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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50: 희망성취사역의 종말론적 완성(9)(막 15: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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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124 2016.09.03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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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50: 희망성취사역의 종말론적 완성(9)(15:42-47)

예수님의 죽음과 장례

tomb-israel.jpg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은 주후 3047일 유월절 날이자 안식일 하루전날인 금요일이었다. 이날은 유월절 첫날이면서 동시에 큰 안식일을 준비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정한 시신을 십자가에 매달아두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런 이점을 생각한 공회원이면서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은 총독 빌라도에게 당돌하게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달라고 청하였다. 요셉은 훗날 기독교에 개종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요셉의 청원을 받고 빌라도는 백부장을 불러서 예수님의 생사여부를 확인한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가져가도록 허락해 주었다. 요셉은 새로 구입한 세마포에 예수님의 시신을 감싼 후에 바위를 파서 만든 굴무덤에 안치하였고, 돌을 굴려 입구를 봉쇄하였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끝까지 남아서 슬퍼하고 있던 사람들은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막달라 출신의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곧 알패오의 아내이자, 예수님의 제자 작은 야고보의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세마포에 싸서 굴무덤에 안치하고 입구를 돌로 봉하는 전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이들 가운데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목격한 증인으로서 사복음서가 공통으로 언급하고 있는 여인이며 일곱 귀신이 들렸다가 예수님에 의해서 나음을 입었던 여인이었다(16:9). 남성들의 마음이 부와 명예와 권세욕에 차있었고, 예수님을 배신하고 도망쳤던 반면, 이들 여인들의 마음은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와 충성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로 인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목격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먼저 만난 이들도 이들 여인들이었다. 심지어 남성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더디 믿었고, 분명한 증거를 보고서야 믿었지만, 이들 여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믿고 추종하며 헌신하였다. 남성중심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사건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크게 부각된 것은 그 자체가 모든 증언이 참되다는 상황증거이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민족의 담, 성별의 담, 신분의 담, 계급의 담이 허물어졌으며, 민족성별 빈부귀천의 차별없이,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교회시대가 열렸다는 증거이다.

예수님시대의 장례법

tomb_josepharimathea.jpg 예수님의 출생을 전후해서 각각 1세기씩 약 200년 동안에 유행한 유대인의 장례법은 먼저 시신을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에 일 년 정도 안치해 두었다가 살이 부패한 뒤에 유골을 수습하여 유골함에 보관하는 방식이었다. 만일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이름이 적힌 유골함이 발견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 장례법은 하나님의 섭리가 크게 작용한 결과이다. 이 장례법이 아니었다면 성경의 진실성을 입증할 많은 증거들이 사라지고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섭리는 팔레스타인의 기후조건이다. 이 지역의 기후는 건조한 열대성사막기후이기 때문에 비에 노출되지 않는 한 썩지 않고 오래도록 보관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 단적인 사례가 예수님과 동시대에 죽은 사람들의 유골함이 오늘날에 발굴되고 있다는 점이다.

arch38.jpg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긴 대제사장 가야바의 가족 묘실이 199011월에 우연히 발견되어 화제를 불러일으킨바가 있다. 이 묘실은 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남쪽으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공원과 도로 근교에 묻혀있었던 것으로써 12개의 유골함이 들어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에 "가야바의 아들 요셉"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로써 이 무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 처형토록한 대제사장 가야바의 가족무덤이라는 것과 발견된 나머지 유골함들 가운데 하나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것으로 믿어지게 되었다. 또 기드론 골짜기에서는 헬라어로 시몬의 아들 알렉산더, 알렉산더라고 쓰고, 그 밑에 아람어로 구레네의 알렉산더라고 쓴 유골함이 발굴되었다. 구레네의 알렉산더는 예수님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짊어진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이다.




발굴된 예수님시대의 유골함들

jesusoss3.jpg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20021021일 주후 10-70년경에 사용되던 고대 아람어 서체로 야고보, 요셉의 아들, 예수의 형제’(Ya’akov bar Yosef akhui Yeshua: 야아코브 바르 요세프 아큐이 예슈아)라는 글을 새겨 넣은 길이 약 50크기의 유골함이 예루살렘의 한 동굴에서 도굴된 후 이스라엘의 한 개인 소장자에 의해서 비밀리에 보관되어 왔음이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유골함에 새겨진 글의 진위 여부를 분석한 프랑스 소르본대학의 앙드레 르메르(Andre Lemaire) 교수는 “... 이 석회석 유골함이 BC 1세기와 AD 1세기경에 유대인들이 매장에 사용하던 것과 아주 유사한데다가 글의 형태와 서체로 봐서 주후 70년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성이 파괴되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참고로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야고보가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로 활동하다가 주후 63년경에 돌에 맞아 순교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19686월에는 예루살렘에서 15개의 석회암 유골함들이 발굴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예수님과 동시대 사람인 요한난 벤 하콜(7-70)이라 불리는 무릎을 구부린 채 십자가에 처형된 젊은이의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유골함에서는 약 18센티미터 크기의 십자가의 못이 박힌 발뒤꿈치 뼈도 발견되었다. 이 쇠못은 현존하는 유일의 십자가의 못이다. 그의 유골들과 쇠못이 박힌 뼈를 해부학적으로 검토한 학자들은 이 젊은 죄수가 상체를 90도 비틀린 상태에서, 두 무릎이 굽힌 채로, 가지런히 모운 두 발의 복숭아 뼈 바로 아래에 쇠못이 박혔고, 팔목에도 쇠못이 박혀서 처형되었다고 밝혔다. 이 상태에서 몸이 팔에 매달려 있게 되면, 가슴근육이 마비되고, 늑간근육이 활동할 수 없게 된다. 공기가 폐로 유입은 되지만, 밖으로 내뿜어내질 수 없게 되어 이산화탄소가 폐와 혈류에 쌓이게 된다.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은 이런 상태를 피하기 위해서 발에 힘을 주어 상체를 세우려 할 것이다. 그런데 사형수의 무릎 뼈를 나무망치로 타격하여 부러뜨린다면, 무릎 뼈가 부러진 죄수는 몸을 위로 밀어 올릴 수 없게 되면서 숨을 쉴 수 없게 되고 곧 죽게 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지 불과 6시간 만에 운명하신 것은 골고다로 지고 가야할 십자가형틀의 가로대(patibulum)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탈진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리에 힘을 주어 상체를 밀어 올릴 힘이 고갈된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희생제사를 바치는 저녁기도시간에 운명하심으로써 세상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유월절 속죄양이 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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