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강40]예루살렘에로의 오름과 배척2(눅 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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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40]예루살렘에로의 오름과 배척2(눅 20:1-18)
기득권층의 공모
갈릴리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예루살렘에로의 오름은 배척으로 시작해서 배척으로 끝난다. 누가복음 20-24장은 예루살렘에서 생애 마지막 주간에 이뤄진 배척사건의 이야기이다. 배척에 집중된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주간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지만, 다른 복음서들에 의존해 볼 때, 예수님이 예루살렘 근교에 있는 베다니에 도착하신 것은 주후 30년 3월 31일 금요일 오후였다. 금요일 해질 때부터 엄숙한 안식일이 시작되므로 이 날은 기도와 안식으로 여독을 푸셨다. 예수님은 4월 2일 안식 후 첫날 즉 일요일에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셨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해방을 상징하는 종려나무가지를 꺾어들고 환호하였다.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신”(19:45) 날은 월요일이었다.
20장 1절의 “하루”는 4월 4일 화요일을 말한다. 따라서 19장 47절의 “날마다 성전에서”에서 “날마다”는 일요일에서 화요일까지 짧은 3일간을 말한다. 그리고 입성 3일째인 화요일에 예수님께서 성전 뜰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셨는데, 어제 월요일에 예수님께서 성전 뜰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신 사건에 대해서 70인 공회원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1절) 따져 물었다. 2절에서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말해보라고 윽박질렀다. 이 물음은 “당신이 오실 자 메시아냐?”고 물은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9-28절을 보면, 이들은 동일한 질문을 세례 요한에게 물었다. 질문의 핵심은 “네가 그리스도이냐?”는 것이다. 그렇게 묻는 이유는 그들이 메시아의 출현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잃을 것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득권 세력은 새 세상을 원치 않는다.
예수님께서 답변 대신에 공회원들에게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4절)고 물으신 것은 이런 배경에서 또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헤롯 안티파스와 그의 불륜 아내 헤로디아가 세례 요한을 두려워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여 죽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기득권층은 선지자들을 거부하였다.
세례 요한은 민중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사람들이 그를 보려고 광야에 나간 것을 봐서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그가 메시아인가를 확인하려고 광야에 나갔다. 이라크 남부와 이란 남서부에 사는 수천 명의 만다야교(Mandaeism)인들이 지금까지 세례 요한을 메시아로 믿고 있는 것을 봐서도 알 수 있다.
예루살렘의 기득권층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공모한 이유는 그들이 메시아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칼 한 자루 몸에 지니지 아니한 예수님을 반란자로 죽이려한 이유는 예수님이 메시아일 가능성이 높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메시아를 절박하게 기다리는 민중조차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에 적극 찬동한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혁명가로서의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인데, 결국 사람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메시아를 받아드리기보다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메시아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기득권층의 반란
9-18절의 악한 농부들의 비유는 유대교에 맡겼던 역할을 빼앗아 기독교에 넘기겠다는 뜻이 담긴 말씀이다. 유대종교지도자들과 그들 종교의 실패를 더는 내버려두지 않고 교회시대를 여시겠다는 뜻이다. 16절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한 말씀이 그 증거이다. 여기서 포도원은 세상 혹은 이스라엘이요, 그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농부들은 유대종교지도자들을 말한다. 그 열매를 받아오도록 보냄을 받은 종들은 예언자들이며, 그 주인의 아들은 메시아 예수님이시다.
농부들이 종들을 죽이고 심지어 아들까지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14절)한 말의 뜻은 유대종교지도자들이 메시아를 거부한 사실, 즉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인데서 드러났다. 기득권 세력은 새 세상을 원치 않는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공모한 이유는 그들이 메시아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칼 한 자루 몸에 지니지 아니한 예수님을 반란자로 죽이려한 이유는 예수님이 메시아란 확신이 섰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활동하시다가 메시아신분을 드러내신 후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일주일 만에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원하고 기다렸던 메시아는 그 신분이 노출되자마자 아이러니하게도 곧바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했다.
농부들이 포도원을 빼앗아 독차지하려고 했다는 말씀의 또 다른 뜻은 유대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과 성전을 독점한 채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교제를 거부한 사실에서 드러났다. 유대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이 타민족들의 신이 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한분밖에 없는 신을 독점해 버렸으니, 타민족들에게 참신이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막기 위해서 유대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계명들 이외에 안식일법, 정결법, 음식법, 손씻기법과 같은 수많은 울타리법들과 관습법들을 만들어 방어막을 겹겹이 쳤다. 이 신(神)의 독점의식의 절정이 예루살렘 성전이었다. 다른 민족들과는 달리 이스라엘에는 단 한 개의 성전만 허락되었다. 그나마도 하나님을 지성소에 묶어뒀다. 그 하나님을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단 하루 법궤 앞에서 두서너 차례 독대할 수 있었다. 보통사람들은 성전내부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일신 하나님이 성전지성소에서 해방되신 때는 외침들에 의해서였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능욕당하는 치욕이 있고난 다음에야 비로소 하나님은 성전지성소에서 해방되셨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악한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16절), 즉 그리스도인들에게 넘기셨다는 것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인식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봉사자로 세워 열방선교의 그릇으로 쓰시려 하였지만,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곡해하여 하나님을 그들만의 하나님으로, 그들 조상만의 하나님으로, 그들 민족만의 하나님으로 독점해버렸고, 안식일법과 정결법과 같은 울타리법들을 만들어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행동, 즉 선교의 대상인 이방인들과의 접촉과 식탁교제를 차단시켜버렸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것을 폐하시고, 두 번째 것을 세우신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히 10:9).
기득권층의 참패
9절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에서 “한 사람”은 하나님이시고, “포도원”은 세상 혹은 이스라엘이며, “농부들”은 이스라엘의 정치종교지도자들이다. 또 “세(貰)로 주고”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말하고, “타국”은 천국을 말한다. 악한 농부들의 비유는 옛 언약백성인 유대인들이 언약을 올바르게 이행하지 않자 그것을 제대로 이행할 새 언약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을 세우실 것을 말한 것이다.
10-12절에서 농부들은 주인과의 언약을 무시하고 주인이 보낸 종들을 번번이 능욕하고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주인은 방법을 찾다가 외아들까지 보냈다. 그러나 악한 농부들은 뉘우치기는커녕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주인의 외아들까지 포도원 밖으로 끌고나가 죽었다. 여기서 “외아들”은 예수님을 말한다. 외아들이 포도원 밖에서 죽었다는 누가의 진술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문 밖으로 끌러나가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암시한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13장 12-13절에서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라고 하였다. 이것은 하늘 예루살렘에로의 오름을 말한 것이고, 그 오름이 십자가의 길임을 말한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당당히 짊어지고 성문 밖으로 나아가셨던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피하지 말고 물러서지도 말며 자기 십자가를 당당히 짊어지고 하늘 예루살렘에로 오르자는 말씀이다. “성문 밖에서”가 강조된 것은 지상 예루살렘이 종착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16절의 “농부들을 진멸하고”는 실제로 유대인들이 진멸 당할 것을 암시한 것이다. 또 17절에서 버림당한 돌은 예수님을 말한다. 이 돌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실천을 말한다. 18절은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된 예수님의 가르침에 부딪힌 자들 즉 유대인들의 말로를 예언하신 것이다.
유대총독 플로루스(Gessius Florus, 64-66년)는 탐욕스럽고 잔인한 사람이었다. 그가 주후 66년에 성전 금고에서 금 17달란트를 강탈하자 분개한 유대인들이 “불쌍한 플로루스”를 위하여 적선하라며 조롱하였다. 이에 총독은 수천 명씩 유대인들을 반복해서 살육하고 약탈하였다. 격분한 유대인들이 봉기를 일으켰고, 결국 독립전쟁으로 발전되었다. 예루살렘은 혁명가들이 판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유대-로마전쟁은 비극적 참패로 끝났다. 로마군이 수적으로 우세했던 점도 있지만, 더 큰 원인은 내부 분열과 주도권 싸움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정권욕은 사람들을 급진파 보수파 온건파로 갈라놓고 자기편끼리 물고 뜯고 살육하게 만든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은 정권을 잡고 흔들며, 민중을 지배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바른 말하는 선지자들을 싫어하고 메시아를 거부한 이유이다.
전쟁의 실패가 준 대가는 너무 컸다. 6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수천 명이 노예로 팔렸거나 광산에 보내졌으며, 검투사로 등록되었다. 땅은 황폐해졌고 경작인은 사라졌다. 공회(산헤드린)는 해산되었고, 정치적 자율권마저 빼앗겼다. 예루살렘에 내던 성전세를 로마의 주피터 신전에 바쳐야 했고,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토지세와 주둔군의 재정까지 부담해야 했다. 예수님을 거부한 유대인들은 깨지고 가루가 되어 흩어졌으며 1878년간 모국을 갖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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