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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51: 희망성취사역의 종말론적 완성(10)(막 16: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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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375 2016.09.0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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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51: 희망성취사역의 종말론적 완성(10)(16:1-20)

제자들의 개안(開眼)단계

HolySpirit_cross3.jpg마가복음의 큰 특징 가운데 한 가지가 제자들의 무지에 있다. 그들이 실제로 무지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마가복음에서 제자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대표자로서 단번에 눈이 열리거나 귀가 열리거나 혀가 풀리지 못하고 점진적으로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며 혀가 풀리는 단계를 밟아가는 자들이었다. 플라톤이 <향연>(Symposion)에 소개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빌리자면, 마가복음은 세속적이고 육체적인 욕망의 광기를 신령하고 정신적인 광기에로 승화시켜 세상의 일과 사람의 일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일과 복음의 일의 청지기로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참된 일군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가 그리스도의 교회의 현재의 모습과 미래에 대한 전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벳새다와 여리고의 장님이 고침을 받고, 귀먹고 어눌한 사람이 고침을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오실 자로 예언된 그리스도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고 믿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이 도달해야할 마지막 개안(開眼)단계는 아니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증언들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였기 때문이다.

다수의 여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죽음과 매장까지 전 과정을 끝까지 지켜본 것, 구입한 향품을 가지고 안식 후 첫날 아침에 예수님의 무덤에 가장 먼저 달려간 것,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가장 먼저 눈으로 확인한 것,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체포되셨을 때 배신했거나 겁을 먹고 줄행랑쳤다. 여인들이 예수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았던 반면, 제자들은 부와 명예와 권세욕에 사로잡혀 자리다툼을 하였고, 예수님과 함께 깨어 기도하지 못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 못 자국을 보거나 만져보기 전까지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몇 차례나 전해 듣고서도 믿지 못하였다(12-13). 오히려 그들은 이 불행한 사건으로 인하여 충격과 실의에 빠져 있었다. 진실로 그들은 여전히 눈이 가리어져서....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고있었다(24:16, 25).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의 옅은 믿음의 눈과 의심의 귀를 활짝 열어줄 마지막 개안(開眼)의 단계로써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서 뿔뿔이 흩어진 그들을 불러 모아 사도직에 위임하시고 희망찬 새아침을 열어주시려고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는 말씀을 유월절 식사 때(14:28) 하셨고, 부활하신 직후(16:7)에도 하셨다.

제자들에게 열린 새로운 세계

khs14_cross_comb.jpg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제자들이 갈 곳이 어디였겠는가? 충격과 실의에 빠져 예전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그런 그들을 규합시킬 수 있는 곳은 역시 처음 그들을 불러 제자로 삼았던 갈릴리가 제격이었을 것이다.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희망이라고 믿고 따랐던 예수님이 손 한번 쓰지 못하고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5시간 남짓에 불과하였다. 예수님의 수난사건은, 수차례의 예고에도 불구하고, 마른하늘의 날벼락을 맞은 것과 같아서 제자들은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런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의 출현은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맞는 환희에 찬 새아침,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하는 새 출발, 떠오르는 동녘의 햇살 같은 또 다른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야곱이 브니엘에서 맞이한 아침처럼 제자들에게 열린 새로운 세계에 대한 체험이었을 것이다.

자신만의 삶과 성공을 위해서 모질게 살았던 야곱은 자신에게 장자가 받아야할 복을 강탈당한 에서와의 피할 수 없는 만남을 앞두고 얍복 강가에서 매우 침통하고 침울한 칠흑 같은 밤을 맞았다.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32). 야곱은 그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생사의 기로에 놓였기 때문이다. 야곱은 모든 가축과 가족들을 강을 건너게 하여 떠나보낸 후 자신은 강가에 혼자 남아 밤이 맞도록 기도로써 하나님과 씨름하였다. 어찌나 힘을 쓰고 뒹굴었던지 환도 뼈의 힘줄이 끊어졌다. 동틀 무렵에 하나님은 그에게 속임수와 남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살아온 지난날의 야곱이란 이름대신에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혹은 그가 하나님과 겨루었다.’는 뜻의 새 이름 이스라엘을 주셨다. 통회와 고통으로 밤을 지새운 대가로 야곱은 서광이 비치는 환희의 아침을 맞았다. 그래서 그는 그곳 이름을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다는 뜻으로 브니엘이라 지었다. 비록 야곱은 다리를 절게 되었지만, 기쁨으로 약속의 땅을 향해 전진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제자들도 충격과 실의의 터널 끝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만났고, 수십일 후에는 예수님이 그토록 원했던 모습의 참 제자들이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제자들에게는 물론이요, 예수님을 부활의 주님으로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부활의 능력이 되었다.

예수님의 지상사역의 목적

khs03_caption.jpg예수님의 지상사역의 목적은 새 언약공동체의 출범과 인류의 희망성취사역의 종말론적 완성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을 예시한 것이 변화산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 등장하는 모세는 많은 고난 후에 첫 유월절 날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홍해를 건너게 한 후 시내광야에서 첫 번 오순절 날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고 언약의 내용으로 율법을 받아 구약교회인 문자적 이스라엘을 출범시킨 인물이다. 또 다른 등장인물인 엘리야는 많은 고난 후에 구약교회인 문자적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출시킨 인물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예수님의 그림자와 모형이었다. 예수님은 유월절 날 수난 당하심을 통해서 율법시대와 구약교회를 폐하시고 복음에 의한 새 언약공동체로 신약교회를 주후 30528일 오순절 날에 출범시키셨다. 예수님께서 모세처럼 죽어서 승천한 것도 아니고, 엘리야처럼 산채로 승천한 것도 아닌, 죽었다가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신 것은 인류의 희망성취, 곧 어둠이 빛이 되고, 혼돈이 질서가 되며, 죽음이 생명이 되는 구원의 성취와 종말론적인 완성을 위한 것이었다. 또 고난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앉으신 것은(19) 하늘 가나안땅, 그리스도의 나라, 그리스도의 교회, 신약(복음)교회 확장을 위해서 수고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승리를 인치시고 보증하시며 선취케 하시고,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 땅에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히브리인들이 홍해를 건넌 후 광야에서 반석의 물과 만나를 먹고 마신 것처럼, 믿고, 회개하고, 침례(홍해도하)를 통해서 하나님과 새 언약을 체결하는 자들에게 죄 사함을 주시고, 그분이 세우실 영적 이스라엘의 시민권자가 되게 하시며, 하나님 가족이 되게 하셨다. 이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은 91절에서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또 예수님은 이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충격과 실의에 빠져 예전의 생업으로 돌아간 제자들을 또 다시 불러 모우시고 사도의 직분을 위임하셨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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