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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49: 희망성취사역의 종말론적 완성(8)(막 15:3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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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298 2016.09.0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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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49: 희망성취사역의 종말론적 완성(8)(15:33-41)

예수 그리스도님의 수난의 목적

knowledge4.jpg복음서에서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복음을 선포하신 것이나 큰 능력과 놀람과 표적들을 행하신 것들은 긴 서론에 불과하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일주일간 당하신 수난사건이 오히려 본론에 해당된다. 그리고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의 수난에는 그 목적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님의 수난의 목적은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며,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옛 언약 공동체를 폐하시고 새 언약 공동체를 세우신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 옛 언약(율법) 공동체를 폐하신 이유는 유대인들이 열방의 백성들을 이방인과 죄인 취급하면서 열방의 백성들과 그들이 먹고 쓰는 모든 것들을 부정하게 여겨 그들과의 교제를 차단하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적 선민의식과 하나님을 독점하려는 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며, 사람을 살리기보다는 또 본질과 기본에 충실하기보다는 율법과 겉껍데기 울타리 법들의 문자적인 준수에 매달렸으며, 하나님이 원하시고 받으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님의 수난의 목적은 새 언약 공동체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민족성별의 차별을 두지 않고,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또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믿고, 죄를 회개하며, 신앙을 고백하고, 침례 받는 모든 자들에게 죄 사함과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특정한 사람들을 택하여 그리스도인을 삼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시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일군이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택정하심은 결과론적인 것으로써 구원받은 큰 무리에 참여한 성도들과 그들을 섬기는 자로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의 일군들에게 해당된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님의 수난의 목적은 유대인들이 희망하는 바와 같이 지상에 문자적인 나라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하늘 가나안땅에 영적인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깨어지고 낡아지며 무너질 일시적인 나라가 아니라 영원하고 참된 생명의 나라이다. 그 같은 점에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 곧 오실 자 그리스도이시였다. 그러나 거기가 끝은 아니다. 주의 재림 때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하난 벤하콜유골의 증언

cross_nail.jpg예수님은 유월절 날 아침 8시경에 살점을 도려내는 채찍을 맨살에 맞으셨고,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 형틀에 쓰일 가로대를 짊어지셨으며, 기도시간인 아침 9시경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기도시간인 낮 12시경부터 저녁희생을 드리는 오후 3시경까지, 하루 중 태양이 가장 강렬해야할 바로 그 시점에 칠흑 같은 어둠이 지속되었으며, 예수님은 저녁희생제물이 드려지는 바로 그 시각에 운명하심으로써 인류의 화목제물로써 하나님께 바쳐졌다.

1968년 예루살렘의 기밧트 하미브타르 발굴에서 1세기경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이 무덤의 유골함 속에는 요하난 벤하콜이라는 20대 남자의 유골이 담겨있었다. 이 유골 중에는 18cm 길이의 굵은 쇠못이 박혀있는 발뒤꿈치 뼈가 있었다. 쇠못은 나무에 박힌 후 빠지지 않게 뒤끝이 안쪽으로 구부러져 있었고, 십자가는 올리브나무였다. 그리고 쇠못은 죄수의 발등이 아니라, 발뒤꿈치 옆 복사뼈 밑에 박혀 있었으며, 아카시아 나뭇조각이 죄수의 발을 받치고 있었다. 유골함 속에는 큰 나무망치에 맞아서 부러진 것으로 추정되는 정강이뼈도 있었다. 발견된 손과 손목뼈에서는 손바닥이 아닌 손목 위 두 개의 팔뼈 사이에 큰못을 친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로써 2천 년 전에 시행된 십자가 처형식이 어떠했는가를 재구성해볼 수 있게 되었다.

죄수가 십자가형을 받으면, 상의를 벗긴 채 나무기둥의 허리부분에 양손이 묶인다. 그러면 죄수의 벌거숭이 등이 하늘을 향하게 된다. 죄수의 등에다 동물의 뼈나 철 조각이 매달린 채찍으로 내려치면 피가 튀기고 살점이 도려내진다. 체벌이 끝나면 죄수는 십자가의 가름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형장을 향해 걷는다. 도착하면 짊어지고 온 가름대를 기둥에 맞춘다. 그리고 땅에 눕혀진 십자가나무 위에 죄수의 옆구리가 나무 바닥에 닿게 눕힌다. 그리고 죄수의 두 발이 세로 기둥에 나란히 모아진 상태에서 복사뼈 바로 밑에다 쇠못을 박는다. 굵고 울퉁불퉁한 쇠못은 두 발의 복사뼈를 관통한 다음 나무에 깊이 박히게 된다. 그러고 나서 죄수의 상체를 90도 비틀고 무릎을 꿇려서 바로 눕힌다.

인간의 장벽들을 허물어버린 절규

다음에는 끈으로 양쪽 팔목을 가름대에 묶고 양손의 손목뼈 사이에 못을 박는다. 이렇게 한 다음 십자가를 세워 고정시킨다. 상체가 뒤틀린 상태로 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들은 산소부족과 호흡곤란으로 큰 통증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쉽게 죽지는 않는다. 낮에는 뜨거운 땡볕과 밤에는 추위를 견뎌야 하고, 때로는 날짐승의 공격을 받으며, 고통 중에서 서서히 죽게 내버려둔다. 그러나 죄수를 급히 죽여야 할 경우에는 큰 나무망치로 정강이뼈를 쳐서 부러뜨린다. 상체가 아래로 처지면 횡격막이 숨통을 조이게 되어 사망에 이르게 된다. 예수님은 못 박히신지 6시간 만에 운명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6시간 정도 지난 오후 3시경에 캄캄한 하늘을 향해서 절규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은 이 절규 직후에 운명하셨다. 그리고 그때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는 휘장이 찢어졌고, 예수님을 향해 서있던 백부장은 그분에게서 신으로부터만 느낄법한 엄청난 존엄과 전율을 느꼈다. 그 순간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분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말았다(37-39). 그도 훗날 기독교에 개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보건데 예수님의 절규는 단순히 고통을 이기지 못해서 내지른 비명이 아니라 인간한테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위엄과 성취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성소휘장이 갈라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의 절규는 생명을 살리고 해산하기 위한 안간힘이자, 사탄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면서 지른 기합이었다.

유대인들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유대민족의 하나님으로 제한해 버렸다. 또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이 지은 성전에 가둬두고 독점하였다. 하나님이 현존하시는 곳을 예루살렘 성전 한곳에 제한시킨 것은 일종의 통치수단에 불과한 것이었다.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단 하루 지성소에 있는 법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성소를 담과 뜰로 막아놓고 민족과 성별과 계급에 따라 접근을 제한시킨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보좌(법궤)가 놓인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의 영역이었고, 성소는 당번 제사장이 출입할 수 있었으며, 성소를 둘러싼 제사장의 뜰에는 제사장들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또 그 바깥 이스라엘의 뜰에는 13세 이상의 유대인 남성들만이 출입할 수 있었고, 이스라엘의 뜰로 통하는 여성의 뜰에는 남녀노소불문하고 모든 유대인들이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여성의 뜰 바깥에 있는 이방인의 뜰 한곳에만 출입이 가능하였다. 신성하게 여겨지는 성전의 뜰에, 설사 그곳이 여성의 뜰이라 할지라도, 이방인은 한 발짝도 들여놓을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목숨을 내놓아야했다. 이런 점에서 성전의 뜰들을 구별하는 담들은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을 가로막는 일종의 차단막, 곧 휘장과 같은 것이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우주를 상징한 성전의 모든 담과 문들, 곧 민족의 담(미문), 성별의 담(니카노르 문), 신분의 담(성소 문), 계급의 담(지성소 휘장)을 허무시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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