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기16: 하나님의 교회의 영성9(고전 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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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기16: 하나님의 교회의 영성9(고전 8:1-13)
시장에서 판매된 고기
지난 2000년 5월에 개봉된 영화 <글래디에이터>(검투사)는 로마의 오현제 가운데 마지막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사망한 주후 180년 직전직후를 배경으로 삼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가 자행한 10대 기독교 박해
가운데 다섯 번째 박해자였다. 그는 숙명론을 믿는 스토아 철학자답지 않게 자연재해가 기독교 때문이라는 오판을 하여 탄압하였다.
<변증서>를 쓴 저스틴이 순교한 것이 바로 이때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치세 때 고린도를 다녀간 지리학자가 있었는데, 그가 파우사니아스(Pausanias)였다. 그가 쓴 <그리스 이야기>에 의하면, 옛 고린도에 아폴론, 옥타비아(초대 로마황제의 누이), 제우스, 헤라, 튀케(운명의 여신), 포세이돈, 헤르메스의 신전들이 있었고, 심지어 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까지 있었다. 또 아고라(광장)에는 아르테미스(아데미), 디오니시우스, 포세이돈, 아폴론, 아프로디테, 아테나 등의 신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이밖에도 아크로고린도 기슭에 이시스와 세라피스, 파테스(Fates), 데메테르 등의 사당들이 있었고, 정상에는 6주식 아프로디테 신전이 위용을 자랑하였다.
이처럼 신전이 많았기 때문에 시장에는 이들 신들에게 바쳤던 제물이 많았다. 따라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시장에서 고기를 사먹는다면, 우상의 제물을 사먹는 것이 되었다. 또 신전에 제물을 바친 자가 자기 몫의 고기를 받아와 잔치를 베풀었고, 성도가 그 잔치에 참석했다면, 그는 우상의 제물을 먹은 것이 된다.
이런 정황에서 고린도교회는 고기 먹지 않는 파와 고기 먹는 파로 나눠져 있었다. 고기 먹는 파는 분명히 비유대인들이었을 것이다. 틀림없이 향락적 영지주의에 경도된 자들이 이 파에 속했을 것이다. 육체를 남용하는 향락주의자들은 “모든 것이 가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반면에 고기 먹지 않는 파는 유대인들과 금욕주의자들이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카샤룻’(Kashrut)이라 불리는 까다로운 음식법을 지켰기 때문에 꼭 우상의 제물이 아니더라도 이방인이 도살한 고기나 조리한 음식을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었다. 모세의 율법에 편향된 초기 에비온파와 스토아 철학에 경도된 금욕주의자들이 이 파에 속하였을 것이다.
일찍이 사도들은 총회를 열어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행 15:29)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침을 내린바가 있다. 이 지침은 십계명 1,2,6,7계명에 해당된 것이었다. 그러나 우상의 제물에 대한 바울의 판단은 정통 유대인들과 달랐고, 그 근거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예수님의 말씀이었다. 예수님은 십계명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압축하신바가 있다.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고 안 먹는 문제를 계명이나 유무죄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관점에서 보았다.
둘째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바울은 디모데전서 4장 3-5절에서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고 하였고, 로마서 14장 20절에서는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다”고 하였다. 이것은 한때 존재하는 모든
것을 정한 것, 부정한 것, 거룩한 것으로 분류하여 카샤룻 음식법을 엄격히 지켜왔던 바리새파 출신의 바울로서는 급진적 사고전환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과 우상숭배행위를 구별하였다. 바울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을 우상숭배행위로 보지 않고
양심문제로 보았다(7,10,12절, 10:25-28).
셋째, 창조신앙이었다. 창조신앙은 우상의 제물에 무슨 마력이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신학자 하비 콕스는 <세속 도시>에서 창조신앙이 피조물을 숭배대상으로 여기는 것, 권력을 신성시하는 것, 유한한 가치를 절대시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십계명 1-2계명은 하나님과 피조물을 구별 짓고, 인간을 피조물의 마력에서 깨어나게 하며, 하나님 앞에서 만민을 평등하게 만들고, 권력의 족쇄와 폐쇄적 가치관과 세계관에서 해방시킨다고 말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음식은 음식일 뿐이지, 거기에 무슨 주술적이고 영적인 선악이나 계명을 어길만한 요소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음식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것은 다 선하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또 우상은 돌이나 나무일뿐이고, 신성을 주장한 황제들조차 죽음을 피하지 못한 피조물로써 그것들이 제물에 무슨 신의(神意)를 담아 예배자에게 건넬만한 신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우상의 제물에 대한 바울의 대안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거나 먹지 말아야할 판단의 근거가 신앙양심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있고, 믿음이 약한 자에 대한 배려에 있다고 보았다.
고린도전서 8장 1절,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안다”의 뜻은 우상의 제물을 꺼리는 자나 자유로는 자나 모두 제각각 옳다는 논리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자기 지식들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뿐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남을 비방하는 손가락질이 아니라, 약한 이웃에게 손을 내밀어 덕을 세우는 사랑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은 덕을 세운다”는 말로 8장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자기 논리를 앞세워 먹는 형제를 비난하고, 또 반대로 먹지 않는 형제를 비난하는 자들에게, 2절에서,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자기가 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증거를 이웃에게 사랑의 손 내밀기를 통해서 보여줘야 한다. 바울은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알아주신다”고 3절에서 강조하였다.
8장 4-6절은, 3만이 넘는 신들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번개나 지혜 또는 대지처럼 그냥 명사와 우상일 뿐이고, 참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으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향해서한 말이다. 반면에 7절,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진다”는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향해서한 말이다. 그리고 8-13절은 바울이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해서 제시한 정답이다.
첫째,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음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의 행복이다. 따라서 우상의 제물을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자는 우상의 제물을 거리끼게 생각하며 먹지 않는 형제를 깊이 배려해야 한다.
둘째, 믿음이 강한 자의 자유분방한 행동이 믿음이 약한 형제로 하여금 죄가 된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셋째, 만일 고기를 먹는 것이 형제 중에 누군가를 실족하게 만드는 행위라면,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하나님과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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