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희망의 복음(마가복음 이야기)
본문
머리말: 희망의 복음(마가복음 이야기)
예수님의 공적사역의 목적
사복음서에서 예수님의 공적사역의 목적은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성역(聖役)이었다.
예수님의 그리스도
신분노출(공개),
세 번의
수난예고,
예루살렘에로의
오르심,
십자가에 못
박히심,
부활,
승천,
영광 받으심은 두 개의
바다기적,
병든
자들(여자)
치유,
두 개의
급식기적,
두 개의
장애자들(남자)
치유가 있고난 이후에
이뤄졌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제2모세 곧 그리스도이심과 그
사명이,
유대인들이 간절히 바란
이스라엘의 경제,
명예,
주권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음을 잘 말해준다.
여기서 사건들이 쌍으로
소개된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
남녀,
노소,
빈부,
귀천을 아우른
것이고,
바다기적이 급식기적보다
앞선 것은 제1모세의 인도로 히브리인들이 홍해를 건넌 후
광야(빈들)에서 만나를 먹었던 것에서 모형을 취한
것이다.
이것은 또한
침례(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하여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근거이다.
마가복음 4장부터 8장까지를 보면, 두 개의 바다기적과 두 개의 급식기적 그리고 두 개의 장애자 치유기적이 나온다. 그러고 난 다음 8장 29절에서,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나온다. 두 개의 바다 기적들 가운데, 풍랑을 잔잔케 하신 이야기(4:35-41)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6:35-44)을 향해서 진행이 되고,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기 위해서 귀먹고 어눌한 벙어리(7:31-37)가 고침을 받고 말이 분명해진다. 풍랑만난 제자들을 향해서 물위를 걸으셨던 이야기(6:45-51)는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8:1-10)을 향해서 진행이 되고, 그리스도인들의 대표인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기 위해서 벳새다 장님(8:22-26)이 고침을 받고 만물을 밝히 본다.
복음서 독자들이 놓치지 말아야할 중요한 부분은 두 개의 급식기적 곧 오천 명을 먹이신 것과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침례 요한이 순교를 당하고난 직후에 베풀어졌다는 사실이다. 침례 요한이 죽고 나서부터 예수님은 당신의 신분 곧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나게 말씀하셨다. 침례 요한이 예수님보다 먼저 순교를 당한 것은 그가 그리스도가 아니었다는 증거였다. 또 침례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인 사실을 입증하는 하늘로부터 오는 음성을 듣거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베풀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침례 요한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당신의 신분을 철저히 감추셨다. 복음씨앗을 좋은 땅에 뿌릴 충분한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고, 사람들 중에는 침례 요한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례 요한이 살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더군다나 당신의 인기가 나날이 치솟고 있고, 그 소문이 헤롯 안티파스와 예루살렘의 정치종교 지도자들의 귀에까지 들어가 위태롭게 된 상황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신분을 더 이상 감추실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오천 명과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들을 행하셨다. 이 두 개의 급식기적이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예수님을 제2모세 곧 오실 자 그리스도로 믿게 만드는 표적들이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 곧 제2모세가 오시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곧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먹게 한 것과 같은 표적을 행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개의 표적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명확히 밝히는 외적 증거였다. 이로써 눈과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된다.
마가복음의 전반부 이야기
마가복음은 8장까지가 전반부이다.
전반부 이야기는
예수님이 오시기로 예언된 그리스도이심을 깨닫는 과정으로써 점진적으로 제자들의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며,
혀가 풀리는
과정이었다면,
또 그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하나님의 일과 복음의 일을 위해서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이었다면,
9장부터 이어지는
후반부에서는 왜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의 오랜 희망(Ha-Tikvah)을 저버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하는지에 대해 점진적으로 그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전반부에서 소경이 점차 눈을 뜨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고, 말 벙어리의 혀가 풀려 만물을 밝히 보고, 말이 분명해졌을 때, 예수님을 오시기로 예언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분명히 믿고 그 믿음을 분명하게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고백은 절반의 고백에 불과하다. 거기서 끝날 신앙고백이었다면, 굳이 후반부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바울이 로마서 10장 9절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선언하셨는데, 이 말씀의 후반부,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에 해당되는 나머지 절반에 대한 고백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 마가복음 9-16장까지의 기록이다. 마가복음 8장에서 끝나버리면, 유대교인 또는 여호와증인에 머물지만, 9장에서 출발하여 16장까지 계속 진행하면, 더 깊은 경지의 영의 눈이 뜨이고, 영의 귀가 열리며, 영의 혀가 풀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세상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며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임을 깨닫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에서는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하고나서도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혀가 있어도 말하지 못한 더 깊은 경지의 세계가 있음을 9장에서부터 보여주기 시작한다. 따라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직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수난예고를 하셨고,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수난예고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마가복음의 후반부 이야기
마가복음
9장부터는 후반부이다.
후반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인류의 속죄와 구원을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받으실 수난과 부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8장까지의 전반부가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님이 갈릴리지역에서 주옥같은 복음을 선포하시고 오실 자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기 위해서 행하신 많은 능력과 표적에 초점이 맞춰진
것과 대조를 이룬다.
마가복음의 후반부가 변화산 체험으로 시작한 것은 모세가 많은 고난 후에 구약교회인 문자적 이스라엘을 탄생시킨 후 죽은 몸으로 승천한 것과 엘리야가 많은 고난 후에 구약교회인 문자적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출시킨 후 산 몸으로 승천한 사실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많은 고난 후 신약교회인 영적 이스라엘을 출범시킬 모퉁이돌이 되신 후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것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모형과 그림자였던 구약교회시대를 끝내고 원형과 실체인 신약교회시대를 출범시키셨고, 율법시대를 끝내고 복음시대를 출범시키셨다. 이 점 때문에 전반부에 예수님이 “보다 강한 자”란 침례요한의 설교(1:7-8), “너는 내 아들”이란 하늘의 음성(1:11), 오실 자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는 예수님이 행한 많은 표적과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8:29)이 실렸고, 후반부에 예수님이 받으실 “많은 고난”에 대한 예고(8:31), “너는 내 아들”이란 하늘의 음성(9:7), 거듭된 수난예고(9:31, 10:33-34)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백부장의 신앙고백(15:39)이 실렸다.
후반부에서는 예수님의 처형을 진두지휘한 백부장의 신앙고백,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15:39)가 대미를 장식한다. 이 모든 것에 더해서 매우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의 공적 사역이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일 곧 빛을 주고 생명을 주는 일이었음과 이 일이 궁극적으로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승천 및 하늘우편보좌에 앉으심을 통해서 완성된데 있다.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일은 희생 없이 값싸게 이뤄지지 않는다. 여기에 예수님의 수난의 목적이 있다. 그러나 그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음과 허무의 수렁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우편보좌에 앉으시고 영광을 받으셨다. 그러므로 부활, 승천, 하늘우편보좌영광은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보상이었다. 이는 또한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부활, 승천, 보좌영광을 받아 누리게 될 보상의 내용이다.
본서 <마가복음 이야기: 희망의 복음>이 독자들로 하여금 상기한 내용들을 이해하고 활용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또 그로 인해서 신약교회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필자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기쁨이고, 그간의 수고에 대한 보상이 될 것이다.
2016년 9월 2일
조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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