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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16]새 언약 백성의 위기와 기회2(행 6: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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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111 2014.04.0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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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강16]새 언약 백성의 위기와 기회2(행 6:8-15)

헬라파유대인들의 충돌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많이 행하였다. 그러나 스데반이 베푼 능력은 사도들이 베푼 것보다는 많이 약했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이 베푸신 능력과 사도들이 베푼 능력에 차이가 있는 것과 같다. 예수님이 베푸신 능력과 사도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베푼 능력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사도들은 누구의 안수도 없이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었고, 스데반과 빌립을 포함한 일곱 사람은 사도들의 안수에 의해서 성령님의 은사를 받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능력의 차이가 명백히 드러난 곳이 빌립이 복음을 전한 사마리아 성이었다(8장).

오늘날 유대인 인구는 전 세계를 통틀어 1400만 명 정도이다. 그 가운데 60퍼센트인 840만 명 정도가 해외교포들이다. 예수님 당시에는 전 세계에 450만 명 정도의 유대인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84퍼센트인 380만 명이 해외교포들이었다. 이들 380여만 명은 근동, 북아프리카, 유럽과 소아시아에 흩어져 살았다. 유대인들이 주전 586년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주전 312년 프톨레미 라구스에 의해서, 주전 63년 폼페이에 의해서 노예로 끌러갔기 때문이었다.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제국 때 그 일부가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다. 팔레스타인에 거주한 유대인들은 대부분 그들의 후손들이었다. 그러나 9절에서 말하는 ‘자유민들’은 프톨레미 라구스에 의해서 이집트와 폼페이에 의해서 로마로 끌려간 노예들의 후손들이다. 여기서 ‘자유민’은 해방노예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문화와 언어가 달라서 히브리파 회당에 합류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고, 예루살렘을 방문하거나 이주해온 동족을 돌봐줄 목적으로 자신들만의 회당을 건립했을 것으로 본다. 예루살렘에 북아프리카에서 올라온 사람들의 회당과 길리기아와 소아시아 지방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 각각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도 있지만, 누가는 9절에서 이들을 모두 통합한 단수의 회당만을 언급하고 있다.

9절,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 새”란 말은 헬라파유대인이었던 스데반이 헬라파유대인 회당에 참석하여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전하였고, 그로 인해서 그들과 논쟁이 붙었으며, 그 자리에 길리기아 다소 출신 사울(바울)이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헬라파유대인 회당에서 예수님과 관련하여 논쟁이 있었고, 사울로부터 박해가 시작된 것은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3-4장에서의 박해는 집권세력인 사두개파들에 의해서 히브리파유대인 사도들에게 가해진 가벼운 박해였다. 이 박해로 인해서 히브리파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중에 흩어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스데반의 사건은 헬라파유대인들 사이에서 펼쳐질 대대적인 박해의 신호탄이었다. 이로 인해서 헬라파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서둘러 해외의 고향집으로 피신하였다. 헬라파와 히브리파 사이에서 파생된 가벼운 갈등이 헬라파지도자들을 뽑도록 했고, 그들의 활동으로, 헬라파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동족인 헬라파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아 흩어지면서 기독교 복음은 국경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갔다. 위기가 기회로 바꿨던 것이다.

스데반, 예수님의 삶에 잇대어

스데반의 삶은 예수님의 삶에 잇대어져 있었다. 사도행전 6장 8-15절과 7장 54-60절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첫째, 8절,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한” 것; 둘째, 9절, 회당에서 논쟁이 일어난 것; 셋째, 10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한” 것; 넷째, 11절, 사람을 매수하여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는 거짓말을 퍼뜨린 것; 다섯째, 12절, 스데반을 체포하여 공회에서 심문한 것; 여섯째, 13-14절, 거짓 증인을 내세워 스데반이 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말했고,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함”을 들었다는 거짓 증언을 하게 한 것; 일곱째, 7장 54절, 유대인들이 스데반의 증언에 분노를 참지 못한 것; 여덟째, 7장 55-56절, 인자의 영광에 관해서 언급한 것; 아홉째, 7장 57-58절, 스데반을 공개처형한 것; 열째, 7장 59-60절, 스데반이 운명하기 직전에, 예수님처럼,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와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한 이 열 가지가 예수님의 삶에 잇대어진,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간 것들이다.

여기에 담긴 교훈은 이렇다. 첫째, 유대인들의 조상의 하나님 신앙이 그렇듯이, 신앙은 대를 이어 잇대어져야한다는 점이다. 릴레이 경주와 같다. 선두 주자가 힘껏 달리듯이, 그의 바통을 받아 달리는 사람도 힘껏 달린 후에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긴다. 누가가 성찰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신앙의 바통을 받아 이어달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역사란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신앙생활과 걷고 있는 십자가의 길은 이미 선임자가 행했고 걸었던 것이고, 그도 또한 그의 선임자의 것을 따랐던 것이다. 스데반은 예수님의 삶과 발자취를 고스란히 밟아갔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고, 믿음의 조상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과 스데반의 순교는 교회성장에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가해진 박해는 박해자들의 의도와는 반대방향으로 나타났다. 만일 박해자들의 의도대로 되었더라면,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미 오래 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박해는 풀무질을 받은 불길처럼, 박해의 바람을 타고 더 멀리 번져나갔고, 기어이 대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었다. 위기는 항상 기회를 가져왔다. 전화위복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었다.

셋째, 히브리파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저질렀던 동일한 수법을 헬라파유대인들이 스데반에게도 저질렀다는 점이다. 나중에 사울(바울)은 그와 그의 동족이 스데반에게 저질렀던 이 비겁하고 잔인한 수법 그대로 동족인 헬라파유대인들로부터 몇 배나 되갚음을 받는다. 죽음에 이르지 않았을 뿐이지, 죽음에 버금가는 박해를 동족으로부터 셀 수 없이 받았다.

넷째, 박해가 임무교대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성전의 붕괴가 회당으로 발전되었듯이, 예루살렘의 붕괴는 기독교의 발전을 가져왔다. 예루살렘의 붕괴로 아람어를 쓰던 히브리파가 뒤로 물러서고, 헬라어를 쓰는 헬라파가 앞장을 서게 하였고, 헬라어란 그릇에 담긴 기독교 복음은 헬라파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유대교 개종자들에게와 이방세계로 번져나갔다.

유대교 예배에 잇대어

회당 기도회는 성전제사를 대신한 것이고, 그리스도의 교회 예배는 회당의 기도회와 성전제사를 통합한 형식이다. 그리스도의 교회 예배가 유대교 예배에 잇대어져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성전은 예루살렘에 하나밖에 없었다. 북쪽의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이 예배의 적소라고 믿었고, 남쪽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 적소라고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라고 하시면서 예배하는 자들이 영으로(in spirit) 진리(in truth)로 드리면 된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나중에 그리스도의 교회 예배의 토대가 되었다.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심산에 자신들의 성전을 세웠으나 유대왕 힐카누스에 의해서 주전 128년에 붕괴되었다. 남쪽 유대인들은 성전은 예루살렘 한곳에만 있어야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경계와 인종의 장벽을 뛰어넘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영으로 예배하고, 진리로 예배하는 기독교를 가능케 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본격적으로 실현된 것은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붕괴되면서부터였다.

예루살렘 성전의 붕괴는 주전 586년과 주후 70년에 각각 있었다. 성전은 이스라엘의 구심점이었기 때문에 성전의 붕괴는 곧 이스라엘의 붕괴와 같았다. 그러나 성전의 붕괴는 유대교의 발전을 가져왔다. 하나님이 무소부재하신 분이란 것을 모른 것은 아니었지만, 성전이 존재하는 한 하나님은 언제나 지성소에 갇히시게 되었다. 반면에 성전의 붕괴는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계시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나 기도할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고, 회당기도회로 발전되었다. 이스라엘의 구심점이 성전에서 회당에로 바뀐 것이다. 회당은 곳곳에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만 있던 성전과는 달리, 힘의 중심이 중앙에서 공동체 중심으로 분산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회당은 주전 586년 바벨론에 사로잡혀간 이후 성전제사가 불가능해지면서 생긴 비성서적인 제도였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불허한 것도 아니었던 만큼, 하나님이 묵인한 제도였다.

회당은 “함께 모이는 곳”이란 뜻이다. 그래서 회당은 13세 이상의 계명의 아들 10명 이상이 모여야 성립되는 곳이다. 그만큼 모임의 성격이 강조된 집회소이다. 또 회당은 공동체의 기도회 장소일 뿐 아니라, 학교와 지방의회 및 법정이었다.

예배당의 구조와 예배 형식은 기독교의 것과 대체로 비슷하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목회자가 없었고, 회당장(장로)이 주재하였으며, 성서는 일주일에 세 번 그 주의 분량을 낭독하였는데, 성서낭독 후에는 누구나 지명을 받거나 자원하면 설교할 수가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 스데반, 바울에게 회당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잘 준비된 하나님의 그릇이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교회는 같은 뿌리에 하나님으로부터 새로 접붙임을 입은 새 이스라엘 공동체였다. 우리 모두가 선배 신앙인들의 믿음의 행로를 좇아가되,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하늘나라에 당도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자(새찬송가 33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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