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영웅(그리스도인)의 조건(사 6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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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영웅(그리스도인)의 조건(사 62:1-5)
예수님은, 이 땅에서 짧은 삶을 사셨지만, 진정한 영웅이셨다. 인류의 진정한 행복, 진정한 정의, 진정한 평화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가 이 험난하고 험악한 세상에서 믿음으로 용기 있고 용맹하게 영웅적으로 살 수 있는가를 보여주셨다. 그래서 오늘은 성탄설교로서 “진정한 영웅(그리스도인)의 조건”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기를 원한다.
첫째, 진정한 영웅은 탄생하면서부터 만들어진다.
탄생은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자 가장 큰 축복이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탄생이 없다. 그래서 탄생의 기쁨이 하나님에게는 없다. 탄생의 기쁨은 피조물에게만 있다. 더불어 피조물은 반드시 죽어야할 운명도 함께 갖고 태어난다. 피조물에게 공통적인 운명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다. 죽음은 천하의 영웅호걸도 피해갈 수 없는 진정한 운명이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영웅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재탄생)하는 자이다.
영웅이 되는 조건은 피조물이다. 신성은 영웅의 조건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웅이 될 자격이 없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이다. 오류와 실수, 실패와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는 부족한 피조물이야말로 영웅이 될 자격이 있고, 시련을 극복한 다음에 그 영광의 관을 받아쓰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상을 탈 자격자가 아니시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쓰신 관과 지금 누리고 계신 영광은 완벽한 인간으로서 고통의 십자가를 지신 대가 혹은 상급이다. 그분은 신성을 타고 나셨으나 그 신성은 손을 내밀어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였을 뿐, 예수님 자신의 약함을 극복하는 일에 쓰이지 않았다. 예수님에게 가장 큰 유혹 세 가지는 신성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라는 것이었다. 첫째, 자기 자신의 의식주를 해결하는데 쓰라. 둘째, 육체의 안락, 무병장수, 생사문제를 해결하는데 쓰라. 셋째, 명예와 권세를 얻는데 쓰라는 것이었다. 다 아시다시피, 예수님은 이들 유혹을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탄의 뜻으로 알고 물리치셨다. 목수와 시골처녀 사이에서 태어나 마구간에서 인생의 첫 걸음을 딛었고, 칼 한 자루 몸에 지니지 않았는데도 반역자로 몰려 십자가형을 받았던 예수님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구세주)으로 추앙되는 이 역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성탄절을 맞이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풀어야할 숙제이다. <신성은 영웅의 조건이 아니다. 가장 인간적일 때, 그 때가 바로 영웅이 만들어지는 때이다.>
둘째, 진정한 영웅은 머물지 않고 출발하는데서 만들어진다.
2014년 12월 13일자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에서 한화 야구팀 김성근 감독은 “‘이 정도면 됐어’라는 말이 제일 싫다”면서, “야구든 인생이든 만족하는 순간이 끝”이라고 말했다. “한계 넘고, 한계 또 넘고… 그래야 새 길이 열린다”고 말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 편에 보면, “호모 비아토르(떠도는 인간)는 나그네 길에 머물 때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천신만고 끝에 금양모피를 손에 넣었던 천하의 영웅 이아손(제이슨)조차도 모험을 멈춘 순간부터, 왕위를 차지하고 제 나라에 정착한 순간부터, 제자리에 머물며 안정을 꾀한 순간부터 내리막 인생이었다는 암시가 담겨 있다. 모험을 멈추면 뒤끝이 추해진다는 뜻이 담긴 말이기도 하다.
영웅은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 ‘호모 비아토르’ 인간은 황금사과이든, 황금양털이든, 혹은 가나안복지든 그것을 찾아 길을 떠나는 떠돌이가 되는 것이다. 일찍이 오비디우스는 “금양모피 역시, 손에 넣는 수고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좋은 결과도 소중하지만, 그것을 얻기까지 수고하는 과정이 더 아름답다는 뜻이다. 결과에 상관없이 그 수고스럽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 영웅이란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년에도 모험을 즐기는 영웅처럼 인생의 바다에 배를 띄우고 돛을 올려야 한다.
연말이 되면, 여기저기에서 송년음악회가 열린다. 이 음악회의 단골메뉴가 베토벤이 작곡한 교향곡 제9번이다.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쉴러(1759-1805)는 26세 때에 ‘환희의 부침’이란 송가를 썼다. 시의 내용 가운데 일부는 다음과 같다.
환희여, 태양이 무한한 하늘의 궤도를 즐겁게 날듯, 형제여, 그대들의 길을 달려라. 영웅이 승리의 길을 환희에 넘쳐 달리듯.... 형제여! 별의 저편에는 사랑하는 주가 계시니, 억만의 백성들이여, 엎드려 빌겠느냐? 세계의 만민들이여, 조물주를 믿겠느냐? 별의 저편에서 사랑하는 주님을 찾으라. 별들 위에 주님은 계신다.... 너희는 엎드려 있는가, 수백만 사람아? 너희는 창조주를 예감하는가, 세상 사람아? 별 하늘 위에서 그를 찾으라. 형제여! 형제여, 별 하늘 위에서 그를 찾으라. 반드시 사랑하는 아버지가 계신다.
쉴러는 독일의 전제 군주제에 반기를 들었던 청년으로서 고국을 탈출하여 이국을 떠돌던 고통의 세월이 있고 난 직후에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이 시가 유명해진 것은 베토벤이 이 시에 곡을 붙여 교향곡 제9번 제4악장 합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고뇌를 통한 환희’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 유명한 곡을 만들었다. 환희는 배가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항구를 떠나 거친 바다와 폭풍에 맞서며 달려갈 때 찾아온다.
셋째, 진정한 영웅은 시련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베토벤은 이 유명한 교향곡 제9번을 작곡할 당시 귓병으로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고, 건강악화와 소송사건과 극한의 가난까지 모든 것이 최악의 상태였다고 한다. 이런 모든 악조건과 싸우면서 작곡한 곡이 교향곡 제9번이다. 70여분의 연주시간이 소요되는 전체 4악장 가운데, 제1악장에서 강렬한 의지로 비극과 싸워 이긴 생애를 회고하고, 제2악장에서 순수하고 영웅적인 멋을, 제3악장에서 희망을, 그리고 제4악장에서 “쉴러의 송가 <환희에 부침>”을 합창으로 노래하고 있다. 출애굽기 15장은 홍해를 무사히 건넌 후에 승리의 노래를 합창하고 있고, 계시록 15장은 붉은 유리바다를 건넌 후에 승리의 노래를 합창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이 승리의 합창대열에 끼기 위해서는 신앙생활에 값진 투자를 해야 한다. 일시적이고 세상적인 쾌락이나 기쁨이 아닌, 영원한 천국의 기쁨과 환희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투자해야할 것은 쉴러의 노래처럼 창조주를 예감하고 창조주를 찾고 창조주를 믿는 것이다. 반드시 사랑하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믿고 일생을 구도자의 길에 나서는 것이다.
넷째, 진정한 영웅은 신의 자녀가 될 때 만들어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웅은 신의 아들로 태어난다. 헤라클레스와 알렉산더뿐 아니라, 수많은 황제들이 자신의 뿌리를 신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큰 시련을 겪었던 사도 바울을 비롯해서 신약성서를 기록한 저자들은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이며, 영웅임을 암시하는 말을 많이 하였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의 길 곧 영웅의 길을 첫 번째 주자로서 달리셨다는 점이 가장 뚜렷한 암시이다. 침례가 그 출발점이란 점을 보이셨다. 이후의 길이 가시밭길,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임을 보이셨다. 그러나 그 끝은 부활, 승천, 환희의 관을 쓰는 것임을 보이셨다.
지난(2014년) 여름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 함께 가져온 이탈리아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 앞 ‘산 조반니(사도 요한) 침례당’의 동문, 일명 ‘천국의 문’이라 불리는 황금색으로 도금된 7미터 높이의 거대한 청동문이 국내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 문은 천지창조(아담과 이브), 가인과 아벨,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의 제사, 에서와 야곱, 이집트의 요셉, 모세와 십계명, 여호수아와 가나안정복, 다윗과 골리앗, 솔로몬과 시바여왕의 이야기들을 부조(浮彫)한 작품들로 이뤄져 있다. 15세기에 유럽사람 삼분의 일의 목숨을 앗아간 페스트(흑사병)를 극복하고 나서 이탈리아의 장인조합이 페스트와 같은 참혹한 재앙이 이 땅에 다시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문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문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시대의 천재 조각가 로렌초 기베르티(1378∼1455)에 의해서 27년이 걸려 제작되었다고 한다. 이 문의 이름은 본래 ‘믿음의 문’이었으나 50년 뒤에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Porta del Paradiso)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평가한 이후부터 천국의 문으로 불렸다고 한다.
기독교는 침례를 천국에 입성하는 문으로 가르쳐왔다. 이후 침례는 재생(중생)의 상징, 부활의 상징, 구원의 상징이 되었다. 침례를 받아야 그리스도인이 된다.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천로역정에 나선 자가 진정한 영웅의 길을 걷는 자이다. 영웅이 걷는 고독한 시련의 길은 천국의 문에 들어서기 위한 허무한 싸움이 아니라, 천국의 문에 들어선 이후에 시작되는 승리와 영광의 관을 받아쓰기위한 믿음의 싸움이다. 성탄의 의미는 바로 이 믿음의 싸움이 탄생과 함께 시작된다는데 있다.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 3;5)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탄생, 즉 재탄생과 새 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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