체 그가 무슨 악한 일을 행하였느냐?” 그러자 무리가 격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13-14). 이 상황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정식재판을 받게 하거나 혹은 속주민에 관한 사건이어서 즉결심판이 가능한 재판이었을지라도 법과 양심이 요구하는 정의로운 판결보다는 정치적 타협을 택하였다.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었다”(15).

신학자들이 이스라엘 법원에 유대민족이 그동안 주권적인 사법기관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재판을 따져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잘못된 재판을 다시 심리해 달라고 요청하였고, 이스라엘 대법원은 소송기록이 없고 신약에 단편적인 기록만이 남아있을 뿐이라는 이유로 1967년에 이 청구를 각하한 바가 있다. 이런 것들을 따져보기에 앞서서 우리가 반드시 먼저 알아야할 것은 예수님이 아무 죄도 없이 권력욕에 찬 기득권층과 우매한 민중에 휘둘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인류의 오랜 희망인 구원성취를 위해서 하나님이 그분을 유월절 속죄양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crucifixtion_timeline.jpg군인들은 예수님을 군영으로 데려가서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씌우고 채찍질하고 침을 뱉고 희롱한 후에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서 골고다로 끌고 갔다(16-20).

훗날 기독교에 개종한 알렉산더와 루포의 부친시몬이 그 무렵 구레네에서 와서 그곳을 지나가다가 군인들에게 붙들려 탈진해버린 예수님을 대신해서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해골의 곳)까지 가게 되었다.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까지는 8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구레네는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를 말한다. 시몬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헬라어를 사용하는 교포였다. 훗날 시몬의 가족은 기독교에 개종하여 사도 바울을 도왔던 것으로 보인다(16:13).

복음서에 두 명의 시몬, 곧 구레네 사람 시몬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것과 매사에 용맹했던 시몬 베드로가 비겁하게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배신한 일화가 뽑혀 실린 것은 예수님이 묵묵히 고난을 감내하시고 끝내 승리하셨던 수난이야기와 함께 박해시대를 살았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위에 굳게 서도록 권면하려고 쓴 복음서의 기록목적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은 네로의 박해시대에 로마에서 기록되었다. 이 무렵 마가는 로마에서 베드로의 통역관으로 수고하였다. 마가는 견디기 어려운 박해 때문에 제2의 가룟 유다, 2의 시몬 베드로가 속출하는 정황 속에서 생존이 위태롭게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처럼 묵묵히 고난을 감내할 것과 구레네 사람 시몬처럼 억지로라도 교회의 십자가를 짊어질 것과 베드로처럼 배교했더라도 회개하고 돌이킬 것을 촉구하고 권면해야할 필요를 강하게 느꼈을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개입된 모든 이들, 가룟 유다와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 대제사장들, 거짓 증인들과 방청객들, 빌라도와 군인들, 심지어 구레네 사람 시몬과 아리마대 사람 요셉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도구들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뜻의 성취를 위해서 그들을 예정하고 택하셨거나 강제하셨기보다는 그들 스스로가 허황된 욕망에 치우쳐서 혹은 선한 양심에 이끌려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였을 것이란 점이다. 하나님이 가장 확실하게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님이시고, 그분을 인류의 오랜 희망을 성취할 속죄양으로, 또 주후 30년 유월절을 희망성취사역의 종말론적 완성의 때로 정하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시험에 들지 않게 늘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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